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인간과 문학/인간과문학 수상작

[인간과문학] 제6회 신인작품상, 수필 부문 당선자 '조인순'님을 소개합니다.

신아미디어 2018. 12. 10. 15:54

제6회 인간과문학 신인작품상 수필 부문 당선자 '조인순'님의 수필 1편을 소개합니다.


 

수의 옆, 하얀 고무신


   앰뷸런스가 병원에 도착했다. 간호사가 어머니 몸에 연결된 링거를 빼기 시작하니 옆 침대에 누워 계시던 박분 할머니는 힘없는 시선으로 눈물을 보냈다. 주치의는 연결된 산소통 조절법을 다시 설명해 주며, 내 주머니에 쪽지 하나를 넣어 주었고, 뒤따르던 담당 간병인이 검정 봉투로 포장된 고무신을 꺼내어 양말도 없는 어머니 발에 신겨 드리며 손을 잡고 인사를 했다. 잘 가시라고.
   탁 막힌 엘리베이터를 벗어나 출구로 들어서니 기다렸다는 듯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태양을 밀어내고 찬란한 노을빛으로 어머니에게 인사를 했다. 하루를 보내고 저문 찬란함이 어머니의 삶에 대한 노고에 꽃길을 선사하고 싶으셨나 보다.
   앰뷸런스에 앞서 오른 어머니. 오랜만에 느끼는 바깥 공기에 눈인사하듯 감긴 눈동자가 움직였다. 어머니도 알고 계신 것 같다. 지겹게 다니던 이곳도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지난날 아버지가 머물다 가신 이 발자취를 밟으며, 어머니는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집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어린 조카가 이동 중에 떨어진 고무신 손에 쥐며 내게 물었다. 신발 신겨 드릴까요? 라고.
   감정 없는 앰뷸런스. 삶에 무슨 미련 있냐는 듯 소리 한 번 없이 고속도로를 쉼 없이 달리니, 마치 숨 가쁘게 살아온 어머니의 삶을 한순간으로 압축하여 보여주는 듯했다. 시간 반을 달려온 앰뷸런스가 읍내로 들어서니 정겨운 상호들이 세월의 흔적을 보이며 어머니와 지난날의 발자국을 뚜렷하게 나타내고 인사를 하는 듯했다.
   “엄마. 옥과에 왔네. 오늘 오일 장날이구만.”
   열흘 전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 더 이상의 소리를 잃어버리신 어머니. 덮인 눈동자로 반응을 하고 있었다.
   ‘듣고 계시구나.’
   “공주 미용실 지나가네. 엄마 양딸이 되어 준 공주 미용실.”
   육남매 자식을 뒀어도 바쁘지 않은 자식 없으니 병환에 계신 어머니 모실 수 있는 자 없었고, 몸져누웠어도 하루 세끼 챙겨줄 이 없어 요양보호사만 의지했던 우리. 목욕 한 번 시켜 드리지 못한 나였기에 더더욱 부끄러웠다.
   어느 새 어둑해진 무거운 그림자 차창을 노크하니, 유난히도 둥근 달이 얼굴을 내밀며 수많은 별빛들로 길을 밝혀줬다. 어제 공기 오늘 다를 바 없고, 오늘 공기 내일 바를 바 없겠지만 지금 어머니가 가고 있는 이 길은 다시 못 올 길임을 알고 있다.
   한 달 전. 급히 시골로 내려와 달라는 이민 아짐의 전화. 하루건너 하루를 시골로 오간지라 왜 그러냐는 반문 없이 또 출근을 미루고 시골로 향했다. 8시에 출발한 차는 정오를 중심으로 도착하여 현관을 들어서니 여전히 손길을 기다리는 기구들과 시쿵한 냄새. 그리고 그 속에 누워 계시는 어머니 힘없는 소리로 한마디 했다. “왔냐”라고.
   “고새를 못 참고 불렀어? 우리 엄마는 내가 집에서 노는 줄 안갑구만?”
   오전에 방문하는 요양보호사가 현관문을 나서자 어머니는 힘없는 손짓으로 광 방을 가리켰다. 앞전에도 그 앞전에도 광 방에 잘 보관된 수의 안부를 내게 묻곤 하셨던 것이다. 누구인들 부모 수의를 곁에 두고 싶겠냐만 십여 년 전 딸이 지어 준 수의를 입고 싶다는 말에 전주까지 가서 직접 제작하여 맞춘 수의를 요 근래 자주 안부를 묻고 하셨다. 나는 들고나온 수의 보자기를 어머니 곁에 두었다.
   어둑함이 눈을 채우니, 쌀뜨물 받아 들깨를 갈고 찹쌀가루를 넣어 끓인 죽을 어머니 입에 한 술 넣어 드렸다. 겨우 서너 술에 고개 돌리신 어머니. 기저귀 갈고 잠자리를 보는 순간에도 수의 보자기를 꼭 쥐고 계셨다. 갓난애기가 아닌 어른 애기다.
