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인생의 이모작을 수필과 함께 꿈꾸어 엮은 책.
여류작가 박완서 씨의 글을 읽다 보면 난 항상 잔잔한 감동에 젖곤 했습니다. 마치 이웃집 아줌마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착각에 사로잡혀 읽는 내내 작가의 품에 푹 파묻혔습니다. ‘나도 그렇게 쓰면 되겠구나. 수필이 별것일까. 이렇게 보고 느낀 점을 물 흐르듯 쓰면 되겠지.’ 라고 생각했습니다.
내 인생의 이모작을 수필과 함께 꿈꾸어 볼 생각을 하니 가슴까지 설레었습니다. 그녀의 수필집을 다시 한 번 읽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도 쉬워 보이던 그녀의 글이 왜 그리 어려운지, 그냥 흐르는 물이 아니었습니다. 그건 흐르는 물의 겉면만을 보고 생각했던 나의 어리석은 소치였습니다.
그녀의 시냇물은 그냥 파란색이 아니었습니다. 옥색도 있었고, 하늘색도 있었고, 온갖 아름다운 색깔이 다 모여 있었습니다. 물속에는 데굴데굴 굴러가는 조약돌을 어루만져주는 사랑도 있었고, 제 몸을 고기들의 먹이로 기꺼이 내어 주면서도 아름답게 나풀대는 수초들의 군무도 있었습니다. 그냥 흐르는 물은 분명히 아니었습니다. 깊은 산속 노루들의 목을 축여주는 옹달샘이 되었는가 하면,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도 되어 피로한 사람들을 위로해 주기도 했습니다. 또 넓은 강과 바다가 되어 용서와 화해를 가르쳐 주기도 했습니다.
지나는 글줄도 그냥 글이 아니었습니다. 내 글이 밋밋한 무명실이라면 그녀의 글은 비단 실이었습니다. 그녀가 어딜 함부로 덤비느냐고 호통을 치는 것만 같았습니다.
“옷부터 벗어라. 벗은 옷으로 실을 만들어라. 그 실로 글줄부터 엮어라. 다 엮었으면 목도리를 만들어 추운 사람 목에 감아줘라. 따뜻한 옷을 만들어 불쌍한 사람에게 입혀라. 여러 사람이 편히 쉴 수 있는 매트도 짜라.”
하고 야단을 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나도 언젠가 흉내라도 내지 않겠느냐고 우기고 싶었습니다. 더욱더 많이 읽고 많이 쓰다 보면 나도 흐르는 물속에서 어여쁜 조약돌도 만날 것이고, 수초 속에서 유영하는 쉬리들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두려웠습니다. 내 껍데기를 모두 벗어버린 알몸이 되어 버릴 것 같아 계속해야 하나 망설여지기도 했습니다.
어느덧 4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어미닭이 병아리를 불러 모으듯 나의 분신인 내 글들을 모아 한권의 책으로 엮어보려 하는데 질투의 여신이 시샘을 했나봅니다. 그동안 곁에서 말없이 응원해주던 남편이 갑자기 폐암으로 힘든 항암주사와 방사선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온 가족은 절망에 빠졌습니다. 초기에 발견된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서로 위로했지만 환자를 지켜보는 가족들은 그의 고통을 덜어주지 못해 애가 탔습니다. 아내인 나는 책을 엮어야 하는데 시간도, 마음도 여유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남편이 아픈데 책은 무슨 책이냐고 손가락질하는 것 같아 맘이 편하지 못했습니다.
책 표지와 간지로 쓸 그림이 마땅하지 않아 잠을 못 이루며 애가 탔는데, 남편 선배 되시는 우관宇觀 김종범金鍾凡 선생님께서 당신의 그림을 흔쾌히 주셨습니다. 그 분은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으로(1987∼1993년까지) 미술활동에 많은 공헌을 하신 분입니다. 우리나라 최초로 갑골문을 회화적 감각으로 표현한 서예가로 우리나라의 미술사에 한 획을 그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독립기념관 개관당시 한국대표서예가중 한분으로 발탁되어 독립운동가 윤봉길 의사의 글씨를 그대로 써서 커다란 비석으로 남겨놓기도 했습니다.
고귀한 작품으로 제 글을 감싸 한권의 책으로 엮어지는 영광을 주신 우관 김종범 선생님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힘든 상황에서도 이 책이 태어날 수 있도록 응원해 준 남편과 가족 모두에게도 사랑을 전합니다. 항상 변함없이 지도해 주신 김학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나의 글이 한데 모여 책이 되도록 도와주신 신아출판사 서정환 사장님과 박갑순 과장을 비롯한 모든 분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어제와 다른 찬란한 해님이 동쪽하늘에 솟아오릅니다. 이제 편안한 마음으로 행복을 느끼렵니다.
- 2014년 초겨울 아침에 지은이 양영아
저자 양영아는 ---------------------------------------------
전북 남원 출생, 전주교육대학교 졸업, 2009년 초등학교 교사로 정년퇴직, 2010년『대한문학』수필부문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행촌수필문학회 회원, 전북문인협회 회원, 전북수필문학회 회원, 영호남수필문학회 회원, 수필집『슴베』
목 차
책 머리에 행복을 찾아서
1부 슴베
광목 / 닭알의 변 / 돌아가고파 / 목련꽃을 바라보며 / 변덕 / 봄의 교향악 / 분내 같은 노랫소리 / 세종대왕님, 사랑이 죄인가요 / 슴베 / 신선이 되어보리
2부 꽈리와 어머니
꽈리와 어머니 / 별종 / 영원한 별종 / 쓸개는 없어도 지조는 남아 / 아들의 휴가 / 어미 새의 순산 / 잃어버린 배움터 / 지각 선물이라도 좋아 / 호랑이가 물어가도 /화려한 할머니
3부 놀이 도둑
김장 무 몇 개나 하나요 / 놀이 도둑 / 늙은 소녀의 시 / 말벌 / 박수받는 사기꾼 / 발목 잡힌 편지글 / 이팝나무의 미소 / 자라지 않는 아이들 / 종합비타민 같은 축제 / 회장도 팔자에 있어야
4부 아버지의 그 슬픈 노래
거울 / 난리둥이와 방귀 소동 / 새알심 / 설문대할망의 염원 / 아버지의 그 슬픈 노래 / 오빠랑 화투치나 봐라 / 이제 다시는 서러워하지 않으리라 / 제왕의 피눈물 / 증오와 용서 / 청자의 눈물
5부 프라하의 낙서판
국제 미아 따로 없다 / 누구를 위한 희생인가 / 보물이 된 소금바위 / 사치도 공적이었다 / 프라하의 낙서판 / 하이델베르크의 향기 / 무비유환 1 / 무비유환 2 / 선교장의 자물쇠 / 아, 대견사여
작품해설 김학(수필가,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전담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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