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삼십여 년 동안 근무했던 학교에서 은퇴하고 이제는 석양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삶의 자리로 돌아왔다. 거실에 앉아 책을 읽고 어두워질 때까지 우두커니 베란다에 앉아 있기도 하고, 일없이 공원을 어슬렁거리기도 한다. 음악을 들으며 아파트 정원에서 산책도 한다. 때로는 자전거를 타고 전주천변을 달려도 본다. 굳이, 모악산이 코앞까지 내려오는 곳에 가서 저녁노을을 바라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옛날 창호지 바른, 할머니 집 봉창으로 찾아오던 그 석양을 만날 수는 없었다"
석양 - 김효순
겨울의 꼬리가 아직 밟히는 삼월 어느 날, 그날은 해거름이 유난히 길었다.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돌아가던 황혼 빛 한 자락이 자그마한 토담집 봉창으로 스며들었다. 작은고모의 수틀 속 풍경이 궁금했을까. 한낮에도 그다지 밝지 않던 방안이 촛불 여러 개를 한꺼번에 켠 듯 환해졌다. 혼인날 받아놓은 작은고모의 수틀 속, 모란꽃에 나비 한 마리가 날아들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할머니 무릎에서 조잘거리던 계집애는 이제 숙제를 한답시고 방바닥에 엎드려 공책의 네모 칸을 괴발개발 메워가고 있었다. 할머니는 흐뭇한 표정으로 계집애를 바라보고 있다. 그 저녁의 안온安溫하던 풍경은 첫사랑처럼 지워지지 않는 그림이 되어 계집애의 가슴에 새겨지고 있었다.
계집애는 지난 삼월 초에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입학하기 전에, 작은고모에게서 이름과 숫자를 배울 때는 공부라는 것은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학교에 가는 것이 은근히 겁도 났었는데 막상 학교에서 하는 공부는 다양해서 꽤 재미가 났다. 한동네에 동갑내기들이 여남은 명이나 있었지만 우등상을 받는 것은 계집애 하나뿐이었다.
젊은 날에 남편을 여읜 할머니는 맏손녀인 계집애가 태어나자 몹시 기뻐하셨다. 엄마가 젖을 물리는 때 말고는 거의 당신이 품어 기르셨다. 계집애의 아버지이자 당신의 아들을 분가시키면서도 계집애는 당신 곁에 남겨 두셨다. 계집애도 엄격한 엄마보다는 상냥한 작은고모와 포근한 할머니 품이 더 좋았다. 할머니는 계집애를 자주 업어 주셨다. 어린 계집애를 등에 업으면 항상 ‘우리 효순이 이담에 크면 선생이 되거라.’를 자장가 삼아 읊으셨다고 한다.
십 리쯤 떨어진 곳에 분가해 살고 있던 엄마 집을 방문할 때마다 할머니는 계집애를 업고 다니셨다. 하지夏至를 앞둔 이맘때였을까. 신작로 옆에 무리지어 피어있던 개망초 하얀 꽃들이 시들시들 말라가고 있었다. 등에 땀이 차는지 할머니는 업었던 계집애를 가끔 땅에 내려놓고는 걷게 하셨다. 계집애는 몇 발짝 떼고 나서는 덥고 다리 아프다며 투정을 부렸다. 할머니는 얼른 또 등을 내밀어 주셨다.
시어머니와 함께 찾아온 계집애가 엄마에게는 귀한 손님이었다. 엄마는 손님을 위해 땀방울 섞어 팥칼국수를 끓였다. 팥칼국수는 계집애가 좋아하는 음식인데 손길이 많이 가기 때문에 손님들도 손을 보태야 했다. 엄마가 삶은 팥을 거르고 팥물을 끓이는 동안에 할머니는 밀가루 반죽을 방망이로 밀어 칼로 썰어 놓으셨다. 국수가 서로 달라붙지 않게 떼어놓는 일은 계집애 몫이었다. 마당에 내놓은 평상, 둥그런 소반에 둘러앉아 뜨거운 팥칼국수를 먹노라면 길었던 여름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저녁 바람이 푸르러진 들판을 가만가만 건너오고 있었다.
