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敎壇을 내려선 지도 어언 십여 년, 뒤늦게나마 매사에 사랑의 열정을 쏟아야겠다. 사랑을 머금은 꽃바람은 마른 가지에도 물을 올린다지 않는가. 일회성인 내 생명의 고갱이에 불을 댕겨, 민 박사와 같은 집념으로 오달지게 살다가 홀연히 떠나고 싶다. 남은 생을 잉걸불로 활활 타다가 유성처럼 가뭇없이 사라지고 싶다."
유성처럼 - 백남일
사는 일 심드렁하거들랑 뜰에 내려 밤하늘을 우러러볼 일이다. 이때 꿈결이듯 섬광으로 다가서는 빗금, 꼬리별의 메시지는 나태한 일상들은 송두리째 사르라 한다.
사라지는 것들은 늘 아쉬움을 동반하게 마련이다. 피어나는 꽃잎이야 농염한 향훈에 취해 방싯대지만, 시부저기 흩날리는 낙화의 몸짓은 피날레를 장식하는 춤사위다. 천지간의 만물 생성이 창조주의 배려이거늘, 그 형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 또한 절대자의 의도가 아닐까?
우주 공간에 쏟아지는 별똥별은 하루에도 천만 개가 넘는다고 한다. 이들은 대기권에서 빠른 속도로 낙하하다가 공기와의 마찰로 불에 타 사라지고 만다. 그 허망한 모습을 육안으로 관찰할 수 있는 시간은 불과 1초 내외로, 사자자리나 페르세우스자리 근처에서 주로 나타난다.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도 나를 태워 소멸시키는 과정이 아닌가. 하면, 어떻게 태울까? 혹자는 타다가 운석隕石으로 남기도 하고, 때론 깜냥껏 태운 보람으로 보석 같은 사리舍利를 남기기도 한다.
지난 주말엔 흰 파도 밀리는 서해의 바닷가를 거닐었다. 속진에 찌든 마음을 청량한 파도 결에 헹궈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천리포 해안을 감싸고 있는 포실한 숲에 그만 시선을 앗기고 말았다. 모래톱을 가로질러 녹색궁전에 드니 ‘천리포수목원’으로 오르는 오솔길이 뻐끔히 나를 반겼다.
이곳은 한국 최초의 사립 수목원이다. 설립자 민병갈 원장의 원명은 Carl Ferris Miller로 우리나라에 귀화한 펜실버니아 출생의 미국인이다. 그가 미군 정보장교로 한국에 배속되었을 때, 금융전문인인 그를 한국은행이 고문으로 초치招致했다.
은행에 근무하던 어느 해 여름이었다. 천리포해수욕장에 피서 왔다가 인근 산세를 둘러볼 때였다. 벽안碧眼의 눈에 띈 남향받이의 아늑한 동산에 그만 매료당하고 만다. 쪽빛 하늘가를 떠돌던 ‘떠돌이별’의 일생일대 운명이 결정지어지는 순간이었다.
18만 평의 민둥산을 구입하게 된 이면에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갯마을에 전해진다. 부동산 투기에 이골이 난 내국인과는 달리 그는 ‘나무 사랑’의 꿈을 심어 에덴동산으로 가꿀 최적의 지형을 만나게 된 셈이었다.
지구 곳곳을 누비며 수집한 온대성 관상수 식재植栽에 열정을 쏟은 30여 년의 세월은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을 게다. 하나, 먼 훗날을 내다본 조림사업에 대한 신념은 신의 계시와도 같았다. 황무지를 개간하여 일군 터전에 철 따라 꽃이 피고 멧새 지저귀는 자연의 앙상블에 땀 흘린 보람을 느꼈을 게다.
새는 나무를 골라서 내려앉지만, 나무는 새를 가려서 받는 법이 없다. 우로를 마다하지 않는 숲의 생리대로 봄이 오면 속잎 피우고, 가을이 되면 발등에 낙엽을 내려놓는다. 순리대로 태어난 생명이기에 안분지족의 분수대로 바람이 불면 바람을 끌어안고, 달빛이 내리면 달빛을 머금고 숲은 그렇게 속살을 채워갔다.
전지가위를 들고 언덕바지를 오르내릴 때가 가장 행복했노라고 그는 술회했다. 말없이 하늘을 향해 올곧게 자라는 나무처럼 살고 싶어 했던 그도, 열정의 나날을 접고 어느 날 희귀종인 연초록 목련꽃 이우는 날 홀연히 떠났다.
평생 독신으로 산판을 누볐기에 임종을 지켜줄 피붙이가 있을 리 없고, ‘서해안의 푸른 보석’이라 불리는 산림자원을 물려줄 친척도 없었다. 그러나 그가 살아온 일생은 보람 있는 삶이 무엇이라는 것을 훤칠하게 자란 나무들이 대변해주고 있었다.
한반도에 떨어진 거룩한 별똥별 하나! 이제 열정의 세월 다 내려놓고 영면하길 기원하는 마음 간절했다. 시신은 당신의 유언대로 수목장으로 치러져 지금은 15만 6천여 그루의 분신에서 푸른 정기를 내뿜고 있다.
우리는 간혹 ‘왜 사는가?’라는 의문에 직면할 때가 있다. 이는 생의 당위성을 다지기 위한 물음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그보단 ‘어떻게 살 것인가?’를 궁구窮究해 보는 것이 생활인의 지혜가 아닌가 한다.
“연탄재 발로 함부로 차지 말라!”고 일갈한 어느 시인이 있다. ‘너는 그렇게 뜨겁게 사랑해 보았느냐?’는 힐책詰責에 나는 선뜻 대답을 못한다. 미적지근하게 살아온 지난 칠십 평생이 저만치서 뭉그적대서이다.
교단敎壇을 내려선 지도 어언 십여 년, 뒤늦게나마 매사에 사랑의 열정을 쏟아야겠다. 사랑을 머금은 꽃바람은 마른 가지에도 물을 올린다지 않는가.
일회성인 내 생명의 고갱이에 불을 댕겨, 민 박사와 같은 집념으로 오달지게 살다가 홀연히 떠나고 싶다. 남은 생을 잉걸불로 활활 타다가 유성처럼 가뭇없이 사라지고 싶다.
'월간 수필과 비평 > 수필과비평 본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필과비평 2018년 05월호, 통권199호 I 세상 마주보기] 한복 사랑 - 변양섭 (0) | 2018.06.26 |
---|---|
[수필과비평 2018년 05월호, 통권199호 I 세상 마주보기] 흔들의자 - 변순자 (0) | 2018.06.26 |
[수필과비평 2018년 05월호, 통권199호 I 세상 마주보기] 나팔꽃 아침 - 박해경 (0) | 2018.06.24 |
[수필과비평 2018년 05월호, 통권199호 I 세상 마주보기] 흔들리다 - 박숙자 (0) | 2018.06.24 |
[수필과비평 2018년 05월호, 통권199호 I 세상 마주보기] 지리산 - 노춘희 (0) | 2018.06.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