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작을 날라 난로에 불을 붙이고 그 앞에 의자 두 개를 가져다 놓고, 그가 바람을 일으키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그도 힘이 빠질 때가 있었다. 그때 나는 찌개를 끓이느라 바람을 일으키며 바쁘게 움직였다. 생솔가지를 해다 나를 일 없는 오늘은 그저 난로 앞에 앉으면 되는 날이다."
풍로가 필요해 - 이옥순
연기가 올라오는 굴뚝을 보면 절로 마음이 따뜻해진다. 굴뚝이 시작되는 그곳, 난로 앞의 훈훈한 장면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누군가 난로 앞에서 나처럼 요요를 만들고 있으려나, 우리 엄마처럼 말랑한 홍시를 먹고 있으려나, 졸고 있는 나쓰메 소세키의 고양이에게 장난을 걸고 있으려나 등등 내 기준에서 생각의 날개를 펼친다. 눈 아프게 무슨 바느질이냐는 잔소리 같은 것도 난로 앞에서는 어떤 노래쯤으로 들릴 것이다. 여느 때와 다르게 굴뚝이 잠잠하던 집까지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다. 연일 계속된 추위 때문이리라.
집마다 벽을 따라 참나무 장작을 쌓아놓았다. 시각적인 연속성을 가진 장작은 겨울 풍경에 한 가지 모티프가 된다. 잘 마른 참나무로 불을 때면 화력은 세고 연기는 맑다. 참나무라서 잘 타고 마른 참나무라서 더 잘 탄다. 참나무는 타는 향이 좋고 오래 탄다. 종일 난로에 불을 피워도 남는 건 재 한 줌뿐이다.
참나무가 잘 타는 건 난로와 굴뚝의 단순한 관계성에도 있다. 난로의 굴뚝은 연기를 밖으로 뽑아내는데 아무런 장해를 받지 않는다. 또 연소에 필요한 산소 공급도 쉽다. 그전 아궁이와 굴뚝의 관계는 복잡했다. 연기가 방고래를 지나 개자리에 머물렀다가 나가는 구조였다. 그러니 난로에 불 피우는 것과 연도가 긴 아궁이에 불 때는 조건은 좀 다르다. 난로에 불을 피우기 위해 장작을 가지러 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잠시 그 시절을 떠올린다.
겨울이 시작되면 땔감을 해 나르느라 바빴다. 집마다 벽을 따라 나뭇가리를 쌓았다. 겨울이 깊어지면 마른나무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때부터 생솔가지를 해다 날랐다. 생솔가지로 불 때는 건 참 어려웠다. 흐리고 기압이 낮은 날에는 더욱더 매캐한 연기만 나고 좀처럼 불이 살아나지 않았다. 부지깽이로 솔가지를 들썩여도 연기만 더 날 뿐이었다. 입으로 바람을 불어 넣느라 눈물 콧물을 빼고서야 찾는 게 있었다. 손풍로다.
나뭇단이 쌓여있는 나무 구덕에는 길고 짧은 부지깽이 두어 개와 불당그래 그리고 풍로가 수수 빗자루에 반쯤 가려진 채 아무렇게나 놓여있다. 그것들을 다시는 사용하지 않을 것처럼 던져버렸다가 번번이 찾는다. 특히 풍로는 살강 아래 부뚜막에 놓아야 하는 무언의 약속이 있는데 그걸 잘 지키지 않는다. 해도 그것들이 부엌을 벗어나 있지는 않고 항상 나무 구덕 안 어딘가에 있다.
풍로를 찾아 아궁이 입구에 놓는다. 알맞은 위치에 풍로의 주둥이를 묻고 손잡이를 살살 돌린다. 꺼져가던 불이 살아난다. 생솔가지에 입김을 조금씩 불어 넣는 풍로가 마치 생명 있는 무엇처럼 느껴진다. 불이 순조롭게 타기 시작하면 물방개 같기도 하고 작은 자전거 같기도 한 풍로를 살강 아래 올려 놓는다. 생솔가지가 타고 있는 아궁이 불길 끝 굴뚝에는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시나브로 눈물 콧물이 마른 내가 아궁이 앞에 앉아 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나는 생솔가지가 탈 때처럼 매캐한 연기를 뿜어대고 있다. 해마다 이맘때면 장을 봐 나르고 식탁보를 갈고 꽃을 꽂고 들떠서 촛불을 켰는데 올해는 좀처럼 당기지 않는다. 큰 이유는 없다. 그냥 쭉 저기압이다. 하필이면 연말연시에 까닭 모를 우울감에 빠지다니. 공연한 일을 만들어서 스스로 괴로워하는 존재가 인간이라는데 나 또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일주일만 혼자 지내 봤으면 하는 데서 시작됐다. 당장이라도 그러면 되는데 왜 못 하고 있는 걸까. 마음뿐이지 혼자서는 마땅히 갈 곳이 없다. 사람은 원래 태생적으로 오래 고독에 빠지느니 전기 충격을 택한다는 실험 결과가 있다는 걸 읽었다. 그런 아이러니를 난 동의할 수가 없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젖은 나무 같은 심정이 된 걸 옆에 있는 사람 탓으로 돌렸다.
장작을 날라 난로에 불을 붙이고 그 앞에 의자 두 개를 가져다 놓고, 그가 바람을 일으키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그도 힘이 빠질 때가 있었다. 그때 나는 찌개를 끓이느라 바람을 일으키며 바쁘게 움직였다. 생솔가지를 해다 나를 일 없는 오늘은 그저 난로 앞에 앉으면 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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