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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수필과비평 2014년 01월호, 지상에서 길찾기] 남새밭의 이야기꾼 - 박정희

신아미디어 2014. 9. 24. 14:30

"이웃 방울토마토가 붉어지고 있네. 날마다 보기좋은 먹을 거리가 되기 위한 남모르는 노력을 생색내고 싶지 않아. 눈길을 끄는 꽃을 피우거나 열매를 매달진 못해도 우리 구역의 식구들은 그 여자의 이력에 한 줄을 보탠다는 것만으로 흡족해. 한 인간의 내면을 맑게 하는 것도 우리에겐 덤으로 얻는 수확이 되기에."

 

 

 

 

 

 

 

 남새밭의 이야기꾼        박정희


   쉿! 그 여자가 오고 있다. 어느 날부터인지 몰라도 마른 날 궂은 날을 가리지 않고 찾아와서 은근히 우리를 기다리게 만들기도 하지. 요즘 들어서 언덕배기를 오르면서부터 실성한 사람처럼 중얼거릴 때가 많아.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눈동자에 힘을 주며 한참 멈춰서 있을 때도 있고 가끔은 쪼그리고 앉아 뭔가를 찾는 눈치이기도 하더군. 명탐정 코난처럼 보이고 싶었는지 모르지만 푼수가 모자라는 느릿한 걸음걸이로 보아 동네 아낙임에 틀림없었다네.
   푸른 촉이 세상 구경을 하던 날. 그러니까 우리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그날부터 무슨 주문 같은 소리가 시작되었을 거야. 늙지도 젊지도 않은 여자가 입을 배시시 벌리고 우리의 이모저모를 살피는 품이 제 아이를 품에 안은 엄마의 바로 그 표정이고 그 눈빛이었어. 어떤 날에는 한 옥타브 올라간 목소리로 앵앵거리는 것이 생전 푸새를 처음 본 듯, 화성에서 온 여자인 듯싶었지. 그전까지는 팔짱을 끼고 슬리퍼를 질질 끌며 세상고민 혼자 품은 듯 맥없이 어슬렁거렸을 뿐 우리가 사는 세상엔 전혀 관심이 없었으니까. 우리가 농부의 발자국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귀동냥한 모양이었어. 날마다 우리 영역을 찾는 일을 거르는 법이 없는 걸 보면.
   그 여자는 유년시절을 콘크리트 장 속에서 보냈을 거야. 쌀쌀맞은 늦가을 날씨같이 사람냄새가 모자랐거든. 품새가 솔아 잘 삐쭉거리는 것도, 손에 묻은 흙을 탈탈 터는 짓이나 우리를 쳐다볼 때도 책에서 본 기억을 찾아내는 것에 흡족한 표정을 보면 절대로 너른 데서 자란 성정은 아니었어. 흙냄새를 모르고 자라서 그렇겠지만 이왕에 인연을 맺고 날마다 찾아오니 따뜻하고 보드라운 우리의 기운을 먹여보자고 이야기하곤 했었지. 사실은 지금껏 그 누구도 우리에게 그렇게 살가운 눈빛을 보내지 않았기도 하고…….
   우리가 사는 공간이라야 병풍 서너 폭보다 작지만 우리 씨족의 열성도 그 여자의 열정에 어금버금했지. 애초에 좁쌀만 하던 몸집이었지만 불리다 보니 손바닥만 한 잎으로 밭을 채웠고 새 빛으로 눈부시도록 반질거렸지. 그뿐이 아니야. 싱싱한 잎을 키워 그 여자의 입꼬리를 끌어올리려고 날마다 안간힘을 썼다는 고백도 해야겠네.
   어제는 그 여자가 꽤 유식한 척하더라. 무언가를 알려줄 참이었던지 밭둑에 쪼그리고 앉아 우리를 향해 이야기를 늘어놓데. 가만히 들어보니 어디서 듣던 소리였어. 맨몸으로 눕고 맨몸으로 일어서라는 류시화의 <들풀>이라는 시구를 흥얼거리고 있더군. “함께 있되 홀로 존재하라. 언제나 빈 마음으로 남으라. 슬픔은 슬픔대로 오게 하고 기쁨은 기쁨대로 가게 하라. 그리고 침묵하라.”라는 구절에서는 목소리가 더 단단하게 들렸어. 아마도 그 싯귀처럼 마음가득 바람이 부는 세상을 만났나 싶었지. 기운이 딸리는 날에 오히려 의연한 우리들의 모습에서 용기를 얻나보더라고.
