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조선족문학은 우리 문학예술에서 가장 역동적인 부분이면서 우리 조선족사회의 가장 고민에 찬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 문학이 문학 이상의 의미를 갖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니 그 문학 이상의 의미를 다루는 우리 문학비평도 비평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즉 중국조선족 문학비평, 거기에는 단순히 우리 문학뿐만 아닌, 우리 존재와 우리 문화의 다양한 문제들이 상정되어 있으며 거기에 따른 우리의 다양한 대응전략도 상정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비평의 책임도 무겁고 광범위한 것이다."
중국조선족 평단의 변화: “권력”에서 “권리”로 / 조일남
들어가는 말
이 글에서 나는 근 60년간 중국조선족 평단의 변화를 나름대로 밝혀 보려고 한다. 그러나 반세기도 넘는, 근 60년의 변화를 이 짧은 글로 시도한다는 것은 미상불 무리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시도한 것이 사회과학 분야와 우리 사회생활에서 두루 쓰이는 “권력”과 “권리”의 의미를 차용해서 들여다 본 그간 우리 평단의 변화이다. 물론 이 시도는 비평이 “가치판단”을 내세워 문학에 새로운 “질서부여”를 시도한다는 점에서 원래 “권력지향적”이고 그것은 비평의 “권리”를 획득함으로써만 가능하다는 일반적인 사고에서도 비롯된다.
그러나 근 60년이란 이 긴 흐름과 그 많은 사실들을 굳이 “권력”과 “권리”로 파악하려는 것은 필자 나름대로의 다음과 같은 생각에서이다. 그것은 즉 이 근 60년간 중국조선족 평단은 그것이 문학의 장場이면서도 실지 “권력”과 “권리”의 장場처럼 힘의 논리에 의해 부침을 하여오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즉 처음 상당 기간은 오랫동안 우리 모두들을 괴롭혀왔던 정치와 문학의 관계처럼 그 “정치”가 바로 우리 모두들의 “권리” 위에 “권력”으로 군림하여 기능하지 않았나 하는 것이고 지금은 우리 모두들이 우리와 문학의 관계를 고민하는 것처럼 그 “권력”은 얼마간 무력화되고 그 “우리”가 바로 우리 평단에 우리 문학 또는 우리 개개인의 “권리”로 기능하여 현재 우리 민족문학에 “질서부여”를 시도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따라서 본문에서는 편폭의 제한도 제한이지만, 일반적으로 논의되는 작품과 평론의 일상적인 관계에서보다는 문학과 그것을 둘러싼 외부적인 힘의 역학관계에 주목함으로써, 중국 문단 또는 한국 문단과 대체로 흐름을 같이하는 우리 평단의 일반적인 사실보다는 우리 중국조선족 평단의 특별한 사례들을 주로 취급함으로써 이 근 60년간 중국조선족 평단의 특별한 변화—“권력에서 권리로”의 변화를 밝히려고 한다. 아래, 필자 나름대로 그 변화를 문화대혁명(1976년)까지와 80년대 그리고 9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세 시기로 나누어본다.
비평의 공권력
이 근 60년간 중국조선족 평단의 변화를 “권력에서 권리로”의 과정으로 본다면 그 처음은 당연히 “권력”의 시기가 된다. 이는 물론 앞에서도 조금 밝힌 것처럼 중국에서의 정치와 문학의 특별한 관계를 생각해도 수긍이 가는 것이다. 그럼, 중국을 포함하여 여느 나라들에서도 그런 경우가 많겠지만 그 정치란 어떤 것일까? 일언이폐지하면, 그것은 정권에서 행하여지는 것이고 대체로 공권력으로 군림한다.
