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문화의 발전을 위한 모색
신 종 호
공급과 수요는 자본주의라는 건물의 핵심 기둥이다. 물과 고기의 관계처럼 공생공사의 필연적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공급과 수요의 법칙이며, 그것은 곧 이윤창출이라는 지상 최대의 명제로 연결된다. 이윤이 창출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버림을 받는 게 자본주의다. 내가 알고 있는 부자 할아버지가 이런 말씀을 하셨다. “돈 안 되면 다 똥이다.”라고. 엄청난 발언이다. 자본주의의 생리를 이처럼 명료하게 표현한 문장이 어디 있겠는가? 그 할아버지는 내가 시를 쓴다는 말에 혀를 끌끌 차며 애잔한 눈빛으로 날 쳐다보셨다. 그 표정 뒤에는 ‘그게 돈이 되냐?’라는 생각이 꿈틀거리고 있는 것 같아 심기가 불편했다. 이윤이 모든 가치의 척도가 될 때 영혼은 빈곤해 진다. 모든 것을 돈으로 귀결시키는 천민자본주의는 정신과 문화의 공동묘지다.
출판문화는 그 나라의 정신적 성숙도를 보여주는 지표다. 그렇지만 출판시장도 이윤과 시장의 원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팔리지 않으면 소용이 없고, 결국에는 팔리지 않는 책을 출간한 출판사까지 망하게 된다. 그래서 모두가 이를 악물고 팔릴만한 책만 만든다. 그렇게 하다 보면 당연히 콘텐츠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한 현상에 대해 평론가들은 ‘인문학의 위기’를 운운하며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 출판 관계자들은 우리가 땅 파서 장사하는 것도 아닌데 팔리지 않는 인문교양서 같은 것을 만들 수는 없지 않느냐며 나름의 반박을 한다. 두 입장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는 한다. 그렇지만 이런 추세로 간다면 우리의 출판 시장은 눈앞의 필요만을 충족시켜 주는 얄팍한 실용서나 처세서 등만이 차고 넘칠 것이다. 그러한 우려는 이미 현실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인문과학서의 쇠퇴와 처세서의 범람은 한 시대의 문화적 질을 협소하게 만들 것이다. 실용서나 자기계발서 중심으로 베스트셀러가 쏠리는 현상은 한 나라의 정신과 문화가 불균형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인문서와 실용서의 적절한 조화와 균형이 출판시장의 흐름을 조종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우선은 독서 대중을 이윤의 원천으로, 즉 수요의 측면으로만 생각하는 즉자적인 태도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 대중의 요구와 현실적 이익만을 만족시켜주려는 추수주의적인 상업적 출판이 아닌 대중의 생각을 한 단계 더 성숙시키기 위한 미래지향적이고 문화적인 출판 마인드가 절실한 시점이다. 출판의 활로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다는 점은 모두가 동감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현실의 논리로 생각을 해보면 그것은 이윤이 확보되지 않는 모험적인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쉽게 나서지 못하는 것이 현재의 실정이다. 좋은 책을 출판했지만 팔리지 않는다면 누가 그런 일을 나서서 하겠냐는 출판관계자들의 말속에는 좋은 책을 출판하면 그만한 대가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담겨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그러한 관계자들의 요구를 만족시켜 줄만한 지원정책이 뚜렷하지 않다는 것이 출판문화 진흥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현재 시행하고 있는 우수도서 지원 정책은 우수도서의 기준도 뚜렷하지 않고, 선정의 과정도 선명하지 않고, 지원의 규모도 작아 출판관계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지 않다. 지원 정책의 환골탈태가 시급하다.
온라인 서점들의 무분별한 할인정책도 출판문화를 왜곡시키는 주요 원인이다. 가치와 가격은 별개의 것이다. 가격은 생산비용과
이윤을 포함해서 책정되는 것이다. 가치는 그 책이 지니고 있는 정신적인, 즉 보이지 않는 내용에 대한 척도이다. 가격이 비싸다고
가치가 높은 것도 아니요, 가격이 싸다고 해서 가치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점이 문화적 질을 담보하는 출판 시장의 특이
점인데, 이를 무시하고 온라인 서점들이 무조건적으로 할인을 한다면 좋은 책들이 대우를 받지 못하고 가격할인의 논리 속에서
사멸하게 된다. 소비자들은 책을 싸게 살 수 있다는 점에서 대체로 할인에 대해 우호적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는 그리 이익이
되지 않는다. 할인을 전제로 해서 책값의 명목적인 가격이 올라가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비용 상승의 부담을 소비자가 지게 되는
것이다. 온라인 서점들은 소비자에게 더 많은 할인 혜택을 주기 위해 출판사에 도서 공급률을 최대한 낮춰달라고 강압적으로(?)
요구한다. 온라인 시장의 판매 규모가 커지자 출판사들도 그들의 요구를 무시할 수는 없게 되었다. 그래서 출판사들은 책값을 올리는 방법으로 온라인 서점들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 준다. 1만원이면 충분할 책을 1만2천원의 가격을 매겨 공급을 하면 출판사는 별 손해가 없다. 가격 상승으로 인한 피해는 모조리 독자들이 입게 된다. 예전보다 책값이 많이 비싸진 이유는 출판사와 온라인 서점의 할인정책 때문이다.
소비자의 진정한 권리는 책을 무조건 싸게 사는 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좋은 책이 출판 될 수 있도록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고 책을 사는 것도 소비자의 소중한 권리다. 독서문화의 수준은 소비자의 안목에 의해서 결정된다. 책을 사는 사람들이 책에 대한 심판자가 되어야 한다. 싸고 비싸고의 문제를 떠나서 좋지 않은 책은 팔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면 우리의 출판문화는 한층 더 성숙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구조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도서정가제가 지켜져야 한다. 과도한 할인 경쟁으로 인해 학술, 문예 분야 서적 등 고급서적 출간이 위축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정부가 서점들이 책을 정가에만 팔도록 의무화한 제도가 도서정가제인데 실제로는 그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고 있지 않아 문제가 되고 있다. 출간된 지 1년 6개월 이내의 도서는 할인을 최대 10%까지 할 수 있다고 규정해 놓았지만 마일리지와 쿠폰 등을 통해 최대 19%까지 할인을 할 수 있어 제도 실효성이 떨어지고 있음은 물론 1년 6개월이 지난 도서는 50%에서 심지어는 70%까지 할인을 할 수 있어 출판문화를 보호하겠다는 제도 자체의 의미를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도서정가제의 준수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강력하게 단속을 해야 한다. 아울러 조항의 개선도 필수적이다. 그런 정책과 함께 우수도서에 대한 장려와 지원을 적극적으로 해나간다면 우리의 출판문화는 보다 발전적인 모습을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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