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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 월간 좋은수필 2018년 12월호, 신작수필24인선 I 우화를 꿈꾸다 - 고경서(경숙)

신아미디어 2019. 5. 7. 20:12

"소소한 갈등이 벽을 허무는 이 청정한 시간이야말로 새로운 DMZ, 완충지대가 아닐까. 나와 당신, 그리고 텔레비전이 정물화처럼 놓여있는 한 지붕 아래서 각자 방 하나씩에 안주하는 이 뜨뜻미지근한 무관심은 뭘까. 전화기조차도 우화偶話의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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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화를 꿈꾸다           /    고경서(경숙) 


   강물에 몸을 밀어 넣고 낚싯대를 붙들고 있다. 수면은 한풀 꺾인 볕살을 물고기 비늘처럼 튕겨낸다. 번들거리는 물속에 잠긴 찌가 입질해오기를 기다리는 낚시꾼들의 표정이 깊다. 자연의 일부로 돌아간 그들의 모습이 날선 마음을 누그러뜨린다. 하단에는 국지성 호우가 쏟아진다는 기상예보가 자막으로 떴다가 흘러간다. 텔레비전은 플라이 낚시를 방영 중이다.
   흰 벽을 가운데 두고 나는 거실에서 당신은 안방에서 텔레비전을 본다. 창밖에는 함부로 살았던 날들을 책망이라도 하듯 비가 후려친다. 열어놓은 창으로 바람살도 한 수 더 뜬다. 우리는 빗살무늬 토기처럼 앉아 제가끔 축축하다. 널브러진 신문마냥 퍼질렀던 마음을 일으켜 허공에 팔을 뻗는다. 손바닥이 빗물을 움켜쥐면서도 눈은 연신 화면을 힐끔거린다. 얼얼한 비 냄새를 맡으며 이 방송, 저 방송으로 채널을 돌려가며 낚시꾼 행세를 하다가 결국 낚시방송에 걸려들었다.
   당신은 집짓기에 심혈을 기울인다. 눈으로 보지 않아도 지금 이 침묵만으로도 느낄 수 있다. 도도한 물살에 휩쓸린 이후로 틈만 나면 바둑판에서 집을 만들어간다. 삶의 현장이 대국對局이라도 되는 양 두 눈을 부릅뜬 채 안정된 노후를 맡길 거처를 마련하는가. 청춘의 빛바랜 설계도를 턱을 괸 채 내려다보면서 골똘히 생각에 잠겼을 터이다. 바둑판에서 소용돌이가 보이고, 세상을 읽고 있다는 의미심장함을 매번 받아왔기 때문이다.
   벌써 몇 시간째다. 천하의 패권을 다투는 치열한 싸움터에서 신의 한 수手를 기대하며 흑백의 바둑돌을 바둑판에 옮겨놓는 당신. 아니 희고 검은 징검돌을 심연의 마당 깊숙이 내리박으리라. 백이 완벽한 수비를 펼치고, 흑은 반격의 기회를 신중하게 노리는 묘수일 수도 있겠다. 바둑알을 집어 들고, 사활을 건 긴박한 초침소리에 공격과 수비로 포석을 다지며 방어벽을 쌓는 손등이 무겁다. 일을 많이 한 손이다. 섣부른 욕망을 밀어붙이다간 파국에 이른다는 훈수에 자맥질하는 가슴을 쓸어내릴 것도 같다. 여태 집은커녕 옹벽도 세우지 못한 것일까. 딱, 딱, 딱 ……. 바둑알 던지는 소리가 감상적이다. 둔탁한 망치소리에 빗소리가 한 주먹씩 잘려나간다. 삶의 무게가 얹혀 기우듬해진 당신의 뒷모습이 휜 만灣처럼 쓸쓸해 보인다.
