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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8년 08월호, 통권202호 I 지상에서 길찾기] 콧줄이라도 꿰놓을 것을 - 윤선경

신아미디어 2018. 10. 11. 21:01

“콧줄이라도 꿰놓을 것을.” 아빠가 떠오를 때마다 엄마는 중얼거린다. 지금도 새록새록 생각나나 보다. 그렇게 싸우던 부부가 그리워한다는 게 나는 도통 이해가 안 된다. 엄마의 그 극성맞은 성미를 받아줄 사람은 아빠밖에 없어서일까. 어떤 상대는 곁에 있는 것만으로 삶에 활기를 주나 보다. 엄마의 우울은 살아가는 동력을 잃어버려서인지 모른다. 미움도 사랑만큼 삶에 자극을 주는 걸까. 그런 깨달음은 늘 너무 늦게 찾아온다. 사랑과 미움이 그렇게 분명하게 분리되는 게 아니라면 미움은 사랑의 다른 이름인지 모른다."







   콧줄이라도 꿰놓을 것을    -    윤선경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맥주 캔을 딴다. 그게 요즘 내가 사는 낙이다. 한두 번 마시기 시작한 게 어느새 습관이 됐다. 밤늦게 일 마치고 돌아오면 한잔하고 싶은데, 엄마가 꼭 잔소리다. 그게 듣기 싫어서 주차장에서 마시고 집으로 들어간다. 아예 차에 맥주를 실어 놓았다.
   내 이름은 김은숙. 나이는 쉰 중반을 넘었다. 운 좋게 아직 직장을 다니고 있고, 제법 너른 집도 가지고 있다. 외모는 두리뭉실해서 관심을 가지고 보지 않으면 스쳐 지나가도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말을 마음에 담아두거나 재는 법이 없어 남자 같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아들은 취직해서 서울로 갔고, 남편은 오래전에 내 곁을 떠났다. 얼마 전부터 친정엄마를 모시고 산다.
   갑자기 엄마를 병원에 모시고 갈 일이 생겼다. “아이쿠, 이게 뭐냐.” 뒷좌석에 탄 엄마가 화들짝 놀랐다. 맥주 캔 치우는 걸 깜빡했다. 집에 모셔다주고 다시 직장에서 일하는데 엄마가 전화했다. “운전하면서 술 마시고 다니지 마러.” 전화기를 타고 나오는 호통 소리에 혼비백산했다. 옆자리 동료들이 킥킥거리고 웃는다. 
   처음에는 괜찮았다. 아니 실은 조금 좋기도 했다. 나는 혼자 밥 먹는 게 늘 싫었다. 끼니를 거르기 일쑤였고 어쩌다 마음 내켜 음식을 만들어도 같이 먹을 사람이 없어 매양 남 좋은 일만 했다. 그러던 차에 엄마가 왔다. 밤늦게 집에 돌아와 컴컴한 거실의 불을 켜지 않아도 됐고, 식탁에 달랑 수저 한 벌 놓고 밥 먹는 일도 없어졌다. 라면을 끓여 냄비째 먹는 일도, 식탁에 플라스틱 반찬 통을 늘어놓는 일도 없어졌다. 그런데.
   나는 동방신기 팬클럽 회원이다. 나잇값을 못 한다고? 그러지 마시라. 그 재미가 얼마나 쏠쏠한데. 모임에 가면 왕언니로 대접받고, 젊은 애들이랑 요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면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모두 풀린다. 어느 날 걔들이랑 통화하는 소릴 엄마가 엿들었다. 살금살금 고양이처럼 다가와 전화를 가로채더니 애들에게 호통을 쳐댔다. 남의 딸 함부로 불러내지 말라고, 애 버려 놓는다고, 도대체 엄마는 나를 몇 살로 아는 걸까?
   그래도 나는 내로라하는 명문대학 운동권 출신이다. 학교 다닐 때는 데모도 했고, 운동권 집회에도 뻔질나게 참석했다. 엄마는 고향이 야당 텃밭인 남도 지방이지만 늘 여당을 찍었다. 이번에도 그랬다. 여든이 넘은 엄마가 온갖 자료를 나에게 들이대는 통에 나도 은연중에 물이 들어 버렸다. 선거의 후유증은 참담해 나는 지금도 우울하다. 거기에는 집권의 미련을 버리지 못한 엄마의 영향이 크다.
