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식장에서 부화해 수족관에 갇혀 있다 뜨겁게 달궈진 소금판 속에서 생을 마감하는 새우의 일생에서 주어진 자기 몫에 대해 얼마나 진솔해질 수 있을까. 무심히 보았던 하찮고 보잘것없는 미물도 생명에 대한 존귀함은 있지 않겠는가. 붉게 변한 새우의 몸뚱이는 고통을 수반한 결과물의 흔적이다."
살아 있는 순간에 대한 예의 - 이명진
부지런히 움직인다. 가느다란 발들이 분주하다. 어디로 가는 길을 특별히 만들어 놓지 않았음에도 여전히 바쁘다. 잠시 앉아 쉬지도 않는다. 물살이 출렁일 때마다 흔들리는 수염은 한껏 뽐내기를 하고 있다. 산소를 쏟아 놓는 물거품 속에서 몇 시간의 생존을 위해 온몸으로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어느곳을 향해 가고 싶은 것일까. 자기 마음대로 갈 수 없는 갇힌 공간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들의 끝없는 질주가 애처롭기만 하다.
더위가 사그라질 무렵, 초가을의 선선함이 피부에 와 닿을 때쯤이면 대명항은 ‘왕새우 소금구이’ 현수막으로 현란해진다. 빨강, 파랑, 노랑, 초록, 원색의 선명함은 펄럭일수록 더욱 눈길을 붙잡는다. 언제부터인가 9월로 접어들면서 대명항은 왕새우 소금구이를 찾는 손님들로 북적였다. 김장철 새우젓으로 유명해진 항구에 횟집들이 늘어나면서 여름내 치어를 키워온 양식장에서는 앞다투어 흰다리새우 출하를 서두르기에 급급하다. 수족관에 갇힌 새우들은 자신들이 태어난 곳이 양식장 어느 수조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활어차를 타고 이곳까지 와서 바라보는 세상은 다양한 형태의 수족관 넓이 만큼이 전부다.
흰다리새우과인 왕새우는 대명항에서 전어와 함께 입맛을 돋우는 가을의 대표 수산물로 손꼽힌다. 새우는 단백질, 비타민, 타우린, 칼슘 등 각종 영양분이 다량 함유돼 있어 아이들 성장 발육에 최고다. 또한 고단백 저지방식품으로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된다고 알려졌다. 특히 해산물 특유의 비린맛을 싫어하는 손님들도 씹을수록 고소한 식감에 금방 빠져 들곤 한다. 달궈진 소금판에서 익힌 새우구이 맛은 담백해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받는 메뉴가 되었다. ‘새우’의 몸은 딱지로 덮여 있고 머리, 가슴, 배로 나뉘어 있다. 두흉부는 딱딱한 원통이 감싸고 있다. 한 쌍의 자루가 있는 눈은 까맣고 동그랗다. 두 쌍의 더듬이와 다섯 쌍의 가느다란 다리는 볼수록 눈을 어지럽게 만든다. 육지가 아닌 물속에서 양발을 이용해 헤엄을 치는 모양은 카약을 젓는 선수들의 진지함으로 다가온다. 일곱 마디로 되어 있는 배 부분은 몸을 물에 떠가게 하는 데 편하도록 발달되어 있어 근육처럼 단단해 보인다. 아가미로 호흡하고 암수딴몸으로 탈바꿈하는 새우들은 가을철 건강식으로 모자람이 없다.
작년 이맘때쯤. 부탄에서 린첸이 한국 방문 소식을 알려왔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탓에 보고 싶고 그리운 마음은 하늘만큼 땅만큼 깊었다. 설레는 기분을 가라앉히며 무엇을 먹여야 하나 고민할 필요도 없이 한창 제철인 왕새우 소금구이를 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부탄에 없는 독특한 한국 요리를 소개해 줄 수 있어 내심 뿌듯해졌다. 부탄은 바다가 없는 나라였다. 히말라야 산맥에 둘러 싸여 빙하가 녹아내린 물이 강을 이루고 있는 특이한 지형을 지닌 작은 나라다. 그에게 왕새우 소금구이는 별미 중 별미일터였다. 하지만 그가 도착하고 식단이 차려졌을 때, 내 상상과 기대는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부탄은 80% 이상의 국민이 불교를 숭앙하며 부처님 말씀을 실천하고 있는 국가였다.
“저는 자연사하지 않은 동물들은 먹지 않습니다.”
그는 흔들림 없이 차분한 음성으로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뿔싸! 부처님 가르침에 의해 낚시도 국법으로 금지시키고 있는 나라 아니던가. 바다가 없어 생선은 귀한 음식일진대 강에서 낚시조차 금지시켰으니 그들은 비린 맛을 알지도 즐기지도 못할 일이었다. 특히 린첸은 불자로서 출가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는 한국에서의 유학 생활로 인해 비린 생선을 먹을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다. 단지 뜨겁게 달궈진 냄비 속에서 소금열로 인해 꿈틀거리며 요동치는 새우의 몸부림을 보고 자비심이 발동한 때문이었다.
사실 린첸뿐 아니라, 대다수 손님들도 살아있는 새우를 달궈진 소금판에 넣는 순간, 파닥거리는 몸부림을 보며 잔인하다고 소리친다. 하지만 잠깐의 몸부림 후에 벌겋게 익어가는 새우살을 맛나게 먹지 않는 손님은 없다. 불교에서는 사바세계에서 가장 상위 등급인 사람이 먹기 위해 동물과 곤충을 죽이는 행위는 용서 받을 수 있다고 했던가. 먹거리를 앞에 놓고 사람들의 겉마음과 속마음이 생각과 크게 다름을 발견할 때마다 당혹스러워진다. 불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린첸이 살생을 하지 않으려 하고 도축한 고기보다는 자연사한 가축만 고집하는 일도 어쩔 수 없는 보살행이라 여겨졌다. 그의 진지한 태도에 가을철에만 맛볼 수 있는 새우를 최고의 보양식이라고 권하던 손길이 슬그머니 부끄러워졌다. 난 불자는 아니지만 살아 있는 미물들의 목숨을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자체가 예의가 아닌 듯싶었다.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본의 아니게 죽음에 대한 강도를 깊게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이 항상 열려 있다면 세상은 어떠할까. 아마 재미없을지 모른다. 악한 죄를 모르고 정직함만 지닌 채 살아간다면 도덕과 윤리, 규범따위는 만들어지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어리석은 질문이 마음보다 앞서나감은 보고 느끼고 깨달아야 하는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양식장에서 부화해 수족관에 갇혀 있다 뜨겁게 달궈진 소금판 속에서 생을 마감하는 새우의 일생에서 주어진 자기 몫에 대해 얼마나 진솔해질 수 있을까. 무심히 보았던 하찮고 보잘것없는 미물도 생명에 대한 존귀함은 있지 않겠는가. 붉게 변한 새우의 몸뚱이는 고통을 수반한 결과물의 흔적이다. 저들은 살아생전 아무 잘못한 일도 죄 지은 일도 없을 테니 다음 생에서는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참 좋겠다. 쉼 없이 움직이는 그들을 따라 잡는 내 눈길이 살아 있는 순간에 대한 최대한의 예의라면 그것도 오만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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