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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문학 2013년 창간호, 수필] 갱년기 장애 - 장현정

신아미디어 2013. 9. 8. 20:49

"얼마나 더 나이를 먹으면 이토록 괴롭게 하는 상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과연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을 살기 위해 힘을 낼 수밖에 없다."

 

 

 

 

 

 갱년기 장애     /  장현정

 

   최근 눈이 침침해져서 안과에 갔더니 의사가 말했다.
   “조금 이르긴 합니다만 갱년기 초기 증상입니다.”
   내 나이 마흔 셋.
   최근의 평균수명으로 따지자면 젊다고도 늙었다고도 할 수 없는 딱 중간쯤이다. 지구의 위도 상으로 보자면 적도 부근에 서있는 셈이다. 그래서일까. 요즘 나는 늘상 속이 타고, 자기장의 영향을 받는 나침반처럼 머릿속이 복잡하다. 어떤 날은 발이 시려서 등산양말을 끼어 신고, 어떤 날은 열이 활활 나서 찬물에 발을 담그곤 한다. 글쟁이생활 10년을 지나온 동안 복부에는 지방이 끼어서 뱃살이 두둑해졌고, 무슨 잔머리를 그리도 썼는지 머리카락은 서리 맞은 까마귀다. 외출을 자주 하는 편이 아니라서 염색은 번거롭고 귀찮은 일쯤으로 치부해 버렸는데, 우연히 얼굴이 가려진 채 흰머리만 본 어떤 사람이 ‘저기 어르신…….’하고 부르는 바람에 한 방 크게 맞은 기분을 경험하기도 했다. 어디 그뿐인가 화장을 안 하니 세수하는 것도 자주 잊어버리고, 날밤 새우며 일하기를 밥 먹듯 하니 언제가 밤이고 언제가 낮인지 경계가 모호해서 양치질도 건너 뛸 때가 왕왕 있다. 흡사 동굴 속에서 도 닦는 수도승처럼 지내다가는, 어느 날 불현듯 거울을 보면서 제법 뭇 남성들의 시선을 끌었던 시절을 떠올릴 때가 있다.
   도도한 자존심만큼 높은 하이힐을 신고도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고 전력질주를 할 수 있었던 그 때. 세상에 잘난 사람은 나뿐이라 여겼고, 나 혼자만 주목을 받아야 만족스러웠으며, 혹여 누군가 뒤에서 손가락질을 해도 그건 부족한 자가 부러움을 표시하는 한 방편이라고만 여겼던 시절이었다. 하늘을 찌를 듯 기세 좋았던 젊은 마음은, 마치 지반공사를 소홀히 한 건물처럼 작은 충격에도 주저앉곤 했다. 어떤 때는 하늘을 나는 기분이 되었다가 또 한순간에 무너져서 심연 깊은 곳으로 가라앉는 기분이 돼버렸다. 그렇게 태풍의 눈 같은 마음에 휘둘리다가 스스로 있어야 할 곳마저 잃어버리는 게 다반사였다.
   지금 내 나이 마흔 셋에 미혼.
   동창들은 거의 학부형이 됐다. 되바라져서 일찌감치 연애를 시작하고 시집간 친구는 대학 입시를 앞둔 아들도 있다. 어쩌다 이런 친구들과 만나거나 전화통화를 하게 되면 서로 안부를 묻는 것으로 금방 대화가 끊어진다. 일 때문에 만난 사람들과는 상대가 반론을 제기할 사이도 주지 않고 내 주장을 펼치는데, 결혼해서 아이 키우는 친구들과는 할 말이 궁하다. 그나마 일 년에 두세 번 만나는 남자 동창들과는 뉴스에서 본 얘기, 빡빡한 경제 얘기라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내 나이 마흔 셋에 미혼, 칠순이 넘은 부모를 부양하고 있다.
   엄마는 환갑이 지난 이후 수술후유증으로 휠체어 생활을 하고 있다. 여러 해에 걸쳐 재활치료를 받았음에도 타인의 도움 없이는 거동이 어려운 1급 지체장애인이다. 어머니는 결벽증이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은 완벽주의자였다. 집안의 맏며느리로서 대소사를 코끝으로 좌지우지했던 분인데, 이제 당신 손으로 무엇 하나 제대로 해낼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엔 상처가 컸던 모양이다. 어머니 눈가에는 그 충격과 서러움을 토로하는 눈물이 하루도 마를 날이 없다. 시집도 못 가고 늙은 부모 공양하며 나이 먹는 딸이 불쌍하다며 눈물 흘리고, 감각이 무뎌진 탓에 잠자리에서 적신 바지를 갈아입으며 우신다. 서운한 말 한 마디 하면 장애인 된 것도 서러운데 어른공경 잘 못한다 타박하며 눈물 찍는다.
   거의 평생을 공장에서 일하신 아버지는 가장으로서 드러내 자랑스러워할 게 없다며 구부정한 어깨를 한 채 돌아앉아 TV만 보신다. 원체 말수가 적은 분이지만 근래에 들어서는 웅크린 어깨가 더 작아 보인다.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고 했던가. 안 그래도 아버지의 작은 체구가 나날이 쪼그라드는 걸 보면서도, 당장 눈앞에서 고통을 호소하는 어머니를 챙기느라 아버지에 대한 마음은 늘 뒷전으로 밀려나고 만다. 주위 사람들이 “아버지도 생존해 계시냐”고 물을 때마다, 나에게 그만큼이나 그분의 존재감이 흐려져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죄송스러울 뿐이다. 
   내 나이 마흔 셋에 미혼, 칠순이 넘은 부모와 한 살 위 오라비를 부양하고 있다.
   십 수 년 전부터 인터넷 게임에 빠져버린 오빠는, 매해 6월의 햇살 따사로운 어느 날 말도 없이 훌쩍 가출했다가 추석이 지나서 찬바람이 불면 들어온다. 적게는 사오백에서 많게는 천만 원 가량의 빚을 선물로 가져온다. 덕분에 큰 도시의 아파트를 팔아서 시골로 이사한 후엔 신경정신과에 치료를 받으러 데리고 다닌다. 오라비도 미안한 생각은 들었던지 눈치껏 청소도 하고 세탁기도 돌린다. 내가 바쁜 기색을 보이면 밥도 짓고 설거지도 한다. 장보러 가면 짐꾼으로 따라오고 담뱃값 용돈이라도 집어주면 황송해한다.
   내 나이 마흔 셋에 미혼.
   때때로 거울을 보면서 생각한다. 어서 빨리 늙어서 주름지고 백발성성한 파파할머니가 됐으면 좋겠다고……. 나이를 먹는다는 건 마음이 더욱 깊어지는 것이며, 정신없이 달리는 자신의 마음에서 한 발짝 물러나 관망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또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하늘 끝과 바다 속을 자기 마음속에 담는 것이다. 그러면 ‘맨 벼름박 긁어대듯’ 치열하게 살아내지 않고, 아직은 미래가 있으니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 꿈꾸지 않고, 자존심 때문에 내팽개친 사랑에 연연하지 않을 것 같다. 나 아니면 죽겠다고 매달리던 그 남자 얼굴이 이제는 기억 속에서 조금씩 흐려져 간다. 이제 평균 수명에서 반 밖에 살지 않았는데 산다는 일이 너무너무 힘에 부친다. 얼마나 더 나이를 먹으면 이토록 괴롭게 하는 상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과연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을 살기 위해 힘을 낼 수밖에 없다.

 

 

장현정  ----------------------------------------------------

   서울예대 극작과 졸업,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방송문예학과 졸업, 《수필과비평》(2011)으로 등단, 구성작가/화면해설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