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문학』 '이 시인을 주목한다' 코너에서 독자에게 주목받을 수 밖에 없는 "박수빈"시인을 소개합니다.
경칩의 독백 / 박수빈
살얼음판이야 차라리 동면이 따듯해
눈이 튀어나오도록 이력서를 쓰면
꽃그늘로 폴짝할 수 있을까
꽃이 아름다운 건 집중하기 때문
퍼지는 빵 냄새는 물에 젖지 않기 때문
절실하여 이스트 없이도 부풀 수 있기를
얼룩덜룩한 내 몸이 철 지난 잡지 같아
열람실 문은 당겨도 열리고 밀어도 열리는데
어제의 등을 돌려 오늘의 가슴에 맞대는데
책장은 물갈퀴로 넘어가지 않아
창 너머 나뭇가지에 앉은 새가 건반을 두드린다
물방울들이 줄줄이 뛰어내린다
꽃샘을 글로 배워
울음 주머니를 달싹이다가 선잠에 뒤척이다가
여백에 기대어 / 박수빈 징소리가 길을 연다
치마폭을 감싸던 손에서 장단이 시작된다
누군가를 부르는 듯 아니 떠나보내는 듯
저 구음시나위는 남자 아니고 여자도 아닌 중음의 울림
백자가 놓인 방
부채가 놓인 겨울밤을 연상한다
손으로 부채를 파닥이자 커튼이 부풀며 창문이 덜컹
오래 불 밝히고 사라진 이
얼굴이 눌리고 목이 잘리며 아으아아허
새의 지저귐이 벽을 물렁하게 할 것이다
틈새 숨겨진 칼날 같은 깃
천장으로 솟아오르다가 주저앉는 죽지
피 묻은 부리의 슬기둥
나는 두 손을 모은다
이루어진 소원은 이미 소원이 아니므로
맺힌 사연이 언어 이전의 음악이 되므로
박수빈님은 전남 광주 출생. 2004년 시집 《달콤한 독》으로 작품 활동, 경기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수혜, 《열린시학》 평론 등단. 시집 《청동울음》, 평론집 《스프링 시학》, 《다양성의 시》, 연구서 《반복과 변주의 시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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