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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인간과문학 2015년 여름호, 이 시인을 주목한다: 이희자] 아폴론적 가치와 디오니소스적 가치의 갈등 - 유한근

신아미디어 2015. 8. 1. 13:14

『인간과문학』 '이 시인을 주목한다'코너에서 독자에게 주목받을 수 밖에 없는 시인을 소개합니다. "이희자시인의 시들을 통해서, 니체의 《비극의 탄생》 가치 척도인 아폴론적 성향과 디오니소스적 성향을 나타내는 이미지들이 이희자 시에 공존하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이는 인간의 성격과 삶의 양태를 꿰뚫지 않고는 가능하지 않은 이미지들이며, 서정시의 진수를 보여주는 표현 구조임을 새삼스럽게 환기하게 된다."

 

 

 

 

 

 

아폴론적 가치와 디오니소스적 가치의 갈등         /  유한근

 

   20세기 전위파 예술의 한 유파인 미래파(futurism)는 기존의 유파인 노만주의에서부터 심리적 신비주의까지 배격하며 새로운 미학을 수립하겠다고 선언한 후 기존의 체계 질서를 부정한다. 통상적인 시창작법인 전통적 운율의 거부, 구문의 파괴, 기발한 언어배열, 시에 수학 혹은 화학기호 사용 및 충격적인 방법을 차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미래파의 뒤를 이어 다다이즘, 표현주의, 초현실주의가 잇따라 일어났다. 급기야는 마야코프스키조차도 미래파를 혁명예술로 치부한다. 이 연장선상에 지금의 우리 시도 서 있다. 현대시에 대한 실험은 계속되고 있고 그 실험을 주목하고 지지하는 세력도 만만치 않지만, 그럴수록 서정시에 대한 부동의 지지도 지속되고 있다.
   이렇게 서정시가 이 시대에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경향이 시단의 대세이기 때문이 아니라, 다수의 독자의 가슴을 감동시키기 때문이다. 이 시대는 인간적 감동이 없는 시대다. 정서로 전율시키려는 시도조차도 무의미하다고 여기는 시대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21세기 한국의 시단에도 이른바 미래파 시인들이 등장하게 된다. 이들의 등장은 기존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통해 새 지평으로 나아가려 한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부정적인 측면 또한 팽배했다. 그들의 시가 자폐적 언어로 쓰여졌으며 정상적인 판타지로부터 일탈한 잔혹성과 엽기성이 강하다는 측면과 지나치게 난해하다는 점에서 비판받아왔다. 그러나 그들은 “일상적인 사건과 개인적 정념을 특별한 방식으로 풀어낸 ‘시적 코드의 변환’으로” 자기들의 시를 바라봐야 한다고 항변한다. 이러한 논쟁은 최근에 이르러 잠잠해지기는 했지만, 미래파 시인들의 시는 아직도 소통 불가능하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에서 소통이 가슴으로 이루어지는 정통 서정시의 존재는 소중할 수밖에 없다.


1

   이희자의 시는 평범하고 깔끔하다. 담백한 문체와 서정성이 지나치지 않게 은은하게 배어나는 시를 쓴다. 이러한 평가는 나만의 생각이 아니라 그의 시를 좋아하는 독자들의 공통적인 평가이다. 이 점을 놓고 어떤 이는 시가 너무 평면적이고, 시정신이 치열하지 못하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봄 햇살에 끌려
차 한 잔 들고
문밖으로 나간다 

 

꽃은 보이지 않고  
연두 빛 풀 잎
다붓이 솟는 뜰 

 

 

순간 들킨 맘
발그레 물들어 이내  
꽃이 되었다 

-시 〈꽃이 되었다〉 전문

 