어떻게 보면, 중국조선족은 그 처음부터 벌써 중국 여느 소수민족보다도 그 공권력을 잘 받아들이게 준비된 민족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는 바로 중국조선족의 역사가 중화인민공화국의 역사와 함께 시작한다는 한 특징으로도 설명이 되는데 사실 재만조선인이었던 중국조선족은 8.15광복과 함께 새로 들어선 공산당정권으로부터 중국인과 동등하게 토지를 분여받음으로써, 중화인민공화국 국적을 취득하고 새정권건설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중화인민공화국과 역사를 함께 한다.
문학의 경우도 사실 이와 맥을 같이 한다. 원래 중국에서 우리 문학은 이주민사회 이주민문학으로서 당시 조선문단의 아류로 시작된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대체로 이방인의 문학이었다. 그러던 것이 8.15광복을 맞이하면서 당시 문단의 기성문인들은 대부분 귀국하게 되고 공산당의 새정권이 들어서면서 새정권건설의 적극분자, 동조자들로 이제 우리 문학의 새천지를 열게 된다.
따라서 중국조선족문학은 처음부터 그전 문학의 내용들은 철저히 배제되고 새정권하에 있게 되는 문화건설의 한 내용으로 분명히 규정된다. 이는 8.15광복이 지난지 얼마 안되어 아직 사회적 혼란기였던 1946년 9월 당시 목단강에서 꾸려진 조선문판 신문 《인민신보》에 모택동의 “연안문예좌담회에서 한 연설”1)이 조선문으로 번역되어 전재全載되고 여러 조선문판 신문에 그 내용에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대량의 평문들이 발표된 사실에서도 극명하게 설명이 된다. 공산당의 전국정권 취득을 앞두고 있은 이런 사실은 사실 당시 전국 여느 소수민족 거주지역에서도 없었던 사실로서 중국조선족으로 준비된 우리 조선인들이 전국의 모범을 보인 것이다.
중국조선족문학은 그 처음부터 기본상 공적인 의미를 가진다. 농촌과 도시의 사회주의개조운동, 거기서 꽃피는 새생활을 반영한 작품창작활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그런 작품들에서 개인은 언제나 조직의 한 분자分子로 귀속되고 그 조직은 대체로 당조직이나 또는 기타 사회조직이나 생산조직이다. 그리고 그 공적인 의미를 권장하고 감독하는 것이 바로 문학비평의 주요한 임무가 된다. 따라서 당시 많이 씌여졌던 “…(보고)읽고”식의 일문일평一文一評은 유일한 사실주의창작방법으로 창작을 지도하는 것이 되고 “…(관철, 전개)하자”식의 평론들은 시기시기 창작내용들을 지시하는 것으로서 그것들은 대체로 당선전부문의 지침을 반영하고 “권력”의 힘을 과시하는 것이었다.
문학이 공적인 의미를 가지고 그 공적인 의미가 정치적인 것이 되고 증폭될 때 그 문학비평은 창작보다 더 정치적인 것이 되고 더 “권력”이 된다. 이는 1957-59년 당시 국내외 복잡한 정치, 사회 상황에서 있었던 “반우파투쟁”과 민족정풍운동으로도 증명이 되는데 원래 당과 정부에 문단의 문제를 제기한다거나 창작의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의 견해를 내놓는 것은 정상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당과 정부에 대한, 사회제도에 대한 불만으로 보여져, 또 “민족주의”로도 보여져 당시 연변작가협회 50여명 회원 가운데 19명이, 연변작가협회 기관의 19명 임직원 가운데 10명이 “우파분자”와 “반당분자”로 되였다. 그리고 그것은 당과 정부의 포치로 우리 평단에서 그 사람들의 작품과 언행에서 “죄증”을 찾아 문학비평으로 “죄”를 씌우는 것으로 이루어졌다. 물론 그때 문학비평은 비평이 아니고 비판이었다.
