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청가문비나무가 자라 그 그늘에서 아버지가 땀을 식힐 때쯤이면 나의 글쓰기도 어느 정도 자라게 될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쓰고 싶다. 콩 덩굴에게 기꺼이 허리를 내어주는 나무들이 살고, 소박하게 제 꽃을 피우는 야생화가 이야기를 멈추지 않는 사랑스런 아버지의 정원에서, 가슴으로 노래하고 싶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매일매일 조금씩 자라는 은청가문비처럼 분명 나의 글쓰기도 조금씩 살이 찌고 키가 크고 있을 것이다."
아버지의 정원 - 이은일
아버지의 정원은 사랑스럽다. 철마다 바람이 먼 데 소식을 실어 나르고, 꿀샘을 머금은 꽃들이 늦가을까지 꿀벌을 유혹한다. 산수유가 잎보다 먼저 노랗게 꽃을 피우면 이어서 금낭화가 청사초롱 예쁜 주머니를 줄줄이 달고 나온다. 그곳엔 밥풀을 훔쳐 먹다가 시어머니에게 맞아 죽었다는 배고픈 며느리밥풀꽃도 살고 있다. 천상의 선녀가 지상에 내려왔다가 떨어뜨린 비녀가 꽃이 되었다는 옥잠화의 전설도 서려있다. 구절초는 구월에 자르면 좋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들여다보고 있으면 저마다의 사연들이 끊임없이 들려오는 내 아버지의 정원이 나는 정말 좋다.
가끔 군더더기 없이 잘 쓴 글을 읽을 때가 있다. 문장이 매끄럽게 잘 다듬어져 있고, 적절한 비유와 유머, 신선한 발상으로 감탄이 절로 나오는 글을 만나게 되면 정말 기쁘다. 또 투박하지만 오밀조밀 사람 냄새가 나고, 구석구석 뒤져보는 맛이 있는 그런 글을 읽으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때마다 나도 그런 멋진 글을 써 보고 싶지만 나의 글쓰기는 좀처럼 키가 크질 않는다. 우리 가족나무만큼이나.
친정아버지께서는 정년퇴임을 하시고 옛날 집터 위에 새로 이층집을 짓고 이사를 하셨다. 자식들에게 정원에다 가족나무를 하나씩 사다 심으라고 하셨는데 우리 가족은 은청가문비나무를 심기로 했다. 소나무과의 이 나무는 껍질이 회갈색이라 검은 피나무로 불리다가 가문비나무가 됐다는 설이 있다고 한다. 은청색이 감도는 잎의 색상과 원추형의 수형이 매우 아름다워 고급 정원수나 기념수로 많이 심어지는 나무다.
‘은청가문비’라는 이름도 예쁘거니와 사계절 푸른빛을 잃지 않는 성정이 좋았다. 내한성이 매우 강하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특성 때문에 강한 생명력으로 튼튼하게 뿌리를 내릴 것 같았다. 아버지의 새로운 정원에 멋지게 자리를 잡고,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을 맞이하고 싶었다. 언뜻 보면 푸른 잎에 싸락눈을 살짝 뿌려 놓은 것 같은 착각을 할 만큼 뽀얗다. 적당하게 자라면 크리스마스 시즌에 안개등을 달아도 너무 근사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나무를 심고 어서 빨리 쑥쑥 커주기를 바라는 소망과는 다르게 우리 가족나무는 한동안 자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빠네 자귀나무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 가고, 동생네 주목나무도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데, 우리의 은청가문비만은 심었을 때 그대로인 것 같았다. 갈 때마다 들여다보며 거름도 주고 사랑스럽게 말도 걸어주건만, 난쟁이 똥자루마냥 여전히 땅에 붙어 있는 녀석이 야속했다. 그래도 남편은 밑가지를 쳐주고, 근처에 성장을 방해할 만한 풀과 잡목들을 베어 주면서 정성을 기울였다. 그래서일까. 그 이듬해부터는 드디어 조금씩 키가 크기 시작했다. 워낙 더디게 자라는 수종인지라 눈에 보일 만큼은 아니었지만 갈 때마다 키가 자란 것을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야생화에 관한 책까지 발간할 정도로 야생화 사랑이 남달랐던 이유로 아버지의 정원엔 여러 종류의 야생화들이 살게 되었다. 사실 꽃이 필 때를 제외하고는 이것이 야생화인지 잡풀인지 구별하기가 어렵기도 했지만, 한번은 엄마가 김을 맨다는 것이 아버지의 야생초를 죄다 뽑아버린 일이 있었다. 밭에 풀 하나 없이 농사를 지으시는 엄마에게는 여러 가지 나무와 풀들이 제멋대로 우거진 아버지의 정원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늬 엄마 좀 봐라. 이렇게 꽃나무 밑에 죄다 콩을 심어 놨단다.”
