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수필과 비평/수필과비평 신인상 수상작

[수필과비평 2014년 12월호, 제158호 신인상 수상작] 바람만 머물다 가는 집 - 이현순

신아미디어 2014. 12. 7. 11:58

"엄마도 동생네가 사는 집 옆에 조그마한 텃밭이 달린 아담한 집으로 이사를 하셨다. 생각해 보면 감나무가 베어질 때부터 엄마의 주변 정리는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영원히 그 자리에 남아서 우리를 반갑게 맞이할 것이라는 착각을 가지고 나는 살았던 셈이다. 넓은 집에서 우리를 언제나 반갑게 맞이해 주시던 엄마는 영원히 내 기억 속에만 남아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니 어쩐지 쓸쓸한 생각이 든다. 엄마는 늙지 말아야 해. 절대로 늙지 말아야 해. 그렇게 외쳐 보지만 가는 세월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오늘도 계절을 잊은 텅 빈 비닐하우스 두 동만이 덩그렇게 서 있다. 엄마도 감나무도 없는 집을 지켜내고 있는 것이다. 순간 휑하니 머리카락을 흩뜨리고 지나가는 장난꾸러기 바람을 잡으려 허공으로 손을 휘저어 본다. 그 큰 집은 바람만 머물다 가는 집이 되었다."

 

 

 

 

 

 

 

 