   아빠 살아 계실 때 우리는 늘 엄마가 옳고 아빠는 그르다고 생각했다. 항상 아빠가 잘못한다고 생각했다. 아빠가 돌아가시자 형제들이 교대로 엄마를 모시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내 차례다. 형제들은 모두 두 손을 들었다. 엄마 비위를 맞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러니 한쪽 이야기만 들어서는 세상은 모르는 법이다.  
   우리 집에 오기 전에 엄마는 갖고 있던 땅을 조금 처분했다. 엄마가 허리를 다친 후라 정신도 좀 몽롱한 거 같아서 내가 부동산 일처리를 도맡아 했다. 그때 슬그머니 액수를 조정해 내 주머니에 좀 챙겨 넣었다. “내 돈 내놔라.” 요즈음 엄마는 내가 마음에 안 들 때면 고함친다. 모르는 줄 알았더니, 알고도 모르는 척했다. 내가 엄마를 속인 게 아니라 엄마가 나를 속인 거다. 내가 한 짓을 모르는 척하고 우리 집에 들어와서는 그걸 빌미로 나를 협박한다. 엄마는 종일 나를 따라다니며 전기 스위치를 내린다. 우리 집은 얼마 전에 등을 모두 LED 등으로 교체해 전기료도 얼마 나오지 않는데.
   누가 친정엄마 모시기가 더 낫다고 했나. 이제는 땅문서도 싫고 돈도 싫다. 며칠 전 저녁, 지친 나는 엄마가 깰까 봐 살그머니 들어와 불도 켜지 않은 부엌에서 조용히 술을 마셨다. 안방에서 엄마의 기척이 들렸다. 나는 황급히 방으로 도망갔다. 다음날 냉장고에는 어제 먹다 마신 병맥주가 얌전하게 뚜껑이 닫힌 채 들어 있었다. 이럴 때는 도대체 엄마가 나에 대해 모르는 게 무엇이 있나 싶다. 부처님 손바닥 안이 아니라 집고양이 손바닥 안이다.
   엄마 때문에 못 살겠다고 투덜거리자, 친구들이 한마디씩 거들었다. “네게 애착이 강한가 보다.” “네가 엄마의 아픈 손가락이 아닐까.” 나는 우리 엄마랑 하루만 같이 살아보라고 했다. 엄마는 늘 누군가를 돌보며 살아왔다. 혼자되신 할머니를 돌봤고, 아빠를 돌봤다. 아빠는 일흔에 중풍이 와서 오 년간 앓다 돌아가셨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엄마는 우울증이 와서 이 년간 약을 먹었다.
   “콧줄*이라도 꿰놓을 것을.” 아빠가 떠오를 때마다 엄마는 중얼거린다. 지금도 새록새록 생각나나 보다. 그렇게 싸우던 부부가 그리워한다는 게 나는 도통 이해가 안 된다. 엄마의 그 극성맞은 성미를 받아줄 사람은 아빠밖에 없어서일까. 어떤 상대는 곁에 있는 것만으로 삶에 활기를 주나 보다. 엄마의 우울은 살아가는 동력을 잃어버려서인지 모른다. 미움도 사랑만큼 삶에 자극을 주는 걸까. 그런 깨달음은 늘 너무 늦게 찾아온다. 사랑과 미움이 그렇게 분명하게 분리되는 게 아니라면 미움은 사랑의 다른 이름인지 모른다.
   한 달 남짓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교체하고 있다. 다리가 불편해 계단을 오르내릴 수 없는 엄마는 오빠 집으로 갔다. 모처럼의 자유가 시원하고 좋았다. 그런데 이 주가 지나자 뭔가 심심하고 허전하다. “밥은 먹었냐?” 엄마는 저녁마다 전화를 한다.
   차에서 꺼낸 맥주 맛이 밍밍하다. 마치 자유 잃은 내 일상 같다. “콧줄이라도 꿰놓을 것을.” 나도 엄마가 돌아가시면 그런 말을 하게 될까.

 


*콧줄: 레빈 튜브. 음식을 삼키지 못하는 환자에게 유동식을 코에서 위로 공급해주는 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