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으로 사과하고 진심으로 배려하고,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쓰는 모습. 그것이 자본주의가 극을 향해 치닫고 있는 오늘날에도 인간에게 필수불가결한 덕목으로 여전히 온존하고 있는 듯하다. 이 드라마가 시청자에게 심어 준 중요한 메시지는 인간에게 있어, ‘전진한다’는 것은 남을 넓게 이해하는 덕德을 넓혀간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남을 넓게 이해하는 마음이 커져야 불평등 사회가 평등 사회로, 악의 축이 선의 축으로 개벽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불평등 사회의 인간 존중 : <상속자> - 장미영
너는 때려도 맞고, 안 때려도 맞고.
이게 학교생활에서 끝날 것 같지?
아니, 영원히 네 인생은 달라지지 않을 거다.
왜냐면 내가 너 같은 애들의 고용주가 될 거니까.
-<상속자들>
1. 상속자들
One who wants to wear the crown, bear the burden. The Inheritors.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상속자들.
원 제목은 길다. 그래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드라마를, 경구처럼 등장하는 제목의 앞 문장은 생략하고, 뒷부분에 호칭처럼 등장하는 사음절, ‘상속자들’이라거나 또는 삼음절, ‘상속자’라고 줄여 부른다. 한국어는 단수와 복수를 분명하게 사용하지 않아도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으니까. 필자는 호칭의 경제성을 우선하되, 원 제목을 존중하는 뜻에서 이 드라마의 제목을 ‘상속자들’이라 지칭하련다.
드라마 ‘상속자들’은 SBS-TV에서 2013년 10월 9일부터 같은 해 12월 12일까지 총 20부작으로 방송했던 청춘 드라마다. 드라마의 주인공이 고교생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는 청소년 시청자뿐만 아니라 성인 시청자까지 끌어들여 25%가 넘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 드라마의 성공 요인 중 하나는 소박하고 털털한 모습의 등장인물 대신 트렌디한 패션 아이템을 착용한 등장인물들을 내세워 우리 사회의 최고 수혜자라고 일컬어질 수 있는 사람들을 통해 시청자들의 욕망을 자극했다는 점이다. 시청자들이 품고 있는 은밀한 욕망, 그것은 타인의 눈치를 받지 않고 나의 욕구를 지금 살고 있는 이승에서 현실감 있게 충족시키면서 살아가는 것이리라.
2.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상속자’란 ‘사망자의 재산이나 기타의 것을 물려받는 사람’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그런 의미에서 ‘상속자’는 ‘왕관’으로 대치가 가능하다. ‘왕관’도 물려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려받는 것’에 대한 유혹, 그러한 유혹을 떨칠 수 없는 사람들.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상속자’가 된다는 것은 노동에 직접 참여하지 않아도, 투자금이 없어도 확실하게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돈을 비롯한 재물을 얻는 것뿐만 아니라 존중받고 대접받고 보호받는, 즉 이 세상에서 세속적으로 누릴 것이 많아진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 어린 시절의 필독서였던 <소공자>, <소공녀>를 통해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일찌감치 감득해 버렸다. 소공자든 소공녀든 성별을 떠나, 사람들은 어느 누군가가 상속자가 될 수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갈대처럼 움직인다. 가진 자는 강자로 군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많이 가질수록 군림할 수 있는 규모와 강도가 커진다. 따라서 부자라는 말, 특히 부자가 될 승산이 확실한 ‘상속자’라는 말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유혹적인 단어이다. 이 말은 욕망을 부추기는 정도를 넘어서 없던 욕망까지 샘솟게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 없이 한순간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상속자들’이라는 드라마가 만들어지고 또 이 드라마가 시청률 경쟁에서 우위에 설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많이 가지기를 꿈꾸고 욕망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상속자’가 되려는 자, 즉 ‘왕관을 쓰려는 자’는 ‘악의 축’으로 비난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비난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이들은 정직, 신의, 배려와 같은 인간적 덕목보다 자신의 뜻을 관철시켜 남을 지배할지언정 남으로부터 지배당하지 않으려는 욕망이 더 앞서는 사람들이다. ‘상속자가 되려는 자’는 이상적인 인간상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승리하고 세속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인간상을 탐내는 자이기 때문이다.
3. 인간 존중에 대한 갈망
이미 우리 사회는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 간에 서열이 나뉘고 차별이 생겼다. 가진 자가 갖지 못한 자를 괴롭힌다는 드라마 ‘상속자들’의 설정은 결코 낯선 것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익숙한 설정이기에 미성년 상속자들이 보여주는 과시욕과 사배자(사회배려대상자)들에 대한 혐오감과 폭력이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기시감을 전달한다.
그런데 역시 인간은 악의 축보다는 선함에 끌리는 모양이다. 가장 앞장서서 가지지 못한 친구들을 괴롭히던 주인공 김탄이 나쁜 학생에서 전혀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시청자들의 각박한 마음에 위안을 주었던 모양이다. 진정으로 사과하고 진심으로 배려하고,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쓰는 모습. 그것이 자본주의가 극을 향해 치닫고 있는 오늘날에도 인간에게 필수불가결한 덕목으로 여전히 온존하고 있는 듯하다. 이 드라마가 시청자에게 심어 준 중요한 메시지는 인간에게 있어, ‘전진한다’는 것은 남을 넓게 이해하는 덕德을 넓혀간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남을 넓게 이해하는 마음이 커져야 불평등 사회가 평등 사회로, 악의 축이 선의 축으로 개벽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장미영 -------------------------------------------
현재 전주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세계문학비교학회 학술이사, 한국여성문학학회 연구이사, 국문학회 총무이사, 전북여성연구회 회장을 역임했고, 한국문학이론과비평학회․페미니즘학회 편집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21세기 대중 취향과 미디어≫, ≪한국의 노인 담론≫, ≪실버를 골드로≫, ≪한국의 다문화 코드≫, ≪스토리텔링의 이해≫, ≪새만금 스토리텔링≫, ≪스토리텔링과 문화산업≫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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