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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 2011년 겨울호, 다시 읽는 좋은 수필] 꽃송이 같은 첫눈 - 강경애

신아미디어 2012. 1. 15. 13:31

   오늘은 아침부터 해가 안 나는지 마치 촛불을 켜대는 것처

발갛게 피어오르던 우리 방 앞문이 종일 컴컴했다.

그리고 이따금씩 문풍지가 우룽룽 우룽룽했다.
   잔기침 소리가 나며 마을 갔던 어머니가 들어오신다.
   “어머니, 어디 갔댔어?”
   바느질하던 손을 멈추고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치마폭에 풍겨 들
어온 산뜻한 찬 공기며 발개진 코끝.
   “에이, 춥다.”
   어머니는 화로를 마주앉으며 부저로 손끝이 발개지도록 불을 헤
치신다.
   “잔칫집에 갔댔다.”
   “응, 잔치 잘 해?”
   “잘 하더구나.”
   “색시 고와?”
   “쓸만하더라.”
   무심히 나는 어머님의 머리를 쳐다보니 물방울이 방울방울 서
렸다.
   “비 와요?”
   “비는 왜, 눈이 오는데.”
   “눈? 벌써 눈이 와. 어디.”
   어린애처럼 뛰어 일어나자 손끝이 따끔해서 굽어보니 바늘이 반
짝 빛났다.
   “에그, 아파라, 고놈의 바늘.”
   나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옥양목 오라기로 손끝을 동이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하늘은 보이지 않고 눈송이로 뽀얗다. 그리고 새로 한 수숫대 바
자갈피에는 눈이 한 줌이나 두 줌이나 되어 보이도록 쌓인다.
   보슬보슬 눈이 내린다. 마치 내 가슴속까지도 눈이 내리는 듯했
다. 그리고 나는 듯 마는 듯한 냄새가 나의 코끝을 깨끗하게 한다.
   무심히 나는 손끝을 굽어보았다. 하얀 옥양목 위에 발갛게 피가
배었다.
   ‘너는 언제까지나 바늘과만 싸우려느냐?’
   이런 질문이 나도 모르게 내 입 속에서 굴러 떨어졌다.
   나는 싸늘한 대문에 몸을 기대고 어디를 특별히 바라보는 것도 없
이 언제까지나 움직이지 않았다. 꽃송이 같은 눈은 떨어진다, 떨어
진다.                                                           『신동아』, 1932.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