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겹게 부를 수 있는 이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수필과 비평은 항상 행복합니다.
쌀례
“쌀례야.”
반가운 마음에 현관에 들어서면서 이름부터 불렀다. 오랜만에 불러보
는 정겨운 이름이다. 친정아버지 기일 때문에 고향에 갔더니 마중 나온
오빠가 쌀례가 집에 와 있다고 한다. 간간이 올케언니를 통해 소식은
들었지만 보고 싶어도 만날 기회가 없었다. 쌀례는 친정집에서도 한참
떨어진 산골에 살고 있었고 나는 서울에 살아서 어쩌다 친정에 가도 만
날 길이 없었다. 쌀례가 사는 곳은 전화도 없는 벽촌이었다.
“오메, 이게 누구여, 자네가 ‘정희’란 말인가?”
하며 쫓아 나온 사람은 머리가 허옇게 센 할머니였다. 순간 나는 얼른
말을 삼키고 멍 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갈래머리 팔랑이며 다니던 쌀례
의 모습은 한 군데도 없었다. 도대체 얼마만큼 세월이 지났는가? 어림잡
아 40년의 세월이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등만 자네도 그 곱던 얼굴이 많이 가 뿌렀네.”
쌀례가 내 손을 붙들고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쌀례만이 아니라 내
모습도 많이 변했나 보다. 나이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철없던 어린 시절
은 가고 이제는 옛날처럼 “쌀례야.” 하고 부를 수가 없다.
“자네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었는가?”
이럴 때 전라도 반말은 참 편리하다. 윗사람에게도, 아랫사람에게도
크게 실례가 되지 않는다. 친한 선후배 사이에서는 오히려 친근감을 주
기도 한다. 작년에 회갑이었다는 대답에 일곱 살 차이인데도 친구처럼
말을 놓았던 그때를 생각하며 잠시 미안한 마음이 든다. 제사를 마치고
서야 늦도록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
니 쌀례는 아침 일찍 떠나고 없었다.
쌀례는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우리 집에 왔다. 생각해 보니 그때
쌀례 나이가 열여덟이었던 것 같다. 오빠가 결혼하고 1년 후다. 시골에
있는 친척이 소개를 해서 왔는데 가끔 딸이 보고 싶어 우리 집에 오셨던
쌀례 어머니는 허리도 굽고 머리도 하얀 할머니였다. 아마 쌀례가 늦둥
이 막내딸이었던 모양이다. 게다가 천식이 있으셨던지 밤새 기침소리가
났다.
쌀례는 피부가 유난히 희고 고왔는데 얼굴에 온통 주근깨 투성이었
다. 눈이 쌍꺼풀 진 예쁜 아이였다. 머리를 두 갈래로 땋아 나풀거리며
성격이 좋아 늘 웃고 다녔다. 그 시절에는 열여덟 살이면 다들 시집도
갔는데 시골에서 천진스럽게 뛰어다니던, 영락없는 선머슴아 모습 그대
로였다. 학교를 다니지 않아서 한글도 몰랐다. 천방지축 늘 실수를 하곤
했다. 그런 그 아이를 아버지는 혀를 끌끌 차며 타이르시곤 했다. 우리
집에 온 지 두 해쯤 지나서 아버지는 쌀례를 야학에 보냈다. 밤이면 가까
운 초등학교에서 하는 야간학교에 다니며 한글을 배웠다. 부엌 벽에 쌀
례가 써 놓았던 글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
“쌀례야, ‘불초짐을 햐어라.’가 뭐냐? ‘불조심을 하여라.’라고 고쳐.”
