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은 들어갈수록 규모가 거대하고 웅장하다. 주홍빛 조명으로 수억 년에 걸친 세월의 종유석이 노을에 잠긴 듯하다. 석회를 머금은 물은 천정으로부터 폭포처럼 종유석을 흘려내려 보내고 바닥에서는 석순을 쌓아올렸다. 물결기둥의 석주, 천장에 매달린 선인장 형태, 하늘의 지붕, 반달곰 한 마리, 촛대바위와 석가여래상, 귀신놀이형상 등. 보기에 따라 붙여진 이름도 다양하다. 거북이 형상 앞에서는 지혜와 장수의 복을 구하고자 거북이 등을 만지려고 줄선 사람들이 많다. 제1동굴, 제2동굴, 제3동굴을 지나 출구로 나가니 영화 ‘인도차이나’의 촬영장임을 알리는 팻말이 있다. 등 뒤에서 “이것만으로도 자손대대로 먹고 살겠다.”라며 부러워하는 소리가 들린다."
하롱베이의 선물 / 이영애
11월 27일, 현지시각 12시 30분, 하노이공항에 착륙했다. 입고 간 파카를 바꾸어 입지 않아도 될 정도로 살랑한 가을 날씨이다. 일행은 모두 여덟 명, ‘모시올’ 문학 동인이다.
하노이에서 버스로 네 시간 이동하여 하롱베이에 도착했을 때는 늦은 저녁이었다. 하롱베이 [Ha Long Bay]는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 동쪽에 위치한, 아름다운 해상국립공원이다. 이 만灣을 차지하고 있는 3,000개 이상의 섬들이 보여주는 신비함으로 1994년에 유네스코(UNESCO)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선포된 곳이다.
이튿날, 아침부터 안개비가 포말진다. 가이드는 선착장으로 이동하면서 베트남의 전통모자 ‘농’을 한 개씩 나누어준다. 비도 피하고 햇살도 가리고 베트남을 체험하라는 것이다. 선물로 받은 모자에 제각기 이름부터 적었다.
‘하롱베이의 안개비 000’
‘반갑다 하롱베이 000’
선착장에는 유람선이 줄지어 있다. 우리가 탑승한 전용유람선은 여섯 개의 식탁과 긴 의자를 갖춘 레스토랑 분위기이다. 점심은 배에서 요리한 해산물과 매운탕으로 푸짐하게 먹는다하여 기대된다. 우리는 깜짝 선상이벤트를 기획해둔 것이 있다.
유람선은 서서히 방향을 돌리며 바다로 나아간다. 파도가 없는 초록물결은 비단을 펼쳐놓은 것 같다. 기암괴석의 섬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띄엄띄엄 서 있던 것들이 어느 순간 한꺼번에 무더기로 모양을 드러낸다.
예기치 않게 맞닥친 자연 앞에 섣불리 말을 꺼낼 수 없다. 카메라 렌즈를 맞추고 비디오 촬영을 하고 스마트폰으로 인증 샷을 남긴다. 눈앞에서 사라지기 전에 어디든 저장하고 볼 일이다. 선상은 사진을 찍는 자, 찍히는 자, 바라보는 자로 분주하다.
하롱下龍이라는 지명은 하늘에서 용이 내려와 입에서 구슬과 보석을 내뿜어 적을 물리쳤다는 전설에서 유래됐는데, 구슬과 보석들이 바다로 떨어지면서 지금의 기암이 되었다고 한다. 섬들과 바다가 만들어내는 비경은 그 전설이 과장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석회암의 구릉 대지가 오랜 세월에 걸쳐 바닷물과 비바람에 침식되어 생긴 섬과 기암이 3000개나 바다 위로 솟아 있다고 하니 놀라울 뿐이다.
환상적인 동굴이 있는 섬들이 보는 각도에 따라 절경을 이룬다. 떨어져있는 키스바위는 배가 돌아가면 입을 맞추는 구간이 있다고 하고,
석회암 종유동굴이 있는 섬에 내렸다. 동티엔쿵(DONG THIEN CUNG)이라고 쓴 표지판이 입구에 있다. 해발 50미터의 천연동굴이다. 비탈진 나무층계를 걸어 동굴로 들어간다.