따라서 이쯤 되면 이제 문학비평은 문학원론에 기댄 논의조차 완전히 버린 “계급투쟁의 도구”가 된다. “모주석께서 친히 발동하신 문화대혁명”이 바로 그 모습이다. “해서의 파직”2)에 대한 “문학비평”이 “문화대혁명”을 만들어낸 것처럼 문학비평은 “대자보大字報” 형식으로, “투쟁대회” 형식으로 창작의 자유는 물론 생각의 자유까지 무력으로 박탈한다. 김학철의 경우가 바로 그런 것이다. 김학철은 바로 “문화대혁명” 가운데 그 미발표작 《20세기의 신화》3)로 “사상범”에서 “정치범”으로 격상되고 “정치범”으로 “형사범” 이상의 “형사범” 대우를 받았던 것이다. 우리 문학에서 “정치권력”이 빚어낸 사실이었던 것이다.
평단의 자각
“물극필반物極必反”이라는 말이 있다. 이 근 60년간 중국의 사회변화가 바로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건국 후 근 20년 간단없는 “계속혁명”을 해서 생긴 “문화대혁명”의 폐허가 그것을 말해주고 1977년 등소평이 복귀한 후 “이제는 정치운동을 하지 않는다”고 선언한 것이 그것을 말해준다. 등소평이 복권한 후 추진한 개혁개방은 그것이 체제를 개혁하고 문호를 개방하는, 건국 후 최대의 사상해방이 된다.
그 사상해방은 등소평의 “백묘흑묘론白描黑猫論”이 말해주다시피 이제는 “혁명”과 고별하고 모두 본업에 종사하자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농민은 농사를 짓고 로동자는 제품을 만들어내고 문인들은 문학을 하자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따라서 이는 지금까지 “혁명”의 명의로 진행되었던 과거 “권력”의 해체로도 되며 그 “권력”의 해체는 또 우로부터 아래로의 통제된 새로운 “권력질서”속에 이루어진다.
“문화대혁명” 폐허 위에서의 중국문학, 중국조선족문학의 흥기는 봇물처럼 터진 “4인무리”들에 대한 성토 그리고 “문화대혁명”을 비롯한 과거 정치운동의 비인간성에 대한 고발 등으로 시작되는데 그것은 민분의 표출이어서 “체제위협”으로까지 된다. 따라서 평단도 일단 긴장되는데 당시 정치와 문학의 관계에 대한 치열한 쟁론이 그것을 말해준다. 결과 체제는 인정되는 대신 문학의 권리도 인정되어 결국 과거 평단에서의 “공권력”도 쇠퇴의 길을 걷는다. 중국조선족문학에서는 민족문학의 권리가 인정되어 최초로 1980년 전문 중국조선족문예를 연구하는 연변문학예술연구소가 건립되고 1985년에는 최초로 중국조선족 문예관련 평론지 《문학과예술》이 공개 출간된다.
“문화대혁명” 이후, 중국문학으로서의 조선족문학의 흥기가 전국 문단과 보조를 같이하는 것이라면 민족문학의 내용에 들어가서는 경우를 달리한다. 원래 우리에게는 민족문화의 내용이 있었고 그 민족문화의 내용은 당시 정책성이 강하고 또 정치적으로 민감한 것이어서 당시 우리 조선족 자체로는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문화대혁명” 이후 우리 중국조선족의 민족문학의 재건은 창작으로보다도 실지 당과 정부의 상명하달上命下達의 방식으로 먼저 평단에서 시작된다. 당 선전부문 지도자의 연설정신에 의해 그전 우리 민족문학에 들씌웠던 “민족문화혈통론”의 부당함이 지적되고 우리 문화의 전통을 조선(한)반도와 연계시킴으로써 《심청전》, 《춘향전》 등이 소개되고 중국조선족의 구전민요에 대한 수집, 정리와 연구가 이루어진다.