   이 시 〈꽃이 되었다〉를 읽으면 위에서 지적한 모든 것이 다 해당된다. 깔끔하고 담백한 문체와 지나치지 않은 서정성, 그리고 평면적인 구조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꽃이 피지 않은 이른 봄. 차 한 잔 들고 문밖에 나서 뜰과 풀잎 속에서 ‘꽃’이 되는 시인. 이러한 정서는 시인의 마음이 밝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은 부분이다. 자연과의 합일이 되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은 자연친화 상상력의 소산이다.
   시경詩經에서의 ‘사무사’의 ‘사思’는 ‘맑은 마음’, ‘마음의 숨구멍’, ‘마음의 세밀함’, ‘마음의 연민’으로 그 의미의 쓰임새를 압축하여 볼 수가 있다. 그리고 사思를 사辭[목소리]로 볼 때에는 시경에서의 ‘사무사思無邪’를 “말소리에 사邪가 없다”(윤재근의 《시론》p53)로 풀이한다고 할 때, 노래에 삿됨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마음의 맑음에 삿됨이 없다는 말은 순수하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삿됨이 없다는 말은 내재율이 있어 시의 생동감이 있음을 의미하다. 그리고 영혼의 맑음을 의미하고, 진정성 혹은 따뜻한 사랑의 마음이 있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마음이 들켜 발그레 뺨에 물들어 꽃이 된 시인. 그 시인은 영혼이 맑은 시인이다.

 

 

있는 품 다해
덩굴로 오르며
층층의 꽃 계단 만든다

 

활짝 귀를 열고
이제나 저제나
담장 밖 기척에
애를 태우다가

 

높은 담벼락
허리 굵은 나무기둥에
온통 불을 지르더니

 

뙤약볕 아래 그만
제 목숨을 놓고 마는
저 선홍의 불꽃

 

 

기다리다
기다리다가 지친
한 여인의 사랑이 지는데.

-시 〈능소화〉 전문

 

   시 〈능소화〉는 시적 대상인 ‘능소화’라는 사물을 인식하는 그 과정을 노래한 시이다. 덩굴로 꽃 계단을 만드는 능소화(1연). 담장 밖 기척에 귀를 기울이는 능소화(2연). 누군가는 애타게 기다리다가 불 지르는 능소화(3연). 끝내는 선홍색 불꽃으로 지고마는 능소화(4연). 떨어진 그 능소화를 시인은 끝 연에서 “기다리다가 지친/한 여인의 사랑”으로 표현한다. 양반꽃 또는 금등화金藤花라 불리우는 능소화는 슬픈 전설을 가진 꽃이다. 옛날 어느 궁궐에 아리따운 소화라는 어여쁜 궁녀가 있었다고 한다. 임금의 사랑을 받게 되어 빈의 자리에 올라 궁궐 어느 한 곳에 처소가 마련되어 살았는데, 다른 비빈들의 시샘과 음모로 궁궐 가장 깊은 곳까지 밀려나게 되지만 임금이 찾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렸다는 것이다. 님의 발자국 소리와 그림자라도 비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담 너머로 하염없는 눈길을 보내고 지내다가,  어느 여름날 기다림에 지친 그 여인은 상사병에 걸려 쓸쓸히 죽어갔다고 한다. 그 자리에 핀 꽃이 능소화라고 전해진다. 이러한 슬픈 이야기를 이 시는 배경으로 해서 써진 것으로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한 여인의 비극적 사랑을 능소화에 얽힌 전설에서 그 모티프의 원형으로 하여 썼다는 점과 이 시가 평면적인 서정시가 아닌 입체적 시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2

   꽃을 모티프로 한 또 다른 시 〈갈 수 없는 길〉을 보고, 이 시와 〈능소화〉의 다른 성향의 면모를 탐색해보자.

 

향기로운 꽃 빛
한창이겠네
해를 따라 도는
해바라기 뜰
노을 지면 먼 산
가까이 내리더니 

 

저녁 잠 놓친
물소리 따라 가면
계곡은 점점 깊어 가고
떨리 듯 마주 잡은 손
사랑이었지 

 

세상 빛 어두워도
너와 함께 가는 길
두렵지 않더니
돌아보면 그 길
여전히 거기 있는데

 

잡은 손 놓친 지금은
갈 수 없는 길 다시
돌아 갈 수 없는
먼 먼 길.