동굴은 들어갈수록 규모가 거대하고 웅장하다. 주홍빛 조명으로 수억 년에 걸친 세월의 종유석이 노을에 잠긴 듯하다. 석회를 머금은 물은 천정으로부터 폭포처럼 종유석을 흘려내려 보내고 바닥에서는 석순을 쌓아올렸다. 물결기둥의 석주, 천장에 매달린 선인장 형태, 하늘의 지붕, 반달곰 한 마리, 촛대바위와 석가여래상, 귀신놀이형상 등. 보기에 따라 붙여진 이름도 다양하다. 거북이 형상 앞에서는 지혜와 장수의 복을 구하고자 거북이 등을 만지려고 줄선 사람들이 많다. 제1동굴, 제2동굴, 제3동굴을 지나 출구로 나가니 영화 ‘인도차이나’의 촬영장임을 알리는 팻말이 있다. 등 뒤에서 “이것만으로도 자손대대로 먹고 살겠다.”라며 부러워하는 소리가 들린다.
선착장 길목에는 작은 배들이 수상시장을 이룬다. 물에 잠긴 열대여섯 개의 소쿠리에는 물고기와 해산물이 진열되어 있다. 손님이 내려다보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상인은 망태기에 감아 작대기로 건네준다. 장터는 흥정하는 소리로 활기차다.
시장기를 느끼며 유람선으로 돌아오니 식탁에는 맛있는 음식이 가득하다. 다금바리회, 활어회, 도미구이, 새우튀김, 삶은 문어, 야채샐러드, 조개국, 매운탕 등…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우선 먹고 볼 일이다.
식사 후 차를 마시면서 우리가 준비한 ‘선상출판기념회’를 개최했다. 최근에 시집을 출간한 문학 동인이 있어 깜짝 축하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예쁜 포장지를 두른 바나나송이가 꽃다발을 대신하고, 시낭송과 축가가 이어졌다. 유람선을 통째 빌려 출판기념회를 할 수 있다니 이런 호사가 어디 있겠는가 하며 폭소를 터뜨렸다.
점심식사 후 작은 배로 갈아타고 항루원으로 간다. 항루원은 하롱베이의 섬으로 둘러싸여 폭 200m 정도의 만灣을 이루고 있다. 키가 닿을 듯 낮은 동굴천장을 통과하면 절벽으로 막힌 바다호수가 나온다. 하롱베이의 오페라하우스라고 불릴 만큼 신비롭고 아늑하다. 섬 벼랑에는 야생원숭이들이 서식한다. 새끼를 안고 암벽타기를 하는 녀석, 이 바위 저 바위를 훌쩍 뛰며 바나나를 받는 녀석… 원숭이 가족들이 있어 섬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이곳은 대부분 척박한 무인도이지만, 많은 종류의 포유동물과 파충류, 조류가 서식하고 다양한 식물상이 존재한다고 한다.
티톱(TI TOP)섬으로 향한다. 해수욕을 즐길 수 있는 하롱베이의 유일한 모래해변으로 호치민이 소련의 우주비행사인 티톱의 이름을 딴 섬이다. 급경사의 비탈길로 400 계단올 지그재그로 올라가면 하롱베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가 나온다.
이번에는 수상마을로 향한다. 넓은 평원을 달리듯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바람에 마음까지 시원하다. 하롱베이 만안에는 20∼30가구가 모여 사는 수상마을이 다섯 개 있다고 한다. 뗏목 위에서 그물질하는 노인도 보이고 베트남깃발을 단 관공서도 있고 컨테이너로 크게 지은 학교도 보인다. 환경에 따라 살아가는 방법도 참으로 다양하다.
침식하고 퇴적하며 수억 년을 살아온 위대한 자연 앞에서 백 년을 못 살고 가는 인간이 감히 무엇을 말할 수 있겠는가. 찰나의 기억들과 벅찬 감동을 안고 돌아선다.
짐을 챙기며 가이드가 준 모자 ‘농’을 눌러 쓴다.
잊지 못할 하롱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