“문화대혁명” 이후 개혁개방 초기 우리 평단의 출발이 당과 정부의 상명하달上命下達에 의한 민족문화에의 접근으로 주목되는 것이라면 8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주목되는 것은 우리 평단의 조직화되고 기획화된 비평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조직화되고 기획화된 비평활동은 물론 당시 연변작가협회 기능의 정상적인 회복과 연변문학예술연구소의 건립, 평론지 《문학과예술》의 창간 등 여건으로 가능하게 된 것이지만 더 중요한 의미는 그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당시 연변문학예술연구소의 주최로 두 차례 열린 “겨레문학과 세계문학사조 학술토론회”의 경우로도 설명이 되는데 당시 “겨레문학”이거나 “세계문학사조”의 의미나 내용은 우리 과거로는 사실 매우 생소한 것이었다. 따라서 그 토론회는 함께 학습하는 기회가 되었고 집단행동의 안전감과 함께 또 우리 평론대오도 키웠다. 이는 당시 사회 여건이 만들어준 우리 평단의 권력이라면 권력이었고 권리라면 권리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따라서 80년대 중, 후반에 들어서면서 우리 평단에서는 어떤 집단의식을 치르듯이 무슨 “민족적 색채”요, 무슨 “민족의식”이요 하는 글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리고 또 시기별, 장르별로 중국조선족문학 관련 “개관” 글들이 쏟아져 나오고 중국조선족문학 제1세대 문인들과 오늘의 중견 문인들을 논한 “XXX론”들이 쏟아져 나온다. 물론 모두 자기를 찾는 작업이었다. 따라서 이쯤 되면 우리 중국조선족 평단에서 과거 외부로부터 가해졌던 권력의 시기는 이미 역사의 뒤안길로 접어들고 우리는 자기 문학의 권리를 주장하는 시기에 와있었던 것이다.
비평의 권리
개혁개방의 10년을 거쳐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우리 사회는 또 다른 사회가 된다. 개혁개방에 힘입은 민족사회의 활기와 함께 그 개혁개방의 결과로 기존의 질서와 체제가 무너지면서 사람들은 개인으로 사회에 나앉게 되고 개혁개방의 혜택을 입거나말거나 모두 개인의 몫으로 된다. 또 컴퓨터의 보급과 인터넷의 사용으로 하여 사람들은 조금 더 개인적이 되면서 더 열린 세계를 대하게 된다.
중국조선족들은 90년대에 들어서 국외내왕이 빈번해지면서 특히 1992년 중한수교와 함께 한국과의 인적내왕이 빈번해지면서 중국내 여느 소수민족사회보다 먼저 외부 세상을 대하게 되고 그것은 또 그전의 우리 생각과 의식을 고민하는 계기가 된다.
문학의 경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문화대혁명시기까지만 해도 문학이 “계급투쟁의 도구”로 되면서 거기에 국가권력이 개입하고 80년대에는 문학이 사회적 이슈를 선점하면서 사람들의 중시를 받고 그것이 사상해방의 척도로도 되었지만 이제는 창작의 자유와 함께 사회일반의 관심에서 멀어지면서 문학도 개인의 사정으로 된다. 이제는 중국조선족문학도 훨씬 자유로워졌다. 중국 주류문학의 영향을 받거나 한국문학의 영향을 받거나 각자 나름이 되고 중국에서 문학상을 받는 것도, 한국에서 문학상을 받는 것도 일상사가 되었다. 창작이 이만큼 세상에서 자유를 누리면 비평도 그만큼 사상의 자유를 누린다. 그리고 그 사상의 자유는 우선 비평의 권리가 된다. 따라서 훨씬 자유로워진 90년대 중국조선족 문단환경에서 그 비평의 권리는 우선 개인의 권리가 되면서 다음 또 중국조선족 평단의 민족문학의 권리가 된다.
90년대 중국조선족 평단의 비평의 권리는 우선 그 비평의 권리를 장악하려는 노력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는 사실 개혁개방 후 우리 평단의 딱한 사정으로부터 시작된다. 그 유일무이한 사회주의사실주의와 당의 방침, 정책은 이미 지나간 것이고 분노와 실망 그리고 고통과 고민의 그 문학에 대해서 우리는 당시 사실 아무런 비평의 무기도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80년대 중, 후반부터 시작된 것이 바로 “니즘”에 대한 학습열이다. 그리고 9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그 학습효과가 나타나 이제는 “실존”이니 “이미지”니 하는 것도 우리 비평의 일상용어가 된다.