   세상에는 변하지 않는 것이 없어. 우리가 새 잎을 키워갈 때는 자지러지듯이 감탄을 해 댔지만 슬슬 시간이 쌓이는 이파리에서 시선이 옮겨가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일 거야. 우린들 따뜻한 기운을 놓고 싶겠냐마는 이미 빗겨간 시선을 애달복달하지는 않지. 푸새는 사람들의 입에서 부드럽게 혀돌림이 되고 목넘김이 될 때 값어치가 있지 그 이상은 기대하지 않아. 보드라운 잎으로서의 소명을 마친 셈이니 잎이 뻣뻣해지는 이후의 시간은 덤으로 사는 거야. 관심을 기대하기보다 그쯤에선 꽃대를 올려 꽃을 피워 씨를 맺을 준비를 서두르지. 후세를 위해 물러날 때를 알아차린다는 것은 우리의 소중한 유전인자야.
   그 여자 이야기에 자지러져서 이웃 소개가 늦었군. 우리 구역에 사는 식구들은 몇 종 되지 않아. 동산 입구에 서 있는 매실나무는 언제나 봐도 점잖아. 햇빛에 의존해서 살기는 우리와 매일반이지만 남 먼저 꽃을 피워 추위에 지친 이들에게 생기를 주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사람들이 지칠 여름을 위해 부지런히 열매를 매다는 모습에 고개가 숙여지거든. 옛날 선비들이 매화를 사군자에 뽑은 이유를 이제야 알겠네. 밭 식구로는 그 여자의 총애를 받는 우리는 상추 종이고 옆에는 짙푸른 위세를 떨치는 고추모종 일가가 넓게 차지하고 있지. 그 울타리에는 서너 포기의 오이 일가도 함께 산다네. 어느 날 보니 방울토마토 몇 포기가 이사왔고 그 옆에는 봉숭아 모종이 홀홀단신으로 함께 살고 있어. 생김새는 좀 다르지만 한 밭에 사는 식구들이라 서로 격려하며 의지하곤 하지. 새 잎이 돋을 때는 친구들이 더 좋아서 “으싸 으싸” 하며 힘을 실어 주며 더 부드럽고 더 반들거리며 자신의 존재감으로 기쁨을 나누려는 깊은 뜻을 그 여자는 알기나 할까.
   언젠가 들은 이웃들의 이야기가 생각나네. 듣다 보니 그 여자에 대한 험담이었는데 우리 종에 대해 무지했던 언행을 서로 들추며 하소연하고 있었지. 생득적으로 어쩔 수 없는 것이라 푸념으로 들렸어. 언덕배기 전체에 잔디가 주로 심어져 있어서 그런지 토끼풀이 자리를 잡자 잡초 중의 잡초라고 못마땅해 했다는군. 더 번지기 전에 뽑아야 한다고 몇 번씩이나 그들 앞에서 으름장까지 놓았다지. 어느 날에는 워낙 잘 뻗어가는 줄을 잡고 힘껏 당겨 뜯다가 감당이 안 된다면서 제초제까지 운운했다고 하네. 도대체 어떤 잣대로 잡초를 구분하는지 억울해했었지.
   우리는 서로에게 잡초라고 부르지 않아. 자신이 모른다고 하찮은 것으로 깔보는 일은 절대로 없지. 그 여자는 아마도 각각의 이름을 불러주어 그 존재가치를 키워준 김춘수 시인의 <꽃>을 아직도 들어보지 못했나 보다. 이름을 불러줄 때 서로를 보듬고 함께 가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건만. 아무래도 움직이는 종들은 진화가 덜 된 모양이다. 우리 세계에는 우리끼리의 공존의 법칙이 있고 그 질서에 따라 어울려 살고 있는데 순전히 아전인수격의 말이나 행동을 서슴지 않아 안타까울 때가 더러 있다네. 우리도 저네들이 쓰는 말을 쓰지 않는다 뿐이지 나름 의사소통을 하거든. 그뿐이 아니지. 그네들의 느낌도 받아 고마워하거나 즐거워 할 줄 아는데도 말이야.
   이웃 방울토마토가 붉어지고 있네. 날마다 보기좋은 먹을 거리가 되기 위한 남모르는 노력을 생색내고 싶지 않아. 눈길을 끄는 꽃을 피우거나 열매를 매달진 못해도 우리 구역의 식구들은 그 여자의 이력에 한 줄을 보탠다는 것만으로 흡족해. 한 인간의 내면을 맑게 하는 것도 우리에겐 덤으로 얻는 수확이 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