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나팔꽃이라고 하지만 서양에서는 이 꽃에 모닝글로리(Morning Glory)라는 이름을 붙였다. 아침에 아름답게 피는 이 꽃을 보고 신성한 아침의 영광을 나타낸다는 느낌을 받은, 가슴 깊은 곳에서 나온 신앙고백 같다. 높은 곳을 향해 가려고 하는 나팔꽃의 그 마음을 배우고 또 배우면서 살다보면 보다 성숙하고도 아름다운 인생이 되지 않을까? 우리의 삶이 아침을 찬양하는 귀한 삶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나팔꽃 아침 - 박해경
작년, 남편의 정년퇴임을 축하하는 화분을 여러 개 받게 되었다.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 커다란 서양 난, 겸손해 보이는 동양 난 그리고 장미 꽃바구니 등 베란다가 꽃으로 가득 찼다. 꽃을 쳐다보고 있노라면 웃음이 절로 나오며 기분이 좋아진다. 이래서 축하 꽃다발을 주고받으며 마음을 전하는 가 보다. 꽃이 눈에 들어오면 나이가 든 것이라고 하는데 나도 나이가 꽤 들었나 보다.
얼마 후 그 아름답던 꽃들은 시들어 떨어지고 꽃을 받쳐주는 잎사귀들만 남았다. 꽃이 있는 것만은 못하지만 푸른 잎이 있어 베란다를 내다보는 느낌이 좋았다. 잎사귀만 있는 화분을 쳐다보다가 어린 시절 우리 집 꽃밭이 생각났다. 동요의 가사처럼 채송화도 봉숭아도 한창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분꽃도 있었고 나팔꽃도 있었다. 아침마다 핀 나팔꽃을 보며 “해님이 방긋 웃는 이른 아침에/ 나팔꽃 아가씨 나팔 불어요/ 잠꾸러기 우리아기 일어나라고~”하는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다. 나팔꽃은 아침에 피어 생기를 주는 것 같다.
지난봄 나는 남편에게 무심코 나팔꽃을 심자고 했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나팔꽃을 심자니 꿈도 야무지다며 그냥 넘어갔다. 그 말이 마음에 걸렸던지 남편이 나팔꽃씨를 한 봉지 사왔다. 30개쯤 되는 나팔꽃씨를 큰 화분 3군데에 다 심었다. 그런데 싹은 겨우 3개가 나왔다. 하나는 제대로 살고, 다른 것은 아주 비실비실했는데 또 하나는 뿌린 물에 맞아 부러져 죽었다. 그래도 하나는 살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가만히 두었더니 30cm 정도를 위로 자라는데 혼자서 아등바등하면서 40cm쯤 올라왔다. 그런데 작은 바람이라도 불면 휘청거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올라가려고 애쓰는데 기댈 곳이 없었다. 줄기 끝이 발발 떨면서 기댈 곳을 찾는 모습이 애처로웠다. 그 모습이 너무 불쌍하다고 했더니, 남편이 굵은 실을 천장까지 올려서 테이프로 고정시켜 주었다.
실을 찾은 나팔꽃 줄기는 뱅뱅 돌면서 실을 타고 올라가는 것이었다. 아침마다 5cm 이상은 자라는 것 같았다. 올라가면서 10cm쯤마다 잎이 나오는데, 잎이 하나 나오면서 그 실을 챙챙 감고 올라가면서 쭉쭉 자라났다. 다른 싹은 비실대면서도 30cm 정도를 자랐다. 그래서 서로 의지하고 자라나라고 먼저 자란 줄기에 감아 주었더니 그 줄기를 감으며 뒤따라 올라갔다. 먼저 올라간 줄기는 얼마 안 가서 베란다 천장에 닿았다. 그러더니 더 올라가 보려고 천장을 옆으로 바짝 붙어서 뻗어 나가다가 자기 무게 때문에 떨어져 버렸다. 떨어진 상태에서 반원을 그리며 다시 올라가 천장 옆으로 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새 새 줄기가 나와 서로 엉켜 힘을 모아 함께 올라가며 천장을 옆으로 바싹 붙어 나갔지만 얼마 못 가 무게 때문에 떨어지고, 떨어지면 거기서 또 구부러져서 다시 올라가는 것이었다. 너무 안타까워서 쳐다보고 있는데, 천장에 붙여 둔 테이프가 무게를 못 이기고 툭! 떨어져 버렸다. 그래서 못을 박아 횃대를 만들어 얹어 주고 나니 조금 안심이 되었다.
그러다가 나팔꽃 줄기를 다시 올려다보니까 언제 또 새롭게 줄기가 나와서 다시 올라갈 시도하려 한다. 위를 향해 올라가는 것에 미친 듯이 모든 것을 집중하는 것이었다. 밑동 줄기는 가늘면서도 철사처럼 단단하였다. 2mm도 안 돼 보이는 줄기가 밑에서 물을 계속 올려서 끊임없이 높은 곳을 향해서 갈 수 있도록 밀어주는 것 같았다. 어떻게 높은 곳을 향해 끊임없이 저렇게도 열심히 노력을 할까? 높이 올라가기 위해서 땅에 발을 붙이지만, 모든 힘을 올라가는 데 쏟고 있었다. 이 모습을 지켜보다 보니,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 하는 찬송가가 절로 나왔다.
오늘 아침 베란다에 나가 보니 보라색 나팔꽃 2송이가 새로 피어 있었다. 휴대폰 카메라를 열어 나팔꽃을 찍으려니 화분에서 천장까지의 거리가 있어 한 장의 사진으로 찍기 어려웠다. 딸에게 파노라마 찍는 방법을 물었다. 서툴지만 길게 올라간 나팔꽃 줄기 전체를 한 장의 사진에 담을 수 있었다. 나팔꽃은 파노라마로 찍은 나의 첫 작품이 되었다.
우리는 나팔꽃이라고 하지만 서양에서는 이 꽃에 모닝글로리(Morning Glory)라는 이름을 붙였다. 아침에 아름답게 피는 이 꽃을 보고 신성한 아침의 영광을 나타낸다는 느낌을 받은, 가슴 깊은 곳에서 나온 신앙고백 같다. 높은 곳을 향해 가려고 하는 나팔꽃의 그 마음을 배우고 또 배우면서 살다보면 보다 성숙하고도 아름다운 인생이 되지 않을까? 우리의 삶이 아침을 찬양하는 귀한 삶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월간 수필과 비평 > 수필과비평 본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필과비평 2018년 05월호, 통권199호 I 세상 마주보기] 흔들의자 - 변순자 (0) | 2018.06.26 |
---|---|
[수필과비평 2018년 05월호, 통권199호 I 세상 마주보기] 유성처럼 - 백남일 (0) | 2018.06.26 |
[수필과비평 2018년 05월호, 통권199호 I 세상 마주보기] 흔들리다 - 박숙자 (0) | 2018.06.24 |
[수필과비평 2018년 05월호, 통권199호 I 세상 마주보기] 지리산 - 노춘희 (0) | 2018.06.24 |
[수필과비평 2018년 05월호, 통권199호 I 세상 마주보기] 인큐봉지를 벗으며 - 김정아 (0) | 2018.06.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