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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8년 08월호, 통권202호 I 지상에서 길찾기] 시어머니의 국시기 - 이동실

신아미디어 2018. 10. 13. 18:12

짭조름하면서도 알싸한 어머니표 돼지껍질볶음도 먹고 싶은 걸 보면. 한 집안의 아내와 며느리로 살아가는 것도 익숙해져가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적잖은 세월이 흘러가고 있다. 이슬비가 내리는 오늘, 국시기를 끓인다고 하니 막내는 웃기만 한다."







   시어머니의 국시기    -    이동실


   신혼시절이었을 것이다. 오늘처럼 비가 내리고 따끈한 국물이 생각나는 날이었다. 저녁 반찬을 뭘 할까 고민하며 퇴근을 했는데 시어머니께서 별미를 해두었다고 하셨다. 뜨끈할 때 빨리 상을 차리라기에 바로 부엌으로 들어섰다. 시할아버지도 좋아하신다며 큰 대접까지 챙겨 놓으셨다. ‘삼계탕이나 곰국을 끓이셨나 보다.’며 기대를 가지고 솥뚜껑을 열었다.
   ‘아니, 이게 뭐지?’
   나는 멈칫 한발 뒤로 물러섰다. 구수한 고기 냄새가 나야하는 솥 안에서 멸치에 김치 냄새가 훅 올라왔다. 내 후각이 잘 못 되었나 싶어 솥 안을 들여다보았다. 난생처음 보는 이상한 음식이 들어있었다. 국자로 저었더니 고춧가루와 밥알도 섞여 있고 국물도 벌겋게 우러나 있는 것이 영 이상했다. 어머니께는 미안한 말씀이지만 꿀꿀이죽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는 재촉하셨다. 얼른 먹지 않으면 퍼진다고 했지만, 나는 입맛이 동하지 않았다. 뜨겁기만 할 뿐 아무 맛을 느낄 수가 없어 먹는 시늉만 했다.
   “이기 시원하고 얼마나 맛있는데.”라는 시어머니 말씀에도 배가 부르다며 수저를 놓았다.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지만 넘길 수가 없었다. 처음 보는 음식이라 거부감마저 들었던 것이다.  
   주말부부로 지내는 남편이 생각났다. 아버님의 사랑을 독차지한다지만 시부모님 방에 있는 전화로 남편에게 투정할 용기는 없었다. 어른들 몰래 밖으로 나와 공중전화 박스로 갔다. 전화기 너머로 남편의 목소리가 들리자 우리 집에 가고 싶다며 막무가내로 울었다. 뜬금없는 상황에 남편이 놀라 다그쳤다. 그렇다고 뭐라며 할 말도 없었다. “그냥.”이라는 내게, 남편은 온갖 상상을 해대며 물었다. 울다 보니 나도 싱거워졌다. 김치에 멸치, 콩나물, 밥까지 한꺼번에 넣어서 끓인 꿀꿀이죽 같은 음식 이름이 뭐냐고 했다. 그제야 상황 판단이 된 남편은 “국시기”라고 했다.
   껄껄껄 웃던 남편과 나는 전화기를 들고 서로가 다르게 자라온 문화생활에 대해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고나 할까. 지방마다 가정마다 음식 문화가 다르다. 경남에서 살아온 남편과 달리 경북에서 태어난 나는 국시기라는 음식을 들어 보거나 먹어 본 적이 없었다. 표준어로 ‘김치국밥’인 국시기는 남편의 가난했던 어린 시절이 추억처럼 끓고 있었다.
   살기 좋은 지금은 비가 오거나 몸살이 났을 때는 뜨끈하게 먹으면 좋고, 입맛이 없을 때 얼큰하게 먹으면 입맛이 돌기도 하고, 해장으로도 권할 만한 것이라고 어머니께서 가끔 끓여 주신다고 했지만 나는 오랫동안 국시기를 끓인 기억은 없다.
   몇 년 전 일이다. 남편이 친구가 발령이 났다며 과음을 하고 왔다. 벌어진 술판에 술 인심이 대단했던 모양이다. 코라도 비틀면 술이 술 술 하고 흘러내릴 것 같았다. 해장국 끓일 재료가 마땅치 않아 냉장고 문을  열고 서성이다 ‘국시기’가 떠올랐다.
   다시마와 무, 마른 표고로 육수를 내고 콩나물과 대파도 넉넉히 준비했다. 떡국 한 줌과 밥을 조금 넣고 끓이다 숙성된 김치와 땡추도 두어 개 다져 넣었다. 간을 보니 입맛이 동했다. 남편은 속이 쓰리다며 힘들어하다가 국시기를 먹으니 속이 풀리는 것 같다는 게 아닌가. 시원하다던 어머님 말씀이 비로소 수긍이 갔다.
   모르는 두 사람이 만나 평생을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서로 모르던 문화가 만나 충돌하고 부서지고 화합하며 하나로 다듬어져 간다는 것일 게다. 나는 시어머니의 국시기를 만나고 받아들이는 짧지 않은 시간 속에서 이러한 이치를 조금은 터득한 것 같다. 처음 본 어색한 비주얼과, 혀가 받아들이지 않는 배타적인 그 맛이 조금씩 내 입맛과 정서에 녹아드는 과정은, 남편 집안의 개성과 문화를 받아들이는 삶의 여정이었을 것이다.
   요즘 들어 새치가 늘어만 간다. 아닌 휜 머리카락이 나서 염색을 해도 잠시 잠깐이다. 동안童顔이라던 말도 옛말이고, 얼굴에 차지하는 주름의 크기도 넓어져만 간다. 이렇듯 나이가 들어 삶을 삭힐 줄 알게 되어야만, 함께 사는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감춰져 있던 인간적인 맛도 알게 되나 보다.
   짭조름하면서도 알싸한 어머니표 돼지껍질볶음도 먹고 싶은 걸 보면. 한 집안의 아내와 며느리로 살아가는 것도 익숙해져가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적잖은 세월이 흘러가고 있다. 이슬비가 내리는 오늘, 국시기를 끓인다고 하니 막내는 웃기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