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그 종이를 태우면서 소원을 빌 것이다. 나도 소원장 한 장을 썼다. 두 손 모아 비는 옛날 어머니 같은 마음으로, 곱게 접어서 새끼줄에 단단히 묶었다. 달집을 태우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왔다. 농악놀이의 꽹과리 소리가 내 마음을 한껏 달뜨게 했다. 달집에 불을 붙이자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용물 앞에서 기도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내 유년의 모습도 아련히 보였다."
용湧물 - 노춘희
섣달이면 어머니들은 집안 구석구석 일 년 동안 묵은 먼지를 털어냈다. 이불 빨래를 하며 설빔을 짓고, 차례음식 준비로 몸과 마음이 부산했다. 어머니께서 정성껏 준비한 음식은 마음까지 푸지게 했다. 우리는 설빔을 차려 입고, 근신하는 마음으로 설날을 맞았다.
옛 어른들은 정월 초하루부터 섣달그믐까지 날짜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해서 하루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 정월 대보름이 지나면 농사일을 하기 위해 쟁기나 농기구들을 손보기 시작했다. 보름엔 오곡밥과 묵은 나물을 먹는 풍습이 있었는데 묵은 나물은 철따라 제철에 나오는 나물을 말려 놓았다가 먹었다. 겨울에는 푸성귀가 귀하기 때문에 저장해 두었다가 먹는 선조들의 지혜이다.
정월대보름에 “피마자 잎에 찰밥이나 오곡밥을 싸서 먹으면 꿩알을 줍는다.”라는 속설이 있다. 한 해 동안 좋은 일이 있기를 기원하는 소망이 담긴 뜻이다. 또 그 해가 풍년인지 흉년인지를 미리 점치기 위해 소에게 밥과 나물을 주기도 했다. 소가 나물을 먹으면 풍년이 들고, 밥을 먹으면 흉년이 든다고 생각했다. 또한 오곡밥과 아홉 가지 묵은 나물을 이웃과 나누어 먹으며 서로 정을 나눴다. 남자들은 아홉 그릇의 오곡밥을 먹고 아홉 짐의 나무을 해야 한다고 했는데 입춘, 우수가 지나면 농사일이 바빠지기 때문에 많이 먹고 힘을 얻으라는 뜻이리라.
보름날은 ‘용물’을 길어서 찰밥을 지었다. 우리 동네는 공동우물이 하나 있었다. 어머니는 용물을 긷기 위해 잠을 자지 않고 밤을 지켰다. 우물에 두레박을 드리우고 첫닭이 ‘꼬끼오~~’ 하고 울면 얼른 물을 펐다. 옛날에는 정월대보름날 첫닭이 우는 시각이 바로 우물물이 용솟음치는 시각이라 믿었다. 이 물을 ‘용물’이라고 했다. 동네 사람들은 용물을 긷기 위해 두레박을 드리우고 첫닭 우는 소리를 듣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어떤 사람들은 정말로 용솟음치는 물을 퍼 올렸다고도 했다. 그러면 아낙네들은 그 사람을 매우 부러워하며 “그 집에 올해는 좋은 일이 있을 거야.”라고 덕담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내년에는 내가 꼭 맨 첫 번째로 용솟음치는 용물을 퍼 올려야지.’ 속으로 다짐까지 했다. 용물은 ‘용물달기’라는 용수湧水기원제에 뿌리를 둔다. ‘용물달기’는 “용이 물을 달고 온다.”라는 의미로 가뭄에도 우물물이 마르지 않도록 기원하는 민속행사이다. 그런데 우리 마을에서는 다른 형태의 기원의 형태로 변한 것이다.
어머니는 하얗게 서리꽃이 피는 온 밤을 뜬눈으로 지새웠다. 하얀 달빛에 서리꽃이 아름답게 반짝였다. 온몸이 얼어도 어머니는 우리 가족의 평안함만을 염원했다. 오직 어머니만이 할 수 있는 가족사랑 방법이다. 멀리서 수탉이 홰를 치며 힘차게 첫 울음을 터뜨리면 어머니는 제일 먼저 ‘용물’을 길러 와서 찰밥을 지었다. 그리고 흰 찹쌀에 붉은 팥을 섞어서 가마솥에 안치고 불을 지폈다. 붉은 팥이 모든 액운을 막아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정성껏 지은 찰밥과 갖가지 나물로 상을 차려놓고 성주, 조왕, 천지신명께 가족들의 무사안일을 빌었다. 대주大主부터 자식들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가며, 타인에게는 ‘꽃’으로 ‘잎’으로 보이게 해달라고 두 손 모아 빌고 또 비는 어머니의 기도는 거룩했다.
예전처럼 용물을 체험할 수 없다는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중랑천에 갔다. 중랑천에 만들어놓은 커다란 달집에는 소원장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사람들은 그 종이를 태우면서 소원을 빌 것이다. 나도 소원장 한 장을 썼다. 두 손 모아 비는 옛날 어머니 같은 마음으로, 곱게 접어서 새끼줄에 단단히 묶었다. 달집을 태우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왔다. 농악놀이의 꽹과리 소리가 내 마음을 한껏 달뜨게 했다. 달집에 불을 붙이자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용물 앞에서 기도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내 유년의 모습도 아련히 보였다.
노춘희 --------------------------------------
경북 의성 출생.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교육학과 졸업. 수필과창작문학 회원. 도봉문화원주최 백일장 장려상(2009), 장원(2013) 수상.
당선소감
상큼한 새봄, 꽃바람을 타고 날아온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신인상 수상’이라는 소식에 한동안 어리둥절했습니다.
“배워서 남 주나.”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배워서 남 주려고 수필을 배웠습니다. 저는 복지관에서 ‘어르신한글교실’에서 자원봉사로 문해교육을 하는 교강사입니다. 어르신들께 봉사하기 위해 수필교실에 발을 들여놓은 지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여러 번 지나갔습니다. 언제나 바쁘다는 핑계로 한 발을 들여놓고 한 발을 뺀 채, 글다운 글을 쓰지 못하고 갈등의 문턱에서 서성거렸습니다.
변변치 못한 작품이지만 신인상을 주시는 것은 갈등의 방황에서 벗어나 더욱 정진하라는 격려일 것입니다.
처음 수필을 지도해 주신 고故 변해명 선생님이 문득 생각납니다. 신인상을 수상할 수 있도록 격려와 관심, 사랑으로 지도편달을 아끼지 않은 수필과창작 문학회원들과 교수님께, 지켜봐 준 가족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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