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월간 여행문화(여행작가)/여행문화(여행작가) 본문

[격월간 여행작가 5-6월호, 보은의 문화재: 보은의 고택, 선병국 가옥] 僞善最樂의 정신, 뿌린 대로 거두리라 - 김가배(본지 기획부장)

신아미디어 2015. 7. 30. 14:10

"성인도 종시속이라 했던가, 급변하는 시대에 뒤처지지 않고 앞장서서 집안의 온갖 대소사를 챙기고 활로를 개척해가는 종부의 기지와 지혜와 성실함이 이 큰 고택을 유지하고 이어가는데 막중한 임무를 다하고 있는 것이리라. 억척스러울 정도로 부지런하고 성실하고 우아한 종부와 부군 선민혁님 내외분께 큰 박수를 보내며 부창부수의 내외가 이끌어 가는 이 고택이 오래오래 우리의 전통과 자부심으로 번성하며 그 자존을 지켜가기를 기원한다."

 

 

 

 

 

 
 僞善最樂의 정신, 뿌린 대로 거두리라     /  김가배(본지 기획부장)

 

   충북 보은군 장안면 개안리 10-2에 있는 선병국 가옥은 100년을 이어온 충북의 대표적인 부농의 살림집이다. 속리산에서 시원始原한 삼가천의 물줄기가 감싸고도는 삼각주 소나무 숲 속, 양택의 명당터에 자리한 고택으로 옛날 선씨 가문의 위세를 짐작케 하는 대단한 규모로 3,900여 평의 대지에 143칸이나 큰 규모를 자랑한다. 일제 강점기인 1904년부터 1921년에 걸쳐 건축되었으며 1984년 1월 중요민속자료 제134호로 지정되었다. 주 건물인 안채와 사랑채, 사당을 기본으로 대문채, 행랑채 등의 부속 건물도 큼직큼직하게 갖춘 보기 드문 자연친화적인 저택이다. 우리나라 고택으로는 강릉 선교장, 해남 녹우당, 안동 임청각, 창녕 성 부잣집, 구례 운조루를 치지만 규모로 보면 선병국 고택이 단연 으뜸이다.
   이곳은 연꽃이 물에 뜬 형상인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의 명당이어서 자손이 왕성하고 장수한다고 하니 얼마나 공을 들여 집을 지었겠는가. 대들보 하나 서까래 하나 기왓장 하나에도 집주인의 정성과 기도가 배어 있는 듯, 대청마루며 방과 방을 이어주는 툇마루며 문짝의 문양 하나하나마다 멋과 품격이 넘쳐난다. 대청마루에 앉아 높은 천정을 쳐다보면 잘 생긴 소나무 둥치를 굽으면 굽은 모양새대로 살려 배치한 흔적이 자유로운 멋스러움과 흥취를 더해준다. 날아갈 듯 치켜 올라간 팔작지붕의 추녀며 크고 든든한 기둥, 가옥의 높이도 전통의 한옥과 달리 웅장한 모습이다. 팔각 창문이나 미닫이문의 문양이 각각 다르게 표현되어 그 멋과 아름다움이 잘 생긴 장사 하나를 보는 듯 든든하고 믿음직스럽다.
   조선 말엽, 고조부인 선영홍 옹은 토착지인 전남 고흥을 떠나 정감록이 밝힌 십 승지 중의 하나인 이곳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게 된다. 십 승지란 유사시 목숨과 재물을 지켜줄 수 있는 명당터를 말한다. 이 가옥을 지은 도편수는 ‘방대문’이란 사람으로 궁궐 목수 출신이었다. 그를 필두로 한양에 있던 내로라하는 목수들이 이 집을 짓기 위해 대거 보은으로 내려왔고, 이곳 주민들도 대거 공사에 참여해 한 마을을 먹여 살릴 정도였다고 하니 얼마나 대단한 규모였을지 짐작이 된다. 어렵던 시절에 이만한 대 공사를 벌였다니 경제력도 그렇거니와 얼마나 큰 기개와 용기가 필요했을까. 그 호방함에 가슴이 후련해진다.
   대청 가운데 위선최락僞善最樂 ‘선행을 최고의 즐거움으로 삼는다’는 뜻의 현판이 눈에 띈다. 선씨 가문의 가훈 같은 이 문구는 고택의 역사와 의미를 대변해 주는 글귀 같아 가슴이 훈훈해진다. 선병국 님의 부친 선정훈 옹은 교육열이 투철해 저택 동편에 관선정觀善亭이라는 서당을 세워 각 지역의 인재들을 불러 모아 교육비 전액을 사재로 부담하며 나라의 동량을 길러냈다고 한다, 보은 향교 명륜당에도 서숙을 설치하여 후학을 키우고 모든 비용을 사재로 충당하였다고 하니 얼마나 자랑스러운 모습인가. 한학의 태두 청명靑溟 임창순任昌淳이 바로 관선정 출신이다.
