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 옷을 갈아입는 칠면초는 염도에 따라 색깔이 달라지기 때문에 한 가지 색으로 그 아름다움을 단정짓지 못한다. 칠면초가 몸이 붉어질 때는 가을로 지금 순천만에 가면 만날 수 있다. 칠면초의 붉은 융단, 황금빛 갈대, 높다란 하늘 들판, 용산대 전망대 바로 앞에 고흥 팔영산(다 보이지 않고) 6봉이 눈앞에 보인다. 바다를 지키는 수호신처럼 버티고 그 자리에 서 있다. 남해안에 붉은 빛으로 화려하게 서서히 저물어 가는 낙조와 그 하늘위에 수만 마리 철새들이 군무를 이루면서 춤추는 장관을 상상해 보라. 삶에 지치고 고통 중에 있는 모든 이들이여, 이곳 순천만에 와 석양의 낙조, 그리고 군무를 바라보라. 정녕 고단한 삶에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되어 줄 것이다."
순천만의 가을여행 / 신수길
맑고 푸른 가을 하늘을 보며 일찍 서둘러 보성 광양 간 고속도로를 달리는 기분이 너무도 상쾌하다.
포근한 한 폭의 그림 같은 남해안의 고즈넉한 풍경을 뒤로한 채 무지개 터널을 비롯한 11개의 터널과 벌교와 남해안 고흥만을 지나 순천정원박람회장에 들어섰다.
순천시는 33만 평의 평야를 조성해 파리미드형의 봉화 언덕을 만들고 사방이 한눈에 들어올 수 있도록 높여 올라가는 길과 내려가는 길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소통하게 하였다.
계족산에서 발원하여 시의 동부를 관류하는 동천은 중간에서 석현천, 옥천 등과 합류하여 남쪽의 순천만으로 유입하며 하천 유역에는 순천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그 동천의 물을 끌어들여 인공호수를 조성하고 순천만 일대의 자연과 환경을 충분히 살린 연출과 이를 활용한 관광 전략이 눈여겨 볼만 했다.
정원박람회는 자연 생태의 친화적인 환경, 조경, 화훼, 미용, 한방 등의 휴식처로 현대인의 관심을 끌 수 있도록 만들었으며 목포 광양 간 고속도로 공사장에서 나온 흙과 돌을 가져와 바위정원도 조성했다고 한다.
세계의 정원 11곳, 참여정원 61곳, 테마정원 11곳, 무등산을 비롯한 수원성, 첨성대 등 61곳 등 다양한 정원의 아름다움을 선사했다는 점도 인기 요소가 되었다.
제주에서 육백 년 자란 팽나무를 통영에 옮겨와 육지의 환경에 적응시키는 등 정성스레 살려내어 이곳에 기증하고, 백 년 넘은 먼나무도 함께 옮겨와 바위 정원을 꾸며 놓고 원추리 꽃동산을 만들어 놓은 박병화님의 정성이 돋보인다.
세계적인 디자이너 찰스젱스가 순천의 대지와 하천을 모티브로 소개한 테마정원과 순천호수 정원이 훌륭한 작품으로 찬사를 받았다 한다. 정원박람회를 만드는 데 74만 그루의 나무와 초화류 4백만 분을 정성스럽게 살려냈고 나무를 세우는 지주枝柱를 땅속으로 지중화한 특별공법으로 외부에 표가 나지 않게 식재하였다 한다.
지금 가을에 한창 피는 들국화, 구절초, 마가렛, 코스모스를 비롯한 감국, 대국, 허브꽃, 열대, 야자, 파인애플, 하와이 무궁화, 구겐베리아, 바나나까지 열대온실을 잘 꾸려 놓았고, 자외선 장치가 되어 있는 온실 가득히 어린 묘목들이 잘 자라고 있었다. 분재와 돌 사이 야생국화를 잘 키워 놓았고 8자 모양의 팔마비를 상징하는 큰 틀 안에 1억 송이 꽃들을 잘 키워 놓았다.
나는 순천공원 언덕 갈대밭 미로의 길에서 잠시 가던 길을 잃고 미아가 되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순천박람회는 6개월 여정 동안에 사백만이 찾았고 학생들도 백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꿈의 다리에는 16개국 14만 명 어린이 그림이 전시되어 있어, 청소년의 소통 장소로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또 내 나무 심기를 통해 한 주에 삼천 원을 주면 박람회장에 자기 이름표가 붙여진 나무를 심어주고, 위치 파악 인터넷에 알려주면 다음에 찾아볼 수 있도록 연락해 준단다.
박람회 조직위원회는 헌신한 이들의 노고를 기념하고, 감사를 전하기 위해 자원봉사자(은목서), 정원해설사(금목서), 순천알리미회(후박나무), 보건환경 참여자(가시나무), 홍보대사(느티나무), 재경후원회(팽나무)를 상징하는 6그루를 식수하였다 한다.
오후에는 순천만 약 6백만 평의 넓은 갯벌 체험에 나섰다. 바람에 사각거리는 갈대밭에 농게와 짱뚱어의 몸짓, 천연기념물이자 멸종 위기종인 흑두루미를 비롯해 수많은 새들이 날갯짓을 하며 먹이를 주워 먹는다.