하면서 놀려도 싱글벙글이었다. 내가 시집올 때까지 그 글은 우리 집
부엌 벽에 남아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많이 앓았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한 달
가량 아프고 난 후 학교에 갔다. 그때 의사선생님이 밥을 천천히 서른여
섯 번쯤 씹어 먹으라고 했다. 그때부터 쌀례가 점심도시락을 매일 학교
로 나르는 일이 시작되었다. 점심때가 되어 나가보면 도시락이 식지 않
게 품에 안고 서 있었다. 비가 오면 우산을 가져왔고, 잃고 온 물건이
있으면 챙겨오곤 했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향교에서, 그 당시 이름난 영어 과외 선생님
한테 매일 새벽 영어를 배우러 다녔다. 혼자가기 무섭다고 하루도 빠짐
없이 나를 향교까지 데려다 주었다. 내 친구들이 우리 집에 놀러오면
나보다 먼저 뛰어나가 반기고, 이것저것 먹을 것을 챙겨다 주곤 했다.
대학에 입학한 해 여름방학에 집에 갔더니 쌀례가 없었다. 시골 농사
짓는 집에서 혼담이 들어와 시집을 갔다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로
는 상당히 늦은 나이였다. 시집도 안 가고 늘 우리와 함께 살 것만 같던
쌀례가 시집을 갔다는 소식에 무척이나 섭섭하고 허전했다. 올케언니
마음은 더 했을 것이다. 일을 전혀 배우지 못한 채 장손 며느리로 시집
온 올케언니는 집안일에 많이 서툴렀다. 언니의 실수는 모두 쌀례가 대
신해서 야단을 맞았고 여러 가지로 언니를 많이 도왔으니까.
자기 논 한 마지기도 없는 아주 가난한 농사꾼에게 시집을 간 쌀례는
고생을 많이 했단다. 그래도 그 사이 아이도 셋이나 낳고 이제는 자기
논도 몇 마지기 장만해서 살 만하다고 했다. 올케언니는 조카들이 입었
던 옷을 잘 두었다 쌀례가 오면 주었다. 언니에게도 늘 고맙게 기억되는
사람이기에 이것저것 아끼지 않고 챙겨 주었다. 웃는 모습도, 착한 모습
도 여전했다. 시골의 강한 햇볕이 그 곱던 피부를 저렇게 망가뜨렸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짠해졌다. 주근깨가 하나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까매
진 피부는 주름투성이였다. 나를 보며 연신 웃는 쌀례를 보며 간신히
울음을 참았다.
“어이, 내년 아버지 기일에도 꼭 오소. 나도 올 테니 그때 또 만나세.
자네, 약속 꼭 지켜야 되네. 알았지?”
나는 몇 번이고 쌀례에게 다짐을 받았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것이 우리 인생사라 했다. 바로 그해 올케언니
가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져 치료차 서울로 이사를 오고 언니의 투병
생활이 시작되었다. 올케언니는 쌀례가 사는 곳을 알고 있었으련만 아
픈 언니에게 쌀례 소식을 물어볼 겨를이 없었다. 언니는 5년을 앓다가
결국 세상을 떠났다.
쌀례를 만나고 벌써 15년. 만날 수 없는 아쉬움은 아랑곳하지 않고
세월은 많이도 흘러갔다. 이제부터는 해마다 쌀례를 만날 수 있으려니
생각했다가 영영 소식마저 끊겨버린 지금, 그때 사는 곳이라도 알아 둘
걸 하고 후회가 된다. 나는 가끔 쌀례 생각을 한다. 그럴 때면 늘 콧잔등
이 시큰해지며 눈가에 눈물이 돈다. 그리운 사람. 보고 싶은 얼굴. 어린
시절 항상 내 곁에 있었던 사람.
허옇게 세어버린 머리카락, 햇볕에 그을려 주름진 검은 얼굴의 할머
니 모습에 갈래머리 팔랑거리며 천방지축 뛰어다니던 주근깨투성이에
쌍꺼풀 진 하얀 얼굴이 오버랩되어 떠오른다. 쌀례의 깔깔거리는 웃음
소리와 함께 딸이 보고 싶어 찾아오곤 했던 쌀례 어머니의 기침소리가
아직도 내 귀에 쟁쟁하다. 나는 가끔 쌀례 생각을 하며 혼자 중얼거린다.
“어이, 자네 아직도 건강하게 잘살고 있겠지?”
황정희 ------------------------------------------------------
2006년 ≪수필과비평≫ 등단.
수필집: ≪괜찮은 남자를 놓칠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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