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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 2013년 7월호, 신작수필] 영화 「친구」를 보고 - 김한석

신아미디어 2013. 9. 27. 08:32

"동창끼리 만나 처음에는 학창 시절 얘기로 웃음꽃을 피우다가도 술이 거나하게 취하다 보면 어느새 사회적 우열이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 한 교실에서 같은 교복을 입고 비슷한 생각을 하던 시절로 되돌리기에는 살아온 이력이 제각각인데다 살아갈 앞날도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때보다 친구가 더없이 절실한 시기인데도 속내를 드러내며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는 자꾸만 줄어들고 있으니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 심한 허탈감을 느낀다."

 

 

 

 

 

 

 

 영화 「친구」를 보고     -  김한석수필가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로 지내온 그들은 고교 때, 대수롭지 않은 일로 선생님으로부터 지독하게 얻어맞는다. 그 길로 준석이는 학교를 뛰쳐나와 일찌감치 깡패가 됐고, 한동안 방황하던 동수도 뒤늦게 조폭組暴에 가담하기로 결심한다. 조폭의 생리를 잘 아는 준석이는 극구 만류하지만 동수는 설마 장의사 직職 이어받기보다야 못하겠느냐며 이를 뿌리친다. 그 뒤, 동수는 비참하게 살해되었고 준석이는 살인교사 혐의로 수감되었다. 상택이는 모범생으로 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 이 광경을 목도하고는 참담한 심경을 가누지 못한다.  
   살인사건의 재판이 열린 법정에서다. 재판장이
   “한동수를 알고 있나?”
   “네. 친구입니다.”
   “살해를 지시한 적이 있나?”
   잠시 침묵이 흐른다. 모두 숨죽이며 그의 입만 바라보고 있는데 
   “제가 지시했습니다.”
   너무 엉뚱한 대답에 모두 심장이 멎는 듯했다. 재판 전에 준석 이를 면회한 동수의 아버지마저, 
   “너도 어차피 내 자식 같은 놈인데, 네가 동수를 그랬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며 피할 길을 터주었는데도 말이다. 상택이는  곧바로 구치소로 준석이를 찾아가 
   “니 왜 그랬노, 동수한테 미안해서 그랬나?”
   하고 다잡자, 계면쩍은  듯, 
   “쪽팔린다 아이가.”
   한다. 건달이 구차하게 변명 따위나 늘어놓는 것은 친구에 대한 의리가 아니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죽이라고 지시하지는 않았으나 라이벌 관계에 있는 조폭끼리의 싸움에서 빚어진 참사라 도의적 책임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스스로 살인죄를 뒤집어쓸 필요까지 있었을까. 친구를 죽음에까지 몰아넣을 수 있는 비정한 조폭의 세계. 그동안 저지른 죗값마저 치르고 새 삶을 찾고자 하는 자기 성찰까지 통틀어 친구에 대한 의리로 표현한 것이 아니었을까. 전통사회에서는 신의信義가 도덕의 잣대였다. 그래서 의리에 죽고 산다는 말까지 있지 않은가. 
   누구에게나 친구가 있기 마련이다. 친구란 언제 만나도 반갑고 어려울 때 서로 힘이 되어주는 소중한 존재이다. 그런 친구가 셋만 있으면 행복한 사람이라고들 한다. 그럼 나에게는 그만한 친구가 몇이나 될까. 아니 한 사람이라도 있기나 한 걸까.
   젊을 때에는 꽤 많았던 것 같은데 지금은 주위를 두리번거려 봐도 딱히 이 친구다! 하고 내세울 만한 얼굴이 얼른 떠오르지 않는다. 어릴 때는 선친으로부터 붕우유신朋友有信을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고 사회에 나와서는 평생을 사람들 속에서 살아왔는데도 당장 자신 있게 손꼽을 친구가 없다니 살아온 인생이 새삼 서글퍼진다. 왜 나는 세상을 이렇게 헛되게 살아왔을까.
   그러나 오늘날처럼 자기 이익만을 앞세우는 사회 환경에서야 내가 꼭 못나서 그런 건 아닐 뿐더러 나만 그런 것도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런 세태를 반영이라도 하듯, 요즘은 진실한 친구는 단 한 사람이면 족하다는 말도 나온다. 그렇다면 내게도 그럴 만한 친구 한 사람쯤은 있어야 하겠는데, 이런 친구라면 어떨까.
   어떤 술자리에서다. 옆 손님이 술기운에 어찌나 못되게 굴던지 좀 자중하라고 소리를 질렀더니 “너 따위가 뭔데.”하며 버럭 달려들지 않는가. 나는  들고 있던 술잔을 집어던지며 상을 뒤엎어 버렸다. 단번에 술자리는 난장판이 되고 그 서슬에 맥주병이 깨지면서 아가씨 목에 파편이 박혀 선혈이 흘러내렸다. 나는 겁이 나 어쩔 줄 모르고 있었는데, 친구는 침착함을 잃지 않고 재빨리 내게 피하라는 눈짓을 했다. 공무원의 신분이라 잘못 걸려들면 낭패를 당할 수 있다는 배려였으리라. 친구의 기지로 나는 난처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그는 뒷수습까지 말끔히 해주었다.
   그만한 친구를 가졌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한데 몇 해 전, 그 친구를 떠나보내고 나니 적막하기 이를 데 없다. 다정하고 호탕한 그 웃음을 다시 들을 수 없으니 그저 허탈할 뿐이다. 
   우리가 어릴 적 학교 다닐 때는 구태여 친구를 사귀려 애쓰지 않아도 또래의 친구들이 저절로 생겨났다. 그리고 그 친구들은 아무런 이해관계 없이 오래도록 순수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사회인이 되고 각계각층의 다양한 친구들이 새롭게 생겨나면서 경제력이나 학력, 사회적 지위 같은 것이 묘하게도 옛 친구들 사이를 갈라놓기도 한다.   
   동창끼리 만나 처음에는 학창 시절 얘기로 웃음꽃을 피우다가도 술이 거나하게 취하다 보면 어느새 사회적 우열이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 한 교실에서 같은 교복을 입고 비슷한 생각을 하던 시절로 되돌리기에는 살아온 이력이 제각각인데다 살아갈 앞날도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때보다 친구가 더없이 절실한 시기인데도 속내를 드러내며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는 자꾸만 줄어들고 있으니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 심한 허탈감을 느낀다. 
   그런데 영화 속의 상택이와 준석이는 성장 배경, 학벌, 사고방식, 진로와 생활환경이 완연히 다른데도 이해관계를 초월하여 어떠한 어려움도 우정으로 풀어낸다. 두 사람이 놓인 처지는 달라도 진심어린 마음으로 하나를 이루고 있었다. 이 영화에서는 조폭으로 부딪치게 된 살인자와 피해자의 관계에 더 무게를 두고 있는 듯하지만, 내 눈에는 학창 시절을 함께하며 일관되게 우정을 다져온 준석이와 상택이의 잔잔한 의리가 더 빛나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