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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3년 9월호, 세상마주보기] 고향 집을 손질하며 - 박찬란

신아미디어 2013. 11. 11. 08:48

"지혜로운 선조는 자식을 낳아 대를 잇는 일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지 않았던가. 나의 아들 또한 성장할수록 남편을 붕어빵처럼 닮아가는 모습을 보고 혼자 웃을 때가 가끔 있다. 그러니 농부가 아무리 고단해도 농사를 포기하지 않듯 나의 인생도 자식농사를 위해 온 힘을 다해 살아야 함을 고향 집을 정리하면서 절실히 느낀다. 고향 집은 부모님의 손길과 정이 깃들어 숨 쉬는 곳이다. 많은 돈을 들여 화려한 궁전으로 꾸미기보다 생전의 정 깊은 부모님의 모습과 가르침이 오롯이 보존된 소박한 집이면 좋을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를 추구하며 성장하는, 이런저런 나무 같은 자식들에게 나는 무엇을 남겨 주고, 어떤 어머니로 기억될 것인가를 생각한다."

 

 

 

 

 

 

 고향 집을 손질하며     박찬란


   나의 제2고향은 충북 괴산군 화양계곡 입구다. 이곳은 산수가 빼어날 뿐 아니라 인심도 넉넉하다. 전생의 무슨 인연 줄이던가.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연분이 닿아 이 집안의 며느리가 되었다. 여름철이면 전국 방방곡곡에서 화양계곡을 찾는 피서객이 줄을 잇는 곳이기도 하다. 조선 시대 우암 송시열 선생이나 유학의 거장, 퇴계 이황 선생도 이곳 풍경에 반해 머무르던 곳 아닌가. 그 어룡리魚龍里는 화양리 인접 동네로서 인물 또한 많이 배출되었지만, 풍수지리상으로도 명당 마을의 전형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나는 한번 마음먹은 일은 꼭 해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남편은 인천을 떠나 청주로 올 때부터 밤마다 기와집 몇 채를 허물고 짓기를 반복해 오지 않았던가. 시부모가 모두 돌아가시고도 그렇게 십 년이 지나도록 마음속의 집수리가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먹고 사는 일이 우선이다 보니 폐가처럼 버려두었던 곳이다. 봄에 장남을 데리고 시골집에 갔더니 “엄마, 귀신 나올 것 같아요! 뒷산이 무너질 것 같으니 어서 나오세요.” 하는 게 아닌가. 사실 현실이 그러했다. 그 말을 가슴에 두고 있던 나는 요즘 좀 한가한 듯한 남편을 채근했다.
   “여보, 고향 집이 어설프니 마음마저 심란하네요!”라고 하니 남편은 “그럼 내일 손볼까?” 이렇게 하여 차일피일 미루던 시골집을 정리하기로 했다. 은행잎이 노랗게 물든 어느 가을날 아침이다. 남편 지시에 따라 굴착기 기사의 손놀림이 바쁘게 움직인다. 본채만 그대로 보존하고, 허물어진 사랑채와 헛간 그리고 재래식 화장실을 모두 철거해 버렸다. 그리고 뒤란까지 밀려 내려온 산 흙더미를 말끔히 쳐내어 버리고, 배수가 잘되게 물길을 내고 둔덕을 만들었다. 그리고 뒤란에서 많이 걷어낸 흙으로 마당까지 돋우어 놓았다. 그렇게 온종일 작업을 하고 보니, 집이 더욱 우람하고 마당도 넓어 보였다.

 

   시원하게 뚫린 동서와 남으로 가을 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청명한 하늘에는 구름이 조각배를 띄워놓고 앞산은 어느새 만산홍엽이 추억의 궁전을 만들어 놓아 이곳에 있었던 일들을 회억하게 만드는 것 아닌가. 마당 한 귀퉁이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쓰지 않은 물건들을 태우면서 깨끗하게 다듬어진 불티 사이로 시부모의 모습이 아련히 떠오른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로 맺어진 이승의 고귀한 인연들이 어제 일처럼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이 집에 첫인사를 왔을 때 낯설고 물 선 곳이라 실수를 한 경험이 생각나 혼자 웃음을 짓는다. 시부모님께 절을 올리다 벽에 부딪힌 일, 과도를 거꾸로 잡고 과일을 깎다가 손을 벤 일, 살아온 환경과 문화가 달라 힘들었던 경험 등 칠남매 맏며느리라서 20여 년이 가깝도록 명절에는 친정을 갈 수도 없는 처지에 서러워 혼자 울기도 많이 했다. 그때마다 산 너머의 저녁놀을 바라보며 그리움을 달래기도 했다. 하늘에 두둥실 떠가는 구름과 고추잠자리의 자유가 몹시도 부러운 한 시절, 구름에 마음의 편지를 고향 부모님께 부치던 일 등 그런 마음 시린 시절도 이제는 아득한 옛날 일로 사라져버렸다. 이젠 시어른들도 모두 떠나지 않았는가.

 

   고향 집에는 부모님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 살아 계실 때는 오직 자식의 안위와 사람답게 살기를 기도하시다가 혼백이 되어서도 좋은 일에는 만면에 웃음으로 나타나시고, 어려운 일이나 근심할 일이 있으시면 안색과 옷매무새부터 어두우시다. 언제나 이 고향 집에서다. 그래서 집에는 그 사람의 영혼도 함께 머무는 공간이다. 자식이 성공하고 잘되려면 살아서는 부모 마음 편안하게 살펴 드리고, 돌아가신 뒤에는 생가터를 말끔히 정돈하는 일도 자식된 도리라고 생각한다. 내 아이들의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남편이 태어나 자란 곳이라고 생각하면 지금 사는 집처럼 늘 깨끗이 청소하고 가꾸어야 하리라.

 

   시아버지 모습이 남편의 행동에서 문득문득 묻어나고, 그 아들에게서 또한 남편의 모습이나 행동을 보게 되니 흐르는 세월 속에서도 숨길 수 없는 핏줄의 모습을 보기도 한다. 그러기에 지혜로운 선조는 자식을 낳아 대를 잇는 일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지 않았던가. 나의 아들 또한 성장할수록 남편을 붕어빵처럼 닮아가는 모습을 보고 혼자 웃을 때가 가끔 있다. 그러니 농부가 아무리 고단해도 농사를 포기하지 않듯 나의 인생도 자식농사를 위해 온 힘을 다해 살아야 함을 고향 집을 정리하면서 절실히 느낀다. 고향 집은 부모님의 손길과 정이 깃들어 숨 쉬는 곳이다. 많은 돈을 들여 화려한 궁전으로 꾸미기보다 생전의 정 깊은 부모님의 모습과 가르침이 오롯이 보존된 소박한 집이면 좋을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를 추구하며 성장하는, 이런저런 나무 같은 자식들에게 나는 무엇을 남겨 주고, 어떤 어머니로 기억될 것인가를 생각한다.

 

 

박찬란  ---------------------------------------
   제3회 박화목문학상. 제13회 황진이문학상 수상. 수필집: ≪찬란한 아침≫, ≪랩소디≫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