계집애가 그렇게 누리던 ‘안온安溫한 저녁 한때’는 그리 길지는 못했다. 계집애가 열 살 무렵이었을 것이다. 좋은 할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작은고모는 결혼하여 계집애 곁을 떠났다. 분가해 살던 엄마가 점령군이 되어 동생들을 거느리고 할머니 집으로 돌아왔다.
계집애는 무너진 왕조의 바리데기공주가 되었다. 창호지문으로 스며들던 저녁노을빛과는 멀어졌다. 대신 연기까지 뿜어내는 아궁이의 매운 불길과 친해져야 했다. 논밭으로 출근한 엄마는 저녁 어둠이 짙어져야 퇴근했다. 자연스럽게 저녁밥 짓기는 계집애의 일이 되었다. 그렇게 시작되었던 계집애의 ‘저녁 없는 삶’은 그녀 머리에 서리가 내릴 때까지 지속되었다.
그래저래, 청소년 시절의 그녀는 공부에 그다지 열정적이지 않았고, 고등학교 삼학년 때는 집안에 태풍이 몰아쳤다. 그런 상황에서 맏이인 그녀가 대학에 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로 보였다. 그러나 그녀는 중등교사가 되었다.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이 절대 진리는 아니겠지만 선생이 되라던 할머니의 축원은 그냥 허공에 흩어지지 않고, 계집애 속 어딘가에 뿌려진 씨앗이 되었을 것이다. 그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자라나서 열매가 맺혔던 것은 아닐까?
그녀는 삼십여 년 동안 근무했던 학교에서 은퇴하고 이제는 석양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삶의 자리로 돌아왔다. 거실에 앉아 책을 읽고 어두워질 때까지 우두커니 베란다에 앉아 있기도 하고, 일없이 공원을 어슬렁거리기도 한다. 음악을 들으며 아파트 정원에서 산책도 한다. 때로는 자전거를 타고 전주천변을 달려도 본다. 굳이, 모악산이 코앞까지 내려오는 곳에 가서 저녁노을을 바라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옛날 창호지 바른, 할머니 집 봉창으로 찾아오던 그 석양을 만날 수는 없었다.
김효순 -------------------------------------------------
전북 부안 출생. 중등교사 역임.
당선소감
매미 울음소리가 유난히 소란스러웠던 날, 삽상한 가을바람 같은 기별이 왔습니다. 캄캄한 산속에서 헤매던 나그네가 발견한 불빛인 듯 반가웠습니다.
삼십 년 넘게 몸담았던 교직에서 은퇴한 뒤 ‘먼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돌아온 누님’의 심정으로, 방물장수 되어 떠돌았던 것 같은 지난 삶을 되돌아보고 싶었습니다. 봄날의 진달래 꽃길이나 억새꽃 흔들리던 가을들녘에서 만난 황혼은 눈물 나게 아름다웠습니다. 내 욕심껏 짊어진 등짐에 눌려 허덕거렸던 여름날, 간밤에 내려 쌓인 눈 때문에 사라져버린 길을 찾아 더듬더듬 걷던 날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만 보고 그냥 걸었지요. 그 길 지나가던 길손에게 시원한 물을 건네주고,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 주었던 사람들과의 인연 이야기를 써 보고 싶습니다.
먼저 그 길 떠날 수 있게 넉넉한 행장을 꾸려주시고, 당신들은 서둘러 더 먼 나라로 떠나가신 부모님과 제가 가는 길에 기꺼이 동행해 주는 저희 가족들에게 사랑의 인사를 드립니다. 어설픈 제 글을 읽고 친절하게 조언해 주신 교수님과 문우들께도 깊은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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