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므이네는 에너지가 바닥난 나의 마음을 기름칠하고 보듬어서 싱싱하게 원상복귀 시켜준 여행지였다.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바다와 사막을 함께 볼 수 있어서 든든했던 여행지였고, 그곳에서 만난 사막은 황량하고 적막한 느낌이 아니어서 좋았다. 마음만 먹으면 금세라도 바닷가로 갈 수도 있고, 사람들이 많은 거리로 향할 수도 있는 곳이다. 어린왕자가 살고 있는 소행성이 손을 뻗으면 잡힐 듯한 곳, 그곳에서 지낸 시간은 되돌아와서 해가 거듭될수록 나에게 애틋한 추억으로 떠오른다."
베트남, 므이네의 모래언덕 / 글·사진 최 선 경
- 므이네에서는 모래언덕 너머에 바다가 배경처럼 펼쳐진다
“여행은 되돌아보았을 때에만 매력적이다.”라고 폴 서룩스는 말했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여행 중에 항상 즐겁고 낭만적이며 가슴 벅찬 시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힘들고 지치고 날씨까지 우중충해서, 좋은 곳에 벼르고 별러서 갔는데도 제대로 감상하고 오지 못한 경우도 많다. 여행할 때의 날씨나 기분에 따라 느낌은 상당히 달라진다. “우와~! 경치 좋다. 그런데 힘들다. 헥헥” 이랬던 여행지가 어디 한두 군데였겠는가.
그렇기에 오히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난 후에야 여행은 그 진가를 발휘한다. 여행은 역시 되돌아보았을 때 더 매력적이고, 시간이 흐르고 추억이 되었을 때 곰삭은 맛이 어우러져 풍미를 자아낸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여행 당시에는 별 것 아닌 여행지라 생각하고 가볍게 보아 넘겼지만, 나중에서야 ‘그곳이 정말 좋았는데......’하며 아쉬워지는 여행지가 있다. 베트남의 ‘므이네’가 그런 곳이었다.
그 당시 베트남 여행은 즉흥적으로 진행되었다. 일단 일을 저지르고 보았다. 여느 날처럼 컴퓨터 클릭을 하다가 문득 여행이 하고 싶어져서 베트남 호치민행 왕복 비행기 티켓을 과감하게 끊어버린 것이다. ‘일단 떠나면 여행은 알아서 진행되리라. 그동안 그래왔던 것처럼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비록 여행 전날까지 일에 치여 몸이 녹아떨어질 때까지 지치도록 일을 해댔기에 여행 정보를 찾아보거나 찬찬히 계획을 세울 틈이 없었고, 비행기 티켓과 여권, 짐 가방 하나가 여행 준비의 전부였지만, 일단 떠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분전환이 되었다. 그렇게 떠났기에 므이네에 갈 수 있었고, 예상치 못한 자연경관을 눈에 담아올 수 있었다. 그곳에 정말 내가 존재했던 것일까. 아득해진다.
바다와 사막을 함께 본 적이 있는가? 바다도 보고 싶고 사막도 보고 싶을 때 어떻게 해야할까? 그때까지 나의 상식으로는 한꺼번에 바다와 사막, 두 가지를 생각하는 것은 욕심인줄로만 알았다. 주로 인도 배낭여행을 즐긴 내가 느끼는 바다와 사막의 거리감은 당연한 것이었다. 사막에 가고 싶으면 라자스탄 지방까지 한없이 야간열차를 타고 내리 달려야 했고, 바다를 보고 싶으면 인도 남부까지 끝없는 시간 여행을 해야 볼 수 있었다. 바다에 갔을 때 사막을 떠올린다거나, 사막에 가서 바다를 찾는 것은 며칠 동안의 시간을 고스란히 투자해야 얻을 수 있는 결과물이었다. 쉬운 일이 아니라고 당연스레 생각했다. 므이네에 가기 전까지는.
므이네에서는 바다와 사막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다. 처음에는 므이네에서 모래언덕(Sand dune)을 볼 수 있다고 하는 말을 듣고 의아했다. 분명 바다가 보이는 리조트에 숙박하기로 했는데, 어떻게 그 근처에 모래 언덕이 있을 수 있지? 세상에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즐비하고, 직접 보는 기회를 얻지 못하면 아무리 그렇다고 이야기를 들어도 믿지 못하게 된다. 예상치 못한 때에 우연히 그런 광경 속으로 들어가보는 기회를 얻게 되고, 그제야 그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가질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대부분 쉽게 얻을 수 없다고 했던가. 오픈투어버스를 타고 므이네로 향하는 시간은 고행이었다. 오픈투어버스는 우리나라에서 시내버스였던 것을 수입하여 활용하고 있었는데, 승차 인원까지 많아서 비좁은 좌석에 몸을 구겨넣고 므이네로 향했다. 쪽잠을 자며 몸과 마음이 지쳐갈 즈음, 므이네에 도착했다. 호치민에서 므이네까지는 약 5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이지만, 이곳저곳 들르고 정차하는 시간까지 합하면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달렸다. 전날의 피로까지 겹쳐 지칠만큼 지친 상태였다. 그래도 즐거운 상상 하나. 우리나라에서 시내버스로 쓰였던 그 버스는 봉천동행 버스였다. 다른 외국인들은 아무도 알 수 없는 글을 이해한다는 것은 얼마나 흥미로운 일인가. 예상치 못했던 곳에 나만 알아볼 수 있는 언어로 쓰인 목적지가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비록 봉천동으로 향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므이네에서는 모래언덕 너머에 바다가 배경처럼 펼쳐진다. 해가 질 무렵, 터덜터덜 모래언덕을 올라갔을 때, 그곳에는 이미 많은 관광객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한 쪽에는 모래썰매를 빌려주는 아이들이 호객행위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고, 다른 한 쪽에서는 무작정 모래언덕 아래로 뛰어내리는 청년들이 보였다. 썰매 없이도 번갈아가면서 모래언덕에서 굴러내려가는데, 본인들도 즐거워하고, 지켜보는 이들도 웃음 가득해진다. 나는 관람객이 되어 그들의 일탈행위를 지켜본다. 바라만보기 지루해질 즈음, 나도 살짝 흉내를 내본다. 시간은 흐르고, 하늘을 바라보니 지지 않을 듯한 태양은 어느 순간 꼴깍 넘어가버린다.
되짚어 생각해보면 그때 나는 휴식같은 여행을 한 것이었다. 므이네는 에너지가 바닥난 나의 마음을 기름칠하고 보듬어서 싱싱하게 원상복귀 시켜준 여행지였다.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바다와 사막을 함께 볼 수 있어서 든든했던 여행지였고, 그곳에서 만난 사막은 황량하고 적막한 느낌이 아니어서 좋았다. 마음만 먹으면 금세라도 바닷가로 갈 수도 있고, 사람들이 많은 거리로 향할 수도 있는 곳이다. 어린왕자가 살고 있는 소행성이 손을 뻗으면 잡힐 듯한 곳, 그곳에서 지낸 시간은 되돌아와서 해가 거듭될수록 나에게 애틋한 추억으로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