따라서 이제는 중국조선족문학에 대한 비평의 무기도 다양해진다. 이는 이 근년 우리 시의 진로를 두고 벌린 김관웅과 최룡관의 쟁론으로도 설명이 되는데 사실 김관웅의 “사회와 현실을 뜨겁게 포옹하는” 시를 써야 한다는 주장 밑바탕에는 사실주의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함께 민족문학에 대한 강한 집착이 깔려있었고 최룡관의 “폭력적 이미지 조합”으로 시를 써야 한다는 주장 밑바탕에는 순수예술에 대한 강한 집착과 함께 포스트모더니즘의 끈질긴 유혹이 깔려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이제 우리는 우리 문학을 두고 비평의 무기에 대한 자유로운 선택권뿐만 아니라 무기에 대한 비평도 가능하게 된 것이다.
소신 있는 비평의 권리가 보장되면 거기에는 책임이 따른다. “문화대혁명” 전에는 비평의 대상과 내용이 기본상 규정되어 소신 있는 비평이란 있을 수 없었고 80년대에는 사실 이론적인 준비도 잘 안되었지만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하여 소신 있는 비평이 잘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모든 제약들이 없어져 적당한 “상황론”으로는 변명이 되지 않는다. “가치판단”에 대한 자기 책임이 사회에 대한 책임으로 이어진다.
하여 90년대로부터 이루어지는 비평에는 김관웅과 최룡관의 우리 시의 진로를 두고 벌인 그런 비평의 치열함에 또 비평의 참다움이 더한다. 이 면에서는 여러 실례가 있지만 90년대로부터 시작된 김학철 문학연구가 그 좋은 모범이라고 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김학철 문학연구는 김학철의 문학창작으로부터 비롯되고 김학철의 “문화대혁명” 이후 창작은 “문화대혁명” 이후의 사회변화에 의해서만 가능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90년대로부터 줄곧 이어지는 김학철 문학연구는 우리 평단의 자각으로서 거기에는 문학본연의 의미와 문학의 역할에 대한 기본적인 질문과 함께 우리 민족사회 모두들의 책무를 묻는 의미가 강하다. 참말로 비평의 권리에 따른 우리 평단의 모처럼의 자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21세기 이 시점에서 우리 중국조선족 문학비평은 참으로 다양하고 참으로 의미 있는 양상을 띤다. 현재 우리 평단에서는 현재의 창작이 다루어지는가 하면 50년 전 반우파투쟁 때의 사실도 다루어지고 심지어는 우리의 사전史前력사—광복 전 재만조선인문학도 다루어진다. 그리고 그 모든 대상에 대하여 어떤 것은 관념으로 접근되기도 하고 어떤 것은 실증의 방법으로 접근되기도 하고 어떤 것은 지금까지의 우리 경험으로 접근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또 모두 21세기 우리 중국조선족문학의 전망, 우리 중국조선족사회의 전망과 직결된다.
