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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작가 2014년 1-2월호, 문학기행] '미당시문학관'을 가다 - 김가배(시인)

신아미디어 2014. 7. 16. 18:29

"우리는 그의 시를 사랑하고 그의 시를 사모한다. 그와 같은 시인을 가졌다는 것에 한없는 자부심을 갖는다. 내가 그와 동족임이 기쁘고 그와 동시대를  숨 쉬었음에 감사한다."

 

 

 

 

 

 


‘미당시문학관’을 가다       /  김가배 (시인)

 

   전북 고창군 부안읍 선운리 231번지 ‘미당시문학관’이 선운리의 들판을 바라보며 서 있다. 미당의 진한 시향詩香이 사방에 퍼지는 듯 노란 국화가 지천이다. 폐교가 된 선운분교 건물을 리모델링한 문학관은 그의 시적 성과와는 달리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며 2,862평의 대지에 1997년 완공되었다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자화상’ 일부-

 

   그의 시 ‘자화상’이 절로 읊조려지는 그의 고향 선운리. 아직 덜된 사람이란 뜻과 영원히 소년이고자 하는 뜻이 같이 담겨있다는 그의 시를 읽으며 그가 대한민국의 문학사에 눈부신 문명을 떨친 것은 출생지인 이곳 질마재와도 무관치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여기서 태어났고, 이곳으로 돌아왔다.
   ‘미당시문학관’은 국비 2억 5천만 원, 도비 2억 5천만 원, 군비 3억 원 및 추진위원 390명과 예술인 문하생과 미당을 좋아하는 2,000여 명 등이 성금 2억 5천만 원을 모아 총 10억 5천만 원으로 건립됐다. 그 후, 그의 친일을 문제 삼아 그를 폄하하는 단체들에 의해 많은 수모를 겪기도 했다. 그러나 미당의 족적이 없다면 과연 한국문학이 오늘의 수준에 이르렀을까. 2001년 11월 3일 미당시문학관 준공식 때, 김대중 대통령은 특사 편에 문화훈장 광화장 훈장증을 보내왔다.
   미당 서정주는 1915년 5월, 전북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생가에서 태어났고, 2000년 12월 24일 함박눈이 내리는 밤에 86세로 타계했다.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서 ‘벽’이라는 시로 당선되고, 김동리, 오장환 등과 동인지 ‘시인부락’을 펴내면서 본격적인 시작詩作 활동에 나섰다. 미당은 생전에 15권의 시집, 총 1,000여 편의 주옥같은 시를 남겼다. 그는 우리 문인들의 수미산이다. 너무 높아 넘지 못하고, 또 넘어야 하는 산이다. 그런 그의 문학적 성과에 비해 그의 문학관이 초라한 느낌이 드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양평의 황순원 문학관이나 폐교를 활용한 김제의 조정래 문학관, 군산의 채만식 문학관, 전주의 최명희 문학관, 정읍의 동학기념관 등의 규모와 관리 상태 등을 비교할 때 더 많은 투자와 감독관청의 지속적 관심이 필요함을 진심으로 재삼 요망한다.
   담쟁이가 타고 올라간 전망대 옆문을 열자 한복이 썩 잘 어울리는 미당이 서재를 뒤로하고 웃고 있는 사진이 생전의 그를 보는 듯 정답다. 그가 부인인 방옥숙 여사와 나란히 앉아 웃고 있는 사진도, 방 여사를 위해 쓴 시편들도 미당의 사진과 함께 시화로 진열되어 있다. 제1 전시실, 제2 전시실로 이어진 전시실에는 미당의 육필원고와 작품집 및 유품들이 전시되고 생전의 그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많은 사진과 애장품들도 전시되어 있다 시집은 물론 그와 관련된 저서, 시화, 도자기, 운보가 그린 초상화, 여행수첩, 사진 등 기록물들도 잘 정리되어 있었다. 그의 필체로 서화, 교분이 깊던 동료들의 시·서·화 등도 있어 미당의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도 있었다.
   초기에 너무 초라하던 전시실에 비해 새로 리모델링된 문학관은 그의 문학적 숨결을 따라가기 좋게 연계되어 있고, 문학적 행보가 걸출했던 그의 생애에 오점인 그의 친일 행각의 작품들도 전시되고 있다.
   그의 생가 옆에는 조그마한 오두막집이 하나 있다. 그의 제씨 서정태 시인이 기거하는 오두막이다. 그는 형인 미당을 위해 언론계를 은퇴한 후. 거의 30년 가까운 세월을 이 생가를 지키고 있다. 90세의 노구를 이끌고 이곳을 지키고 있는 그의 열정은 우리를 숙연하게 한다. 그를 뵐 때마다 미당의 친일시쯤은 덮어두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연민이 앞선다.   
   미당 서정주, 그는 우리 문학사의 신화다. 한국어를 풍요롭게 하고 한국인의 정서를 가장 아름답게 승화, 격상시킨 큰 시인 미당, 그가 이룬 시 세계는 너무나 높고 넓고 크고 아름답고 확고하다. 우리 고유의 신화적 정신세계와 불교적 달관, 민화와 설화적 편력 등을 다양한 상상력으로 형상화시킨 독특한 문학 세계를 능란하게 보여주었던 미당! 그는 우리를 내려다보시며 '괜찬타 괜찬타 괜찬타'고 말씀하신다. 
   그가 남긴  1,000여 편의 작품 중에는 친일 시  7편, 수필  2편, 소설  1편이 있다. 문학관의 개관일을 10월 3일로 정한 이유도 그가 학생일 때 투옥된 날을 기념하여 결정한 것이라고 한다. 미당은 일제 강점기 때 두 번이나 구국운동 사건에 연루되어 감옥을 다녀왔다. 그의 친일에 대해 비수를 들이대는 그들에게 나는 묻고 싶다. 당신들이 그 시절 그 시점에 있었다면 과연 민족 앞에 얼마나 떳떳할 수 있었겠는가를….   
   우리는 그의 시를 사랑하고 그의 시를 사모한다. 그와 같은 시인을 가졌다는 것에 한없는 자부심을 갖는다. 내가 그와 동족임이 기쁘고 그와 동시대를  숨 쉬었음에 감사한다.

 

 

 

김가배  ------------------------------------------------
   시인. 수주(변영로)문학제 운영위원, 시집  《가을 정거장》  외  6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