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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인간과문학 2014년 봄호, 시]  말·3 외 1편 - 김규화

신아미디어 2015. 1. 16. 13:27

『인간과문학』에서 김규화님의 시 2편을 소개합니다.

 

 

 

 

 

 

 

 말·3 외 1편        /  김규화
   - 얼룩말

 

흰 줄이냐 검은 줄이냐 물어볼 틈도 없이
갈기 곧추세우고 달리는 호주 얼룩말 엉덩이에
집에서 도망쳐나온 얼룩나비 꼭 붙어서
얼룩말이 호주 평원을 한달음에 얼루룩얼루룩 입방아 찧으며 달려도
앞다리 흔들어 말춤을 추어도
얄팍한 두 날개 찰싹 붙이고
죽은 듯 얼룩줄무늬 온몸 감으면서 따라가는 얼룩나비

 

북미와 남미 사이 개미허리에 붙어 있는
코스타리카 시몬볼리바르동물원에서
조상 대대로 살아 온 얼룩나비
일년이면 동물원이 사라진다는 말에
갈팡질팡하여 달리는 자동차에 몸을 날리기도 하는데
호랑나비, 두발가락나무늘보, 붉은바다거북, 가시꼬리이구아나
친구들을 거기 그냥 두고

 

우랄산맥 기슭에 옹기종기 모인 사람들에 섞여 살아 온 말이
얼룩말 엉덩이에 달라붙은 얼룩나비처럼
알타이산맥까지 사천 킬로를 달리면서도
꼭 달라붙는 우랄알타이 말
어미와 자식으로 모음조화 하는 말
우리나라까지 내려와 내 입술에도 붙는다

 

 

 

 소소

 

소소小小한 스티로폴 조각들이 뱃전에 둘러 있다
가벼운 몸을 썰물에 한참 맴돌리다가
바닷가운데로 가물가물 사그라진다
소소炤炤하게 웃으며 소소 뜨는 아침해
소소昭昭한 해를 맞으려고 방파제를 달리는
소소小少한 아이들의 웃음소리
정박해 놓은 뱃전을 두드리며 소소疎疎한 바람이
일출을 두런두런거리면
부두에 소소簫蕭히 눈 날리고
남도 어시장의 어부들 소리가 소소騷騷하다

 

 

 

김규화  ----------------------------------------------

   《현대문학》으로 등단(1966년 천료). 시집 《관념여행》 《노래내기》 《평균서정》 《이상한 기도》 《망량이 그림자에게》 《멀어가는 가을》 《떠돌이배》 《초록 징검다리》(시선집) 《Our Encounter》(Homa & Sekey) 《날아가는 공》, 불어시집 《Notre Rencontre》(우리의 만남은) 등. 한국문학상, 현대시인상, 동국문학상, 펜문학상 수상. 현재 월간 《시문학》 발행인(1977~ ). 한국여성문학인회 이사, 국제펜 한국본부 이사, 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 진단시(1982~ ), 기픈시(1995~ )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