-시 〈갈 수 없는 길〉 전문

 

   시 〈갈 수 없는 길〉의 시적 대상은 ‘해바라기꽃’이다. “해를 따라 도는” 속성을 지닌 해바라기는 “노을 지면 먼 산/가까이 내리더니//저녁 잠 놓친/물소리 따라 가면/계곡은 점점 깊어 가”는데, 그 계곡과 “떨리 듯 마주” 손을 잡으면 그것이 “사랑이”라고 인식하는 시인의 의식 속에는 니체의 책 《비극의 탄생》이 함유되어 있다. 해바라기는 해를 쫓는 아폴론적 성향을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으면서, 저녁이 되면 계곡의 물소리와 손을 잡는 디오니소스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는 꽃이다. 니체는 《비극의 탄생》에서 유럽의 문명을 아폴론적 가치와 디오니소스적인 가치로 구분하여 설명한 바 있다. 여기에서 아폴론적 가치란 로고스(Logos, 이성, 언어)적인 가치 혹은 성향을 의미한다. 그리고 디오니소스적 가치란 파토스(pathos, 감성, 열정)적인 가치 혹은 성향을 의미한다. 모든 문명은 이 두 가지 가치의 갈등으로 인해 발전하는 것처럼 인간이나 인간의 삶도 이 두 가지의 갈등으로 인해 성장하고 발전하게 된다. 인간의 내면 속에는 해바라기처럼 해를 쫓는 이성적인 성향과 계곡의 물소리를 만나 ‘사랑’하게 되는 열정이 공존하게 된다. 앞의 시 〈능소화〉에서 담벼락에 불을 지르며 올라가는 능소화와 기다리다 지친 한 여인의 사랑을 한 편의 시에 공존하게 하는 것처럼. 그러나 이희자 시인은 위의 시에서 “떨리 듯 마주 잡은 손/사랑”에 그 가치를 둔다. “세상 빛 어두워도” 함께 갈 수만 있다면 “두렵지 않더니/돌아보면 그 길/여전히 거기 있는데”도 불구하고, “잡은 손 놓친 지금은/ 갈 수 없는 길”이라고 인식한다. “돌아 갈 수 없는/먼 먼 길”이라고 인식한다. 여기에서 “잡은 손 놓친”은 식은 열정을 의미하며 디오니소스적 성향의 쇠퇴를 의미할 수도 있다. 아폴론적 성향의 충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사랑의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그곳으로 가는 길을 두려워한다. 그곳으로 가는 길이 멀다고 인식한다.  그래서 시 〈떨어지고 있네〉가 가능해진다.

 

하늘 높은데
별 떨어지는 소리
세상이 요란하다

 

행운목 한 그루 
푸른 잎 보기 좋아
장군이라 이름 지었더니

 

시름시름 잎 마르고 
장군이라 부를까 말까 
내 속생각만 깊어 간다 

 

붙잡을 수 없는 저 별
떨어 진 자리
차마 살필 수 없는데 

 

연습곡이 없는 인생살이
다 부르지 못한 노래가 
너를 붙든다.

-시 〈떨어지고 있네 〉 전문

 

   위의 시 〈떨어지고 있네〉의 모티프는 ‘별’이다. 하늘에 떠있는 별은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존재다. 그 자체는 아폴론적인 존재다. 그 존재를 시인은 “행운목 한 그루” 그리고 “장군”으로 인식한다. 그런데 행운목 잎이 시들어 떨어지듯이 떨어진다. 떨어지는 것은 붙잡을 수 없는 별, 그 자리를 시인은 “차마 살필 수 없는데” “연습곡이 없는 인생살이/다 부르지 못한 노래”로 시인은 붙들고 싶어 한다. 여기에서의 “다 부르지 못한 노래”는 희망이라는 존재이다. 포기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그 무엇은 시인에게 있어서 ‘시’ 그 자체일 수도 있다. ‘별’은 시인에게 있어 ‘시’라는 의미를 함유하고 있는 시어이다. 그렇다고 할 때 이 시 〈떨어지고 있네〉는 시인의 시에 대한 절망과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을 노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시에서 ‘별’과 ‘시’, ‘다 부르지 못한 노래’는 니체의 아폴론적 가치이다. ‘떨어지다’와 ‘연습곡 없는 인생살이’는 니체의 디오니소스적 가치이다. 이러한 두 가치에서 시인의 고뇌는 “다 부르지 못한 노래”에 내포되어 있는 아직은 ‘부를 수 있는 노래’이다. 그 노래는 이희자 시인에게 있어 서정시인 셈이다.