   오늘따라 빗소리가 산조가락이다. 두어 달을 묵힌 감정도 저기압이다. 외로움을 동반한 이상기온 탓에 불안하고 우울하다. 삶의 세파에 떠밀려 표류하다 끝내는 침몰하고 마는 게 인생이라고 한 누군가의 말에 심취해있다. 비 맞는 강변이라도 걸으며 눈물이라도 뺄까 싶다가도 그만 둔다. 텔레비전 앞에서 탁족을 하듯 멍 때리고 있으면 얽히고설킨 감정의 실마리가 풀어질까 싶어서다. 강이나 바다로 가지 않더라도 뒤엉킨 머릿속도 응어리진 마음도 심드렁해진다. 닫히고 갇혀있던 육신이 짙푸른 바람을 불러들인다. 혼탁한 물이 스스로 맑아지듯 화장으로 가릴 수 없는 목주름이 펴지고, 짓눌러진 가슴이 툭 터져 정화되는 기분에 젖는다.
   당신은 낚시보다 바둑이 더 좋다고 말했다. 열아홉 줄 반상 위에서 투쟁하는 물밑 싸움이 현대인의 아귀찬 경쟁심을 엿보는 것 같아 흥미진진하다지만 곤고한 삶을 이렇게 에둘러 표현한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난공불락에 이르러 상대방의 의중을 파악하고 설득하는 과정에서 전략과 전술을 내세운 승부 근성이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는 것이다. 어쩌다가 불행이라는 수세에 몰려 완성된 집을 빼앗기는 낭패를 당하면 뒷걸음치면서 줄줄이 끌고 온 길들을 한 수씩 물려 위기를 기회로 삼는 반전의 묘미에 끌린다고도 했다. 좌절된 꿈과 희망으로 인한 상실감이 타인에게 이해받지 못하거나 수용되지 못할 때마다 대마大馬를 잡듯 인생도 바둑처럼 정석이 있기를 열망하는 눈빛에서 당신만의 외로움이 읽혀졌다.
   나는 바둑보다 낚시가 더 재미있다. 무대가 우선 자연이라는 열린 공간이다. 바둑판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빽빽이 그려진 네모 칸막이들이 보는 것만으로도 옥죄고 구속한다. 그러나 낚시는 세상살이가 힘들어 엄살과 변명으로 지나온 나에게 영상일지라도 한 마리의 물고기를 포획하는 기다림이 주는 자유를 만끽하게끔 한다. 그 시간에 새로운 여정을 꿈꾸며 버거운 현실을 견디면서 버텨낸다. 먼 바다로 가기 위해 숱한 지류를 끌어안고, 희비의 여울목에 휘둘리고, 스스로 바윗돌에 부대끼는 강물처럼 질풍노도의 삶에서 채우기에만 급급했던 욕망을 덜어내고 비워내면 몸이 가벼워짐을 터득한다. 낚시질은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좁힐 뿐만 아니라 살아가는 행위가 안목이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들면서 나를 감싸고도는 외로움이나 우수가 씻겨 나가기에 텔레비전을 시청하는지도 모른다.
   이제 빗줄기도 한풀 꺾였다. 한눈팔다 잡혔다는 듯 무지개송어가 연신 꼬리지느러미를 휘갈긴다. 강태공들도 길길이 뻗대는 송어를 강물로 돌려보내는 중이다. 같은 공간에서 오래 지내다보면 닮아있는 게 부부이다. 성격과 취향이 서로 다른 남녀가 속울음을 따로 삼키며 외로움을 풀어낸다. 고기를 잡고, 집을 짓는 시간의 공백기에 연민어린 시선을 주고받다 보면 상처는 화해를 모색하면서 삶의 여백에 빠져든다. 누에가 컴컴한 고치 속에 틀어박혀 변태를 거치듯 바둑의 승부수처럼 낚시의 묘미처럼 아픈 기억들이 치유되는 순간이 온다. 소소한 갈등이 벽을 허무는 이 청정한 시간이야말로 새로운 DMZ, 완충지대가 아닐까. 나와 당신, 그리고 텔레비전이 정물화처럼 놓여있는 한 지붕 아래서 각자 방 하나씩에 안주하는 이 뜨뜻미지근한 무관심은 뭘까. 전화기조차도 우화偶話의 배경이다.



고경서(경숙) 님은 《에세이문학》 등단, 2002년 농민신춘문예 수필 당선, 2011년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