하늘이 내린 정원이라 불리는 순천만에 들어서면 아! 여기가 순천만이구나 하고 느끼게 하는 바람에 사각거리는 갈대는 수많은 이야기를 건네온다.
이 갈대밭은 계절마다 다른 빛깔로 사람들을 만난다. 봄에는 초록의 새싹들이 여름에는 파란 갈대잎들이, 가을에는 황금색 갈대잎에 하얀 갈대꽃이, 겨울에는 눈 내리는 들판이 사계절마다 새로운 풍경을 자아내고 뛰어난 정화 능력과 산소를 만들어내는 자연이 숨쉬는 생명의 공간들이다.
이맘때쯤에는 누렇게 물들인 황금벌판에 게와 짱뚱어들이 사람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갈대를 뜯어 먹기도 하고 연신 집게로 젓가락질을 하는 게를 보면서 너무 귀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어마어마한 이 들판엔 온갖 철새들이 추우면 추울수록 더 많이 몰려온다. 사방의 공간이 탁 트인 갯벌은 잠자는 장소로 부족함이 없고 제방 넘어 들판에는 먹잇감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꽃게의 종류인 칠게, 농게, 방게, 도둑게를 비롯한 새우, 꼬막, 우럭 등 온갖 생명체들의 삶터이자 놀이터인 순천만. 또 다른 명물 짱뚱어의 몸짓도 예사롭지 않다. 낮은 곳에 깃드는 귀생물 짱뚱어는 남해안 서부와 서해안 남부지역의 한정된 곳에서 서식한다.
마침 순천만과 흑두루미에 얽힌 전설 같은 숨은 이야기를 들었다. 20여 년 전 한 초등생이 타다 남은 갈대밭에 다리를 다쳐 무리에서 낙오된 흑두루미를 가져와 아버지와 함께 백방으로 치료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이 학생은 다니던 초등학교에 가져와 선생님과 상의 끝에 두리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학교 새장에서 키우기 시작했다.
10년의 세월이 흘러 지난 어느 날 동물병원장이 흑두루미가 학교 새장에 갖힌 것을 보고 시베리아 귀향 프로젝트를 펼치자고 했고, 순천환경단체가 발벗고 나섰다. 1년 후에 두리는 시베리아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이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이전에는 구경조차 쉽지 않던 흑두루미가 2003년에는 백여 마리, 10년 후에는 6백여 마리가 찾아왔다.
이에 주민은 합세해서 철새 안전을 위해 습지 안에 있는 전신주 삼백여 개를 뽑았고, 비행기 고도를 제한했다.
이런 노력 때문에 고니, 백로, 외가리, 노랑부리 저어새를 비롯한 도요새, 검은멀 갈매기와 흑두루미 등 찾아오는 개체 수가 늘어만 가고 있다.
세계 5대 습지이자 갯벌로는 국내 최초로 람사르 협약에 가입한 순천만은 22.6km 갯벌 5.4km 갈대군락지 75km의 해수역 220여 철새 120여 종 식물을 보유하고 있는 생태의 보고다.
세계 제일 여행 잡지인 프랑스 마슐랭 가이드로부터 별 세 개를 받아 대한민국 대표 관광지로 인정받았으며 우리나라 최초 갯벌국가 명승지로 지정된 곳이다.(아마존 강, 메콩 강, 나일 강, 유프라테스 강, 메소포타미아 강과 더불어 세계 5대 습지로 등재)
특히 용이 승천하다가 순천만이 너무 아름다워서 내려와 머문 곳이라 전해지는 용산은 용이 누워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여의주로 불리는 작은 언덕도 있다. 2.6km 거리 보조 전망대를 지나 용산 전망대에 오르면 사진으로 무수히 봤던 순천만을 상징하는 S자 수로가 눈길을 사로 잡는다.
굽이 도는 물줄기 사이사이에 둥근원을 그리며 자리 잡은 갈대 군락, 빨간색 칠면조 군락 그 위에 유유히 나는 철새들은 도심에서 느끼는 모든 힘겨움과 근심을 일순간에 사라지게 한다. 순천만 갯벌에 붉은 융단을 깔아놓은 듯한 빛깔의 고운 칠면초 군락은 이즈음에만 볼 수 있는 멋진 풍경이다.
일곱 번 옷을 갈아입는 칠면초는 염도에 따라 색깔이 달라지기 때문에 한 가지 색으로 그 아름다움을 단정짓지 못한다. 칠면초가 몸이 붉어질 때는 가을로 지금 순천만에 가면 만날 수 있다.
칠면초의 붉은 융단, 황금빛 갈대, 높다란 하늘 들판, 용산대 전망대 바로 앞에 고흥 팔영산(다 보이지 않고) 6봉이 눈앞에 보인다. 바다를 지키는 수호신처럼 버티고 그 자리에 서 있다.
남해안에 붉은 빛으로 화려하게 서서히 저물어 가는 낙조와 그 하늘위에 수만 마리 철새들이 군무를 이루면서 춤추는 장관을 상상해 보라.
삶에 지치고 고통 중에 있는 모든 이들이여, 이곳 순천만에 와 석양의 낙조, 그리고 군무를 바라보라.
정녕 고단한 삶에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되어 줄 것이다.
신수길 ------------------------------------------------
동강원한약방, 한국문예연구문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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