이러고 보면 이 모든 의미를 대부분 충족시키는 것이 바로 이 근년 불거진 남영전의 “토템시”와 “토템문화”를 둘러싼 논쟁이 아닌가싶다. 남영전의 “토템시”는 원래 1990년 전후 남영전이 조선민족의 전통문화에 대한 사고에서 동물을 비롯한 자연물을 소재로 계열시를 창작하면서부터 비롯된 것으로서 이번 논쟁의 발단은 그것이 90년대 중반에 “토템시”로 이름 지어지고 남영전이 거기서 더 나아가 “토템문화”의 구축으로 “세계의 융합”을 여러 곳에서 여러 번 주장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번 논쟁은 “토템시” 여부와 더불어 “토템문화”에서 비롯되는 우리 민족의 정체성에 대한 시비 그리고 “세계의 융합”에 대한 의미추축 등 그 내용과 주장들이 신선하고 조금은 충격적이고 심각한 것이어서 처음부터 격렬한 찬반양론의 논란을 일으킨 것이다. 하여 문학비평에서 문화비평으로 확대되고 지상토론에서 인터넷토론으로 번지고 중국에서의 논란이 국외로까지 번지게 된 것이다. 21세기 우리 중국조선족 평단의 현주소, 현장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나오는 말
이상 이 근 60년간 중국조선족 평단의 변화를 “권력에서 권리로”의 과정으로 알아보았다. 물론 중국으로만 있게 되는, 중국조선족사회로만 있게 되는 특수한 접근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이 기간 중국문학과 함께 중국조선족문학은 문학의 내재율內在律보다 이 기간 중국의 정치, 사회적 상황에 의한 외재율外在律에 더 많이 규정되었던 것이고 중국조선족문학의 경우는 좀 더 강화된 경우, 좀 더 특별한 경우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문학은 원래 문학의 본연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정답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모두들의 바람이다. 그러나 중국조선족의 경우, 그것은 아직까지 아니 앞으로도 그냥 사치이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중국조선족의 경우, 중국조선족은 정치, 경제생활에서는 전국 여러 민족과 함께 하고 문화생활에서 자기 민족문화를 보여줌으로써 자기 존재를 가진다. 그리고 그 민족문화의 대부분 내용을 차지하는 우리말과 우리글 그리고 우리 문학예술에서 우리말, 우리글은 현재 당과 정부의 민족정책에 의해 제도교육으로 이루어짐으로써 우리 사회제도에 맡겨지고 우리 민족문화에서 상당부분 차지하는 우리 문학예술가 바로 우리 몫이 된다.
우리 조선족문학은 우리 문학예술에서 가장 역동적인 부분이면서 우리 조선족사회의 가장 고민에 찬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 문학이 문학 이상의 의미를 갖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니 그 문학 이상의 의미를 다루는 우리 문학비평도 비평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즉 중국조선족 문학비평, 거기에는 단순히 우리 문학뿐만 아닌, 우리 존재와 우리 문화의 다양한 문제들이 상정되어 있으며 거기에 따른 우리의 다양한 대응전략도 상정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비평의 책임도 무겁고 광범위한 것이다.
그러니 모두어 20세기를 보내고 21세기를 지내는 지금, 이제는 우리의 문제는 우리의 책임이 큰 것이다. 과거에는 타성과 관성에 의한 것이 많았다면 이제는 자성이 필요한 것이다. 자성과 함께 이제는 이성의 발달이 중요하지 않을까 본다. 우리 민족사회의 발전에 우리 민족문화가, 우리 민족문화의 발달에 우리 문학이, 우리 문학의 번영에 우리 문학비평이 큰 몫을 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1) 모택동의 〈연안문예좌담회에서 한 연설〉은 중공중앙 선전부가 1942년 5월 28일, 연안에서 소집한 문예좌담회에서 모택동이 한 연설임. 모택동은 연설에서 당의 문예방침과 더불어 문학예술인들에게 여러 가지 요구를 제기하였다.
2) 《해서의 파직》은 역사학자, 북경시 시장이었던 오함이 1960년 창작한 역사극임. 1965년 11월, 요문원이 《문회보》에서 “신편 역사극 ‘해서의 파직’을 논함”이란 글로 오함을 공격함으로써 “문화대혁명”의 서막이 열림.
3) 《20세기의 신화》 김학철작, 한국 창작과비평사 1996년 출판. 중국 50년대 대약진시기 사회 암흑면을 폭로한 장편소설임.
조일남 ----------------------------------------------
1956년 룡정 출생, 연변대학 조문학부 졸업, 저서로 《중국조선족문학비평사》(공저) 등, 《문학과예술》지 주필, 《연변문학》지 주필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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