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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4년 4월호, 신인상수상작] 날개가 아파요 - 한가희

신아미디어 2014. 4. 10. 13:13

"아침 창가에 나부끼는 햇살이 나비의 날개처럼 하느작거린다. 방 안을 가득 채우는 ‘어떤 갠 날’의 아리아! 핑커톤과 나비부인의 재회할 수 없는 슬픈 선율이 나에게 용기를 준다. 날개가 아파 날지 못하는 이들에게 다가가리라."

 

 

 

 

 

 


 날개가 아파요      한가희


   조금은 여유로운 시간이다. 짬을 내서 오페라 <나비부인> 중 ‘어떤 갠 날’을 듣는다. 가족과의 연을 끊고 사랑에 빠진 남녀의 사랑 이야기, 뱃고동 소리가 은은히 들리고 떠난 임을 기다리는 아리아가 구슬프다. 소프라노 가수의 맑은 선율에 가냘프게 떨리는 마음을 추스르고 내 마음의 안식을 얻는 시간이기도 하다. 성악가로서 활동하게 될 우리 딸애를 그리며 오페라를 즐겨 듣곤 한다.

 

   딸애가 고등학교 2학년 재학시절에 하루는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다며 정신과에 같이 가 달라고 하는 게 아닌가. “얘가 줄곧 잘 지내다가 무슨 일이래.”라고 혀를 차며 병원으로 향했다. 그러나 정신과 상담을 받으면서 나는 충격을 받았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무심히 넘겨버렸던 초등학교 시절의 친구들과의 갈등이 원인이었다.
   친구들에게 ‘왕따’당했던 아픔이 있었단다. ‘대인기피증’이라는 말 같지 않은 병명으로 혼자 가슴앓이를 해왔다는 사실을 의사는 무당이 주문 풀어내듯 아이한테서 끄집어냈다. 토해내듯 엉엉 소리 내며 하염없이 쏟아내는 딸애의 눈물을 보며, 바직거리며 찢어지는 고통의 아픔을 느꼈다.
   과연 나는 엄마 자격이 있었나. 고명딸 하나 건사하지 못하면서 어린이집 원장선생이라니. 이게 웬 날벼락인가. 자식의 손톱에 가시도 보지 못한 한심한 엄마인 나. 혼자 많이 울었다. 내 딸을 아프게 한 녀석들 가만두지 않겠다는 생각과 죽이고픈 마음마저 들었다면 누가 믿을까. 아무튼 앙갚음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저버릴 수가 없었다.
   오죽했으면 견디다 못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싶다고 했을까?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 주위에서 “걔는 정신에 문제가 있는 애야, 같이 어울리면 안 되는 애야.”라는 편견을 마다않고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던 딸. ‘원래 등잔 밑은 어두운 것’이라는 말로라도 변명할 수 있을지. 엄마로서 보듬어 주지 못한 마음에 가슴이 미어지고 미안함, 죄스러움에 정말 많이 힘들었다. 다행히 세월이 약이었고, 딸애는 지금 어엿한 대학원생이 되어 조교생활을 하고 있다.
   딱히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지만 어린이집을 운영하면서 특정장애를 앓고 있는 아동을 대하면 내 신경은 곤두선다. 그래서 이 길에서 봉사하고픈 생각에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최근에 ‘상처 입은 자에 대한 치유’에 관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결코 쉽게 다가서지 않은 책이라 어렵다는 선입관부터 갖게 되지만 “버려야만 다가설 수 있는 책이다.”라고 스스로에게 주입하면서 읽고 또 읽었다. 내 딸이 겪은 아픔을 짚어보는 시간을 다시 한 번 느껴 보면서.
   그 책 속에는 네 개의 열린 문에서 각 장마다 현대인이 지니는 문제 속으로 들어가는 문으로의 비유가 있다. 현대인이 당면한 어려움을 내 나라 내 이웃과 내 가족 내 자신이 처한 고통, 혼란, 강박관념 등이 그것이다. 죽어가고 있는 사람에게 진실한 자신의 마음으로 직접 경험한 고통을 말하는 것, 고통을 통해 얻은 상처가 다른 사람을 치유하는 원천으로 이용되는 방법을 말하려고 하는 진정한 깨달음을 우리들에게 심어주기 위한 지침서 같은 인상을 받았다.
   장그르니에의 “산다는 것은 언제나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의 빛과 그늘, 땅과 나무냄새, 그 안에 함께 있는 사람들을 충만하게 끌어안아라.”라는 말처럼 모든 아이들을 끌어안고 보듬어야만 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아침 창가에 나부끼는 햇살이 나비의 날개처럼 하느작거린다. 방 안을 가득 채우는 ‘어떤 갠 날’의 아리아! 핑커톤과 나비부인의 재회할 수 없는 슬픈 선율이 나에게 용기를 준다.
   날개가 아파 날지 못하는 이들에게 다가가리라.

 

 

한가희  -------------------------------------------------
   (현) 예담미술학원 원장, 영주어린이집 운영. 제주시 일도이동 주민자치위원. 제주시 새마을독서회 회원.

 

당선소감


   당선 소식을 듣고 당황했습니다. 부끄러운 저의 글에 관심을 가져주시는 그 마음에 두려움이 앞서면서도 아프지만 기쁘기도 한 첫 출산의 느낌 같았다고나 할까요. 개인적인 경험과 사색의 조각들을 글이라는 형식을 통해 토해낼 수 있다는 것은 제겐 위로의 씨앗이고 기쁨이요, 한편으로는 속내를 내비치는 것 같아 다소 고통스러운 두려움이기도 합니다.
   내 딸이 받았던 정신적 폭력은 지금도 누군가에게 가해지는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아픔이 아닐는지요. 저의 내면에 깊숙이 자리 잡힌 아픔이 심장을 조여올 때마다 글을 통해서 고통을 감내하려는 건 지극히 이기적인 행동일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타인에게 조그만 디딤돌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소망이 숨어 있는지도.
   제 삶에 녹아내린 경험과 사색이 누군가에게 한 톨의 소금이 되어 아픔도 예쁘게 아프도록 해 드리고 싶다고. 글쓰기에 더욱 노력하렵니다.
   아직 알에서 깨어나지도 못한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과, 가까이에서 늘 용기를 북돋아 주신 선배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