   또한 1923년 대 흉년이 들어 농민들이 초근목피로 연명할 때 기꺼이 창고의 문을 열어 주민들을 구제했다고 한다. 당시 일제의 식민지 교육을 거부하고 전통 유학을 교육하여 은연중에 민족정신을 심어주고 우리의 전통문화계승에도 크게 이바지한 것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이미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가옥이 자랑스러운 문화재로 보존되고 그 정신을 이어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그 외에도 효자와 열녀를 기리는 비각 효열문이 있고 선씨 가문에 은혜를 입은 소작농들이 돈을 모아 세운 시혜비가 있다. 민심은 천심天心이다. 지금도 행랑채는 23년째 고시생을 위한 공부방 겸 숙소로 쓰이고 있고, 현재까지 이천 명이 넘는 법조인을 비롯한 인재를 배출했다고 한다.
   사당을 지나 안채 바깥마당에 들어서면 야트막한 담장 안에 질서정연하게 자리 잡은 장독들이 사열 받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서 있다. 선씨 가문의 종부인 김정옥 여사가 관장하는 공간이다. 그녀는 선병국 가문의 21대 종부다. 이 넓고 아름다운 저택을 지키고 있는 종부의 그림자만으로도 넉넉히 채워지는 듯 그녀는 품위 있고 당당하다. 화장기 하나 없어도 우아하고 당찬 기품이 있다.
   종부를 얻는 날, 집안에서는 부잣집의 가풍대로 동네잔치, 친척 잔치, 군 잔치 등 닷새 동안이나 잔치를 벌였다고 한다. 그때 이곳에 들렀던 건축가 김수근은 이런 대갓집에 시집오는 신부는 어떤 사람일까 하는 호기심에 안방을 들여다보았는데 그림처럼 앉아 있는 신부를 보고 저렇게 가냘프고 아름다운 여인이 어찌 이 큰 종가를 이끌어 갈 수 있단 말인가 하고 적잖게 놀랐다고 한다. 10여 년의 세월이 흐른 후, 그가 다시 이곳에 들렀을 때 아리땁고 곱던 새댁은 큰 고택을 너끈히 이끌어갈 만치 종부로서의 기품과 품위를 갖추고 있음에 또 한 번 놀랐다고 한다. 핵가족의 단순한 살림살이도 힘들다고 엄살을 떠는 요즈음 세태에 어찌 이토록 장한 여인이 있어 이 큰 고택을 말없이 떠받들고 있단 말인가 감탄했다고 한다.
   그런 종부에게 힘든 일보다 더 막막한 시간도 있었다고 한다. 그 후 선씨 고택이 문화재로 등록되고, 우리 고유의 한정식 메뉴를 개발하여 고택 못지않은 인기를 얻게 된다. 김 여사가 해마다 담그는 씨 간장의 장맛은 팔도의 입맛을 사로잡아 현재는 S 백화점과 손잡고 장류를 판매한다. 발효된 음식을 선호하던 조상들의 지혜를 버리고 서구화된 또 왜식화 된 입맛에서 돌아와 진정한 우리 고유의 맛과 멋을 아는 이들이 선씨 종가의 장맛에 반하는 것이다. 건강이니 웰빙이니 하는 키워드가 시대의 화두로 등장하면서 그녀의 장류는 더욱 빛을 발하게 된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롯한 정·재계 문화계의 유명 인사들이 이미 그녀의 손맛에 반했다는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성인도 종시속이라 했던가, 급변하는 시대에 뒤처지지 않고 앞장서서 집안의 온갖 대소사를 챙기고 활로를 개척해가는 종부의 기지와 지혜와 성실함이 이 큰 고택을 유지하고 이어가는데 막중한 임무를 다하고 있는 것이리라. 억척스러울 정도로 부지런하고 성실하고 우아한 종부와 부군 선민혁님 내외분께 큰 박수를 보내며 부창부수의 내외가 이끌어 가는 이 고택이 오래오래 우리의 전통과 자부심으로 번성하며 그 자존을 지켜가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