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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수필과비평』[2019년 3월호, 통권209호 I 나의 대표작] 사위의 절대 팬 - 한기정

신아미디어 2019. 3. 27. 09:11

"딸이 남편과 오순도순 사는 것을 보며 자신이 그토록 갈구했던 ‘스위트 홈’을 대리만족할 수 있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


 





   사위의 절대 팬      -    한기정


   엄마는 사위라면 무조건 오케이!다.
   이유는 사위가 S대 교수여서라기보다는 부드러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꿈에도 그리는 자신의 아버지와 전공이 같다는 것이 한 술 더 보탠다.
   까칠한 남편과 누려보지 못했던 마음 푸근함을 사위에게서 얻기 때문이다. 딸에게 잘해 주어서도 좋지만 그저 온화한 사위가 내 집 식구이기 때문이다. 가슴을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결혼 사십여 년 동안 엄마는 줄곧 목말랐다.
   남 보기에는 돈도 잘 벌고 외국을 내 집 드나들 듯하고 집안 물건들도 외국 것들로 꾸몄으니 근사하지만 그 속에 끈끈한 유대감은 결핍되었다. 엄마는 자신의 결혼생활을 불행한 것으로 규정하고 실패로 여겼다.
   서양풍의 미인인 며느리를 이유없이 꼴사나워하는 시어머니, 오빠와 올케 사이를 틀기 위해서라면 못할 일이 없는 시누이와 보태줘도 보태줘도 고마움을 모르는 시동생들이 포진해 끝도 없이 말을 보태고 뱉는다.
   더욱 나쁜 것은 피할 곳이 없는 것이었다. 부모 형제가 없으니. 귀해 하던 시아버지마저 일찍 돌아가셨으니.
   위태로운 가운데 의지할 것은 아들과 딸뿐. 자신의 방패막이로, 자랑거리로 만들기 위해 치맛바람을 날렸다.
   자기 식구들의 악다구니에 지쳐 바쁘다는 핑계로 외국으로 떠돌며 사업을 하는 아빠는 좋은 아버지였지만 나쁜 남편에 가까웠다. 아내의 고통에는 관심이 없었다. 관심을 가지기에 너무 벅찼는지도 모른다. 어떠한 고통도 이야기하지 못하는 소심함과 그로 인한 의기소침이 엄마의 탓이라면 탓이지만, 진심으로 자신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데 용기를 내어 자신의 요구를 말할 그 시대의 여인이 얼마나 있었을까. 게다가 친정에서의 교육이 그녀를 억센 여자로 남게 하지 않았다.
   엄마의 한 가지 소망은 우리 네 식구가 단란하게 살아보는 것이었다.
   그 시늉을 위해 우리 넷 중 누군가의 생일이 되면 곱게 차려입고 아빠의 퇴근에 맞춰 명동에 있던 사무실로 나서곤 했다. 마지못해 응하는 남편과 아이들을 앞세워 저녁식사를 밖에서 했다는 것에 의미를 두는 것이 고작이었다. 항상 엄마가 ‘쐈다.’ 그래도 외식은 잠시 엄마의 숨통을 트여주고 ‘행복한 가족’이라는 너울을 쓸 수 있게 했다. 그러나 너울뿐이었다. 한번도 네 식구만 단란하게 살아본 적이 없다.
   부담스러운 아내가 아닌가.
   못마땅한 남편이 아닌가.
   아내는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많은 식솔의 생계를 위해, 남자의 자존감을 만족시키기 위해 애쓰는 남편을 이해하기보다는 붙들어 매어 두지 못하는 것에 애가 닳았다. 남편은 한 번도 자발적이고 즐거운 모습을 보이지 않으므로 아내에게 진심어린 ‘가족’을 선사하지 않았다.
   그런데 사위는 목소리가 상냥하고 눈을 부라리는 법도 없고 마누라에게 선물도 사주고 태도가 온화하다.
   저녁을 먹으러 나선 어느 호텔 로비의 보석점에서 누나에게 귀걸이를 사주는 매형에게 동생은 ‘쓸데없이 비싸게 산다.’고 퇴박을 하자 엄마는 “내버려 둬라. 보기 좋잖니?” 한다.
   자신이 가져보지 못한 바로 그런 남편이 자신의 사위다.
   병원에서 열에 들떠 정신이 오락가락할 때도 “난 김 서방이 좋다.”고 한다.
   왜? 물으면 공부도 잘하고 내 딸에게 잘해줘서, 한다.
   딸이 남편과 오순도순 사는 것을 보며 자신이 그토록 갈구했던 ‘스위트 홈’을 대리만족할 수 있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