   외진 산골 마을. 깊어지는 적막함을 깨워 주는, 부엉이 소리 한 번 있을 법하고 귀뚜라미 소리 들릴 법도 한데, 아직 잠들지 않았음을 알리는 어머니 호흡 소리에 그 미물들은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어머니는 힘없는 손으로 수의 보따리를 풀어 달라는 신호를 했다. 언제나 안부를 받으며 잘 있어 준 수의건만, 오늘은 본인이 입을 것을 알고 준비하는 것 같아 묶인 끈을 풀어 보여드렸다. 먼저 선을 보이는 노르스름한 칼라와 꼿꼿함으로 길게 뻗은 허리끈, 모자, 버선, 베개 등등을 내리니, 우아함보다 웅장함이 옳을 것 같은 원삼과 각을 보이며 정갈하게 개여 있는 속바지, 보일 듯 말 듯한 가슴을 엿보게 하는 속저고리와 저고리. 큼직하니 멋을 품고 있는 속치마와 치마. 그리고 입지 못하고 급하게 가신 아버지 수의가 그대로 있었다. 아무 말 없이 지켜보는 내게 아버지 수의를 펼치게 하셨다. 순간. 수의와 함께 흐트러지며 나를 놀라게 하는 빛바랜 그것들. 얼핏 봐도 수년이 넘어 보이는 누런 지폐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곧이어 들려오는 어머니의 작은 소리.
   “하얀 고무신 하나 사 주고 너 맛난 거 사 먹어.”
   긴 세월 누워만 생활했던 어머니는 시간이 더할수록 몸은 쇠약해져 갔고, 지니고 있던 관절은 뼈 마디마디를 끊었으며 어느 때는 염증으로 인해 고름을 쏟아내기도 했다. 그런 분이 이 많은 돈을 아버지 수의 안에. 시골 집 지을 때도, 오빠 결혼할 때도 심지어 본인 병원비도 없다며 내게 돈을 요구하던 어머니셨는데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은 그 모든 것을 해결하고도 남는 금액이었다. 평생을 안 쓰고 아끼시며 모으셨던 것을 고작 신발 한 켤레와 과자 값이란다. 그동안 가족의 뒷바라지에 숨 막혀 했던 내 자신이 부끄럽고 죄스러워 차마 어머니가 살아오신 모든 삶을 받을 수 없어 고개를 돌린다.
   다음 날 나는 읍내에 나가 하얀 고무신을 샀고 며칠 뒤 어머니는 그 신발을 신고 병원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돌아오는 말은 간략했다. 긴 세월과 고질병이 만났으니 더 이상 손을 쓸 수가 없다고. 나는 보름 동안 어머니를 지켜보다 주치의 동의를 얻어 어머니를 집으로 모시기로 했다. 그렇게 집으로 오신 어머니는 눈 한 번 뜨지 못한 채, 한 평생 영혼 담았던 울타리를 등지고, 구석구석에 품었던 아픔의 흔적들을 보이지 않게 챙기며, 가시면 영영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가시는데도 투정 한 번 없이 좋으신 듯했다.
   이렇게 성치 못한 몸을 가지고 먼 길 가시는 어머니를 또 어찌 홀로 보낸단 말인가. 이런 내가 자식임에 한 맺힌 탄식뿐이다. 아이고.
   큰 덩치 힘들어 어떻게 니네 아버지에게 갈까 라며 농담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그녀의 몸은 병들어 생을 마감하는 앙상한 나뭇가지와 같았다. 이승 길에 끝이 어디인지 모르겠으나 그냥 이대로 조금만 더 내 곁에 있어 주길 원하는 간절함은 욕심일까? 아낙의 몸으로 육남매 키우면서 호통 한 번 없으셨던 어머니. 병든 몸은 자리 잡고 누워 있으나 바람에 힘입어 언제 어디서든 목소리 보낸다던 어머니. 그녀도 누군가의 딸이었고 여자이었던 것을 한평생 자식새끼가 전부였던 삶이 이제는 지치셨는지 본인이 손수 지으신 울타리까지 외면하고 남겨진 미련 한 점까지 챙기셨다. 저 멀리 가고 오지 않으시려고.
   ‘미안해 엄마. 엄마 투병을 내 짐으로 생각했었어. 이런 나 죽어서도 용서하지 마.’
   얼마 남지 않은 산소통이 신호를 보낸다. 야속하다 말함도 불효인 것을.
   “엄마, 서운한 것 없냐고 물었지? 전혀 없어. 자식을 키워 보니 나도 엄마처럼 엄마더라.”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던 날 용서 말고. 엄마 딸 안하고 싶다던 날 용서하지 마.’
   가만히 누워만 계시던 어머니 내 말을 듣고 계신 듯 검은 물변을 쏟아냈다. 냄새가 없다. 기저귀 갈고 물티슈로 정리를 하니 검붉었던 속살결이 하얗게 변하고 굽었던 다리가 내 손 위로 펴지고 있었다. 미흡하게 습기가 차던 산소호흡기가 말라가고 십여 초간에 떨림을 같던 어머니는 남은 힘을 다해 윗입술을 당기는 것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호흡은 없었다. 순간 주치의가 주머니에 넣어 준 쪽지 내용이 생각났다. 심장이 멈추고 5분 뒤에 뇌가 멈춘다는. 먼저 터트린 조카 울음소리를 잠재우고 수의 옆에 놓인 신발을 들고 어머니 곁으로 갔다. 무슨 짓이냐며 나무라는 소리도 있었지만 전혀 개의치 않고 어머니에게 신발을 신겼다.
   “아이고 딱 맞네. 엄마 이 신발 신고 이젠 걸어가. 뛰어도 봐. 그곳은 아픔 없고 슬픔 없다더라. 더 이상 힘들어 하지 말고 가벼운 마음으로 아버지 만나. 그리고 나 엄마 사랑해.”
   5분 뒤 임종 시간이 들렸다. 저녁 11시 43분이라고…….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