 

봄비 젖는 새벽 
홀로 걸으며 
누군가 함께 걷는 
이 따스한 느낌

 

돌아보면
내가 걸어 나온
길 저쪽 어둠이
우두커니 서 있는데


보이지 않으나
잠잠히 나를 지키시니 
온 우주에 가득 찬
하늘 저 높은. 

-시 〈홀로 홀로가 아닌〉 전문

 

   시 〈홀로 홀로가 아닌〉의 주체는 이 시의 마지막 연의 그것이다. “보이지 않으나/잠잠히 나를 지키시니/온 우주에 가득 찬/하늘 저 높은” 그것, 그 존재이다. 이 존재는 위의 시처럼 ‘별’일 수도 있고, 절대적인 존재인 신神일 수도 있다. 신神으로 표상되는 자연의 모든 존재이다.
   우리 서정시의 본체는 자연친화 상상력을 전제로 하여 시가 창조된다. 그것이 시의 본질이며 본체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시를 쓰게 하는 힘이 되며 그 힘의 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시 창작에 있어서 표현 체계는 자연물에 의존하게 된다. 인간과 모든 예술이 자연에 대한 모방이라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방설 혹은 미메시스 이론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많은 서정시인들은 자연 속에서 생각과 느낌의 원형을 탐색하게 된다. 과거는 물론이고 미래적인 삶의 양상까지도 그 속에서 찾으려한다. 현실적인 땅의 세계와 신비롭고 초월적인 하늘의 세계까지도 자연 속에서 탐색하려 한다. 위의 시 〈홀로 홀로가 아닌〉이 이 범주 속에 있다.
   이 시의 1연처럼 “봄비 젖는 새벽/홀로 걸으며/누군가 함께 걷는/이 따스한 느낌”을 느낄 수 있다. 홀로이지만 홀로가 아닌, 봄비에 젖으면 느끼게 되는 차가움과 무엇 때문이지는 알 수 없어도 혼자가 아니라는 따뜻한 느낌을 체험되게 된다. 그리고 2연의 시적 진술처럼 걷다가 “돌아보면/(…)/길 저쪽 어둠이/우두커니 서 있는” 느낌을 인식하게도 된다. 그래서 시인은 3연에서처럼 “보이지 않으나” 자신을 지켜주는 그 무엇이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 느낌은 “온 우주에 가득 찬” 그리고 “하늘 저 높은” 곳에 존재하는 것으로 절대적인 그 무엇이다. 종교적으로는 창조주, 깨달은 사람, 도道, 기氣,라는 초월적인 존재일 수도 있다. 그 존재는 홀로인 존재를 홀로가 아닌 존재로 인식하게 하는 정체이다. 또한 봄 햇살, 능소화, 해바라기 꽃, 봄비, 그리고 별 같은 자연물이기도 하다.

   나는 이 글의 서두에서 서정시가 이 시대에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다수의 독자의 가슴을 감동시키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 시대는 인간적 감동이 없는 시대로 규정했고 정서로 전율시키려는 시도조차도 무의미하다고 여기는 시대라고 규정하면서 서정시의 필연적 존재 가치를 말했다. 그리고 첨단적이라는 시가 독자와의 소통 불가능하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에, 소통이 가슴으로 이루어지는 정통 서정시의 존재는 소중할 수밖에 없음도 거론했다.
   그러나 위의 시들을 통해서, 니체의 《비극의 탄생》 가치 척도인 아폴론적 성향과 디오니소스적 성향을 나타내는 이미지들이 이희자 시에 공존하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이는 인간의 성격과 삶의 양태를 꿰뚫지 않고는 가능하지 않은 이미지들이며, 서정시의 진수를 보여주는 표현 구조임을 새삼스럽게 환기하게 된다.

 

유한근  --------------------------------------

   동아일보 신춘문예 평론 〈무의미 미학과 공간해체〉로 등단. 평론집 《문학의 모방과 모반》 《현대불교문학의 이해》 《글의 힘》 《한국수필비평》등 다수. 시집 《사랑은 흔들리는 행복입니다 외. 명상언어집 《별과 사막》. 동화집 《무지개는 내 친구》등 저서 논문 다수. 만해불교문학상, 한국문학평론가협회상. 신곡문학상 대상, 여산문학상 대상, 동국문학상 등 수상.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