“저 콩으로 밥을 하면 얼마나 맛있는 줄 아니?”
딱히 탓할 마음 없는 두 분의 실랑이가 정원을 더욱 정겹게 만든다. 올해도 엄마의 콩 덩굴은 홍매화나무를 감고 올라갔다. 그리고 아버지의 밥상엔 모락모락 김이 나는 콩밥이 올라가겠지.
아버지의 정원은 넓은 잔디밭도 아니고 전지가 잘된 소나무도 없다. 하지만 그저 우거진 덤불 속에서 소리 없이 피고 지는 꽃들의 수다를 말없이 들어주는 새들이 있다. 나비와 꿀벌이 전해주는 소문들로 온종일 술렁거리고,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따라서 하루에도 열두 번씩 표정을 바꾼다. 어떤 날은 여왕보다 화려한 자태로, 어떤 날은 기품 넘치는 향기로 무한매력을 발산한다. 그 변화무쌍함이 좋다. 그 속에서 부지런히 몸통을 불려가고 있는 우리 삼남매의 나무가 있어서 더욱 좋다.
은청가문비나무가 자라 그 그늘에서 아버지가 땀을 식힐 때쯤이면 나의 글쓰기도 어느 정도 자라게 될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쓰고 싶다. 콩 덩굴에게 기꺼이 허리를 내어주는 나무들이 살고, 소박하게 제 꽃을 피우는 야생화가 이야기를 멈추지 않는 사랑스런 아버지의 정원에서, 가슴으로 노래하고 싶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매일매일 조금씩 자라는 은청가문비처럼 분명 나의 글쓰기도 조금씩 살이 찌고 키가 크고 있을 것이다.
이은일 ---------------------------------------------------
바르게 살기 음성군협의회 편지글 대상. ‘마음을 여는 수필교실’ 수강.
당선소감
무더위도 한풀 꺾인 것 같다. 아침저녁으로 찬 기운이 완연하다. 폭염으로 유난히도 힘들었던 여름의 끝자락에서 반가운 소식을 받게 되었다. 고대하던 당선 소식이다. 늘 행복한 가르침을 주시는 반숙자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기쁨을 같이해준 수필교실 회원님들과 곁에서 무한 힘이 되어 주고 있는 가족들에게도 진심으로 고맙다.
매주 금요일 저녁이면 발걸음은 항상 ‘마음을 여는 수필교실’로 향한다. 선생님이 좋고 문우들과 나누는 따뜻한 마음들이 좋아서다. 오픈강의를 들으며 삶의 방향을 점검하고, 회원님들과 함께 이론을 배우고 모범글을 읽어가며 서로 지지하고 격려해주던 많은 시간들이 공空은 아니었나 보다. 넙죽 작가라는 타이틀을 받기에는 많이 부족한 걸 알기에 더욱 열심히 배울 생각이다.
‘수필이 곧 작가’이니 좋은 수필을 쓰려면 먼저 삶이 향기로워야 할 것이다. 앞으로 내가 잘사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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