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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 2012년 봄호, 우리 고전수필 산책] 임춘의 <여조역락서> - 정진권

신아미디어 2012. 4. 9. 19:02

임춘님의 <여조역락서>, 우리 고전수필이 이렇게 마음을 흔들어 놓을 수 있는지를 알았습니다.

『좋은수필』에서 여러분들과 공유하고자 소개하오니 즐거운 소통되시기를 바랍니다.

 

 

정진권의 우리 고전수필 산책

임춘林椿의 <여조역락서與趙亦樂書>1)

 

 

   임춘林椿이 드립니다.
   예로부터 과거科擧에 낙방落榜하여 몰락沒落에 이른 자가 수없습니
다. 허나 나에게 이르러서는 더욱 심하니 실로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나는 이미 두 번을 보아 두 번 다 떨어지고, 그 뒤엔 큰 어려움2) 을만나
어찌할 바를 모르며 지체하다가 이제 세 번을 보려 함에 수염이 하얘
졌습니다. 헌데 이것마저도 질병疾病으로 폐廢하게 되니, 참으로 저 아
득한 하늘이 시켜서인가, 이는 항우項羽3)가 말한 바
   “하늘이 나를 망亡하게 한 것이요, 내가 잘못 싸운 죄罪가 아니다.(天
亡我非戰之罪)”
라 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내 늘 생각하기를
   “하늘의 화벌禍罰이 나에게 이처럼 심중深重한 것은 나의 이름이 실
상實相에 지나친 까닭이다4).”
하였으니, 이름이라는 것은 하나의 공기公器로서 함부로 취할 것이 아
니기 때문입니다. 소자첨蘇子瞻5)
   “이는 남의 여예輿隷6)가 되어 아무 세운 공功없이 천종千鍾의7) 녹祿
을 받는 것과 그 죄가 같다.”
고 한 것은 참으로 그렇습니다.
   나는 족하足下여러분이 나의 포예褒譽8)를 위하여 힘쓰는 것을 바라
지 않습니다. 이는 반드시 그 허물만 더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나
로 하여금 허명虛名을 취하고 실화實禍를 부르게 한다면9) 거기 무슨 유
익有益함이 있겠습니까?
   아, 나는 평소平素에 이미 쓰이지 못하여 몰래 이 성세盛世에 서리졸
오胥吏卒伍10)에나마 들려 하였으나 얻지 못하였습니다. 우부우부愚夫愚
婦에게 이르러서도 나 같은 자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달갑
게 이를11) 폐기廢棄하고, 다시는 기예技藝12)를 드러내어 세상에 성예聲譽
13)를 구하지 않을 것입니다.
   족하는 웅재雄才14)로써 밝은 시절을 만나 탁연卓然히 이룩한 바가 있
을 것이요15), 또 문장文章의 쇠衰함16)이 오늘보다 더 심한 때가 일찍이
없었으니 족하 여러분이 함께 창화唱和하여17) 이를 일으킨다면 그 공功
도 어찌 작다 하겠습니까?
   족하에게 드리고 싶은 말은 끝없으나, 종이도 다하고 붓도 다 닳아
더 갖추지 못하고 이만 줄입니다.
                                                                      -《 동문선東文選》


* 林椿(1147~1197) ; 고려 명종 때의 문인. 자字는 기지耆之. 시문詩文에 뛰어났다. 그
러나 과거科擧에 실패, 무신武臣, 즉 정중부鄭仲夫의 난亂(1170)을 만나 겨우 목숨을 건지
고, 시와 술로 세월을 보냈다. 저서로는 이인로李仁老가 그의 유고遺稿를 모아 엮은《서
하선생집西河先生集》.


1) 조역락趙亦樂에게 주는 글(편지). 역락亦樂은 고려 명종 때의 문인인 조통趙通의 자
字. 주고받는 두 사람은 이른바 해좌칠현海左七賢의 멤버들. 같은 제목으로《동문선
東文選》에 두 편이 전하는데 이 글은 그 둘째 글.
2) 고려 의종 때 일어났던 무신武臣의 난亂.
3) 중국 초楚나라의 패왕(覇王, BC 232~202). 힘이 장사로 이름났으나 한漢나라 유
방劉邦에게 패했다.
4) 자신의 명성名聲이 사실보다 과장된 까닭이다.
5) 중국 송宋나라의 시인(1036~1101). 자첨子瞻은 자字, 이름은 식軾, 호는 동파東坡.
<적벽부赤壁賦>로 우리에게도 유명.
6) 하인下人종.
7) 많은. 종鍾은 곡식을 되는 그릇으로 곡(斛, 열 말들이)의 열 배(열 가마)라고 한다.
그럼 천종千鍾은 대체 얼마나 많은 양인가?
8) 명예名譽를 기림, 또는 명예. 지은이가 불우不遇하므로 그 친구들이 그를 드러내려
고 애를 쓴 모양이다.
9) 겉으로는 헛된 이름을 드날리고 실제로는 화禍를 부른다면. 그가 이름 없는 선비
였다면 무신武臣의 화도 입지 않았을 것이다.
10) 서리胥吏는 관청官廳의 아전衙前, 졸오卒伍는 졸병卒兵의 대오隊伍. 선비인 그에게
는 너무도 하찮은 자리다.
11) 하찮은 자리에나마 드는 것을.
12) 재주, 재능才能.
13) 명성名聲과 영예榮譽. 묻혀 살겠다는 뜻.
14) 크고 뛰어난 재능才能.
15) 뛰어나게 이룩한 바가 있을 것이니 그 공도 크다는 뜻.
16) 글이 타락했다는 뜻인가?
17) 한쪽에서 부르고 한쪽에서 화답和答하여, 서로 협심協心하여.