 바람만 머물다 가는 집        이현순


   빙 둘러쳐진 담장을 따라 한발 한발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담장 너머로 아름드리 은행나무들이 규칙적인 간격으로 서서 진을 치고 있다. 마당 안은 아이들이 뛰어 놀기에도 넉넉할 만큼 넓다.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면 ㄱ자와 ㄴ자가 합쳐진 ㅁ자형 집이 반듯하게 앉아있다. 집 한가운데에는 넓은 대청마루가 있고, 그 앞에는 손질이 잘된 예쁜 화단이 있다. 그 옆 샘터에는 펌프가 놓여 있고 언제라도 마중물을 부으면 시원한 샘물을 길어 올릴 수 있다. 그 위로 포도가 주렁주렁 열린 포도나무가 덮개를 이루어 그늘을 만들고, 그 포도나무 잎사귀 틈새로 떨어지는 햇살은 언제나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할아버지께서 오래전에 세우신 집이다. 내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집 뒤 텃밭에 세워진 비닐하우스에는 사계절 우리 식구들이 넉넉하게 먹을 수 있는 채소들이 자라고 있다. 담장 옆에는 다섯 그루의 감나무가 풍성한 가을을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그 감나무들은 이미 내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다. 달콤함과 쓰라림의 추억을 함께 피어나게 하는 그 감나무들.
   감은 익으면 하나씩 따야만 한다. 매만질 때도 서로 부딪쳐서 상처 나지 않게 담아야 하니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감 맛은 오랫동안 먹어본 사람이라야 안다. 감을 딸 시절이 되면 그 맛을 잊지 못해서 계절병을 앓듯이 가만히 있지 못한다. 하지만 감을 딸 때의 귀찮음 때문에 나는 엄마에게 심술스럽게 투덜거린 적이 많다. “시장에 가면 지천이 감인데, 뭣 때문에 이 고생을 해요.”라고 하기도 했고, “엄마, 이 감나무들 관리하기도 힘든데 베어 버리죠?” 하기도 했다. 그러면 엄마는 빙그레 웃으시며 “그럴까? 별것도 아닌 것이 너희들만 귀찮게 하지?”라고 하셨다. 그렇게 말은 하지만 그 말 속에는 뭔지 모를 허전함이 묻어 있었다. 나도 뭔가 서운한 느낌이 들어서 잠깐 머뭇거리고 있다가 내친 김에 속에 없는 말을 이렇게 내뱉고야 만다. “으응. 엄마, 그렇게 해. 엄마도 힘들지 않아.” 누가 들으면 엄마 생각을 끔찍이도 하는 딸처럼 말이다. 매년 엄마 집 가서 감을 따는 것도 아니고, 어쩌다 한 번 하는 것이 그리도 못마땅했을까. 받아먹기만 하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서 아무렇게나 내뱉은 말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다음해였을까? 감이 다 익었다, 하시며 더 추워지기 전에 얼른 따다 먹으라고 하신다. 언제 내려올 수 있느냐고, 엄마의 음성이 전화기를 통해 힘없이 들려왔다. 마치 어려운 부탁이라도 하듯이 작은 목소리로 내게 간청하듯이 말하고 있다. 지금 생각하면 정성들여 가꾼 감나무에서, 잘 익은 감 따다가 저희들 먹으라는 것인데 그리도 어려운 부탁이나 하듯 말씀하셨을까? 별것도 아닌 것 가지고 내려오라 한 것이 무슨 죄나 지은 듯한 목소리였다. 자식들의 바쁜 시간을 빼앗는다고 엄마는 생각했을 테지. 아니면 자식 보고 싶은 마음 감추고 감 따서 가라는 핑계를 댄 것이 몹시 불편한 마음이었을까? 충분히 그렇게 생각했을 분이다.
   손녀가 보고 싶으면 애들 보고 싶다는 말은 못하고 밤새 기도를 하신단다. “지난밤 꿈이 뒤숭숭하던데 느그들 모두들 잘 있지?” 하며 이른 새벽 전화를 걸기도 했다. 딸이 보고 싶다는 뜻을 “감 다 익었다. 참 달다. 더 추워지기 전에 얼른 따다가 애비랑 애들이랑 멕여라.” 하기도 했다. 나도 애를 키워 보아서 잘 알지만 부모 마음은 늘 그렇다. 딸과 손녀를 보고 싶다는 간절함이 그 속에 묻혀 있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지만 냉큼 달려가지 못한다. 이유는 얼마든지 있다. “엄마! 이번 주는 애비가 바쁜 일이 있다네요. 애들도 보충수업이 있다고 그러고.”
   그러고 한참 지난 날, 감나무에 감이 달려 있었어도 이미 서리와 찬바람에 견디지 못하고 다 떨어졌을 무렵이었다. 마치 선심이라도 쓰듯이 엄마의 집으로 갔다. 잘 익은 홍시 먹을 생각에 입 안 가득 달콤한 침이 고이며 신바람을 일으키며 동네에 들어섰다. 늘 그랬던 것 같다. “감 따러 와라.” 엄마가 그렇게 말하고 한 두주 정도 지나서 가면 감들이 잘 익은 홍시로 변해서 광속에 가득 담겨 있었다. 나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엄마 집으로 향하고 있는 중이다. 대문을 활짝 열어젖히며, “엄마!” 하고 한 번 부르고는 잘 익은 감들이 가득 쌓여 있어 단내가 물씬 풍기는 광으로 발길을 잡는다. 얼마나 먹었을까? 수북이 쌓인 감꼭지들을 휙~ 하니 광 밖으로 내던지며 감나무를 만나러 뒤 안으로 향한다.
   이번에는 전과는 달리 휭~하니 찬바람이 지나간다. 입 안에 가득한 달콤함이 채 가시지도 전에 어쩐지 몹시 허전하다. 대여섯 그루나 되던 감나무들이 한 그루도 보이지 않는다. 감나무들은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렸다. 얼마 전 “귀찮아서 이제 감나무들 다 베어 버릴란다.” 하시던 엄마의 말이 문득 떠오른다. 그때는 설마 했다. 엄마의 말을 귓등으로 들으며, 설마 엄마가 감나무들을 베어버리실까 했던 것이다. 살다 보면 아무리 후회를 해도 되돌릴 수 없는 일이 있다. 엄마에게 투정을 부리긴 했지만 설마 했던 일이 현실로 우리에게 닥친 것이다.
   이제 엄마 집에 내려가도 그 감나무들을 더는 볼 수 없게 되었다. 무공해감이라고 떠벌리며 한껏 먹을 수 있었던 연시는 더 이상 없다. 나무가 없으니 걸릴 구름이 없고, 익어야 할 감이 없으니 내려앉을 햇살도 없다. 나뭇가지에 잘 익은 홍시 대여섯 알씩은 남겨 두었는데 이제 그 마저 없으니 까치들도 보이지 않는다. 한가운데 덩그마니 놓인 비닐하우스 두 동에는 바람이 지나며 걸쳐놓은 기다란 끄나풀 몇 가닥만이 너풀거린다.
   세월 참 빠르다 하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던 엄마의 마음이 전해지는 듯하다. 하루가 다르게 쇠잔해 가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세월의 무정함을 새삼스럽게 느낀다. 힘이 부쳐서 감나무들을 베긴 했지만, 엄마도 감나무가 사라진 집이 매우 허전한 듯 느끼는 것 같다. 우리들에게 연신 미안해 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이제는 자식들에게 더 줄 수 없음에 대한 미안함 같은 것이라고 할까. 나는 ‘그러지 않아도 돼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끝내 하지 못했다.
   엄마도 동생네가 사는 집 옆에 조그마한 텃밭이 달린 아담한 집으로 이사를 하셨다. 생각해 보면 감나무가 베어질 때부터 엄마의 주변 정리는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영원히 그 자리에 남아서 우리를 반갑게 맞이할 것이라는 착각을 가지고 나는 살았던 셈이다. 넓은 집에서 우리를 언제나 반갑게 맞이해 주시던 엄마는 영원히 내 기억 속에만 남아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니 어쩐지 쓸쓸한 생각이 든다. 엄마는 늙지 말아야 해. 절대로 늙지 말아야 해. 그렇게 외쳐 보지만 가는 세월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오늘도 계절을 잊은 텅 빈 비닐하우스 두 동만이 덩그렇게 서 있다. 엄마도 감나무도 없는 집을 지켜내고 있는 것이다. 순간 휑하니 머리카락을 흩뜨리고 지나가는 장난꾸러기 바람을 잡으려 허공으로 손을 휘저어 본다. 그 큰 집은 바람만 머물다 가는 집이 되었다.

 

 

이현순  -----------------------------------------------
   충북 충주 출신. 원석문학회 회원.

 

 

당선소감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저는 한참을 멍하게 있었습니다. 꿈은 아닐까 확인하고 또 확인했습니다. 가정주부로만 20여 년을 살아오면서 남편과 자식 뒷바라지밖에 할 줄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또한 그들의 꿈을 제 꿈으로 착각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이 모두 자기 자리를 찾아 떠나고 홀로 덩그마니 남아 있는 저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두드린 곳이 수필쓰기였습니다. 그러나 자신감마저 상실한 저는 희망보다는 좌절을 하면서 서성일 때가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제게 힘을 주신 분은 지도교수님과 문우들이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지금은 몸이 불편하셔서 작고 아담한 집으로 이사를 하셨지만 엄마도 얼른 건강해지셔서 전에 살던 감나무가 있던 그 넓은 집에서 저를 기다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홍시는 없다 하더라도 그곳에서의 엄마 품이 더 따뜻했음을 저는 기억합니다. 엄마 사랑합니다. 또한 제가 글을 쓰고 나면 마다않고 한 번씩 읽어 봐주는 남편과 세 딸, 모두들 고맙습니다. 올겨울은 유난히 따뜻할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