 

 


독후감


  내가 이 글을 처음 읽었을 때 내 눈앞에 맨 먼저 떠오른 것은 임춘
林椿의 너무도 가여운 모습이었다. 문장文章으로 서울에 이름을 떨치
던 그는 두 번씩이나 과거科擧에 실패했다. 그 다음엔 또 무신武臣의
난亂에 좌절해야 했다. 서리졸오胥吏卒伍에라도 들려 했던 것은 삶이
너무 곤궁困窮해서 그랬을 것이다. 이인로李仁老의《파한집破閑集》에
따르면, 아내마저 병든 그는 송곳 꽂을 땅 한 뼘이 없었다고 한다.
다음은 그가 어느 절에서 쓴 쓸쓸한 시 <소사蕭寺>다.


일찍이 문장文章으로 장안長安을 울렸거니,/끝없는 하늘 아래 외로운
저노인老人./부처님 뵈오러 절을 찾네만/그 이름을 아는 이 아무도 없네.
早把文章動帝京, 乾坤一介老書生.
如今始覺空門味, 滿院無人識姓名.
                                          -《 破閑集》


   허무虛無도 했을 것이다. 좌절을 거듭한 병든 몸, 그럴 때 그는 어찌
지냈을까?《 동문선東文選》에 전하는 그의 <사견방계謝見訪啓>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보인다. 누군가에게 방문해 준 것을 감사하는 글.


   오직 우환憂患만 쌓인 저의 남은 인생人生이 지리支離한 병病까지 끊이
지 않아 벗들과의 만남도 사절謝絶한 지 이미 오래입니다. 어찌 제 집의
쓸쓸함을 이루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안회顔回의 누항陋巷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 도시락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의 괴로움을 참기 어렵습니다. 다만 왕적王績의 취향醉鄕
에 들 뿐입니다.


   공자孔子의 제자 안회顔回는 한 도시락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로 누
추陋醜한 곳에 살면서도 즐거워 했다고 한다. -《 논어論語》. 그러나
우리의 주인공은 그 뼈에 사무치는 가난의 괴로움을 참지 못한다.
옛 중국사람 왕적王績의 글에 <취향기醉鄕記>라는 것이 있다. 취향醉
鄕이란 술 취한 상태를 뜻하는 말이다. 그러니까 그는 술에 취하여
그 괴로움을 잊는 것이다. 좌절挫折과 곤궁困窮과 병고病苦로 신음呻
吟하며 술로 괴로움을 잊는 지은이의 모습이 너무 안쓰럽다.
   그러나 그런 중에도 그는 또 다른 자신의 두 가지 모습을 보여준
다. 그 하나는, 하늘의 화벌禍罰이 그처럼 심중深重한 것은 자신의 이
름이 실상實相에 지나친 까닭이라는 그 깨닫는 모습, 다른 하나는 문
장文章의 쇠衰함을 개탄慨嘆하고 벗들에게 분발奮發을 촉구促求하는
모습이다. 의연毅然하다. 나는 일찍이 그를 생각하면서 <쓸쓸한 절>
이라는 제목으로 수필隨筆 한 편을 쓴 일이 있다. 다음은 그 한 부분.


   이 세상에는 재능 있는 사람이 많다. 그런 사람들이 제자리를 차지하
고 부지런히 일하는 것을 보면 보기도 좋고 마음도 든든해진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제자리에 앉지 못하고 좌절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고
언짢아진다.
   “임춘林椿선생, 저승에서는 선생 자리에 앉으소서.”
                                                - 필자《한시漢詩가 있는 에세이》

 

정진권  -----------------------------------------------------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명지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석사과정) 졸업.
문교부(현 교육부) 편수관, 한국체육대학교 교수 역임. 현재 동대학 명예교수.
수필집: ≪푸르른 나무들에 저 붉은 해를≫, ≪분이별, 삼돌이별≫ 등.
역해서: ≪한시를 읽는 즐거움≫, ≪한국고전수필선≫ 등, 그 밖에 선집, 논저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