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장수 아저씨를 처음 대면하던 그때처럼 훈훈한 봄바람이 화사한 벚꽃을 분분히 날리고 있다. 누군가, 사과장수의 축 처진 어깨에 ‘장사의 신’이란 날개를 달아줄 수는 없을까. 화창한 봄날, 꽃 같은 환상에 잠시 빠져보는 것이다."
꿀사과 장수 - 박종철
사람이 성장하는 데는 주위 환경이 큰 몫을 하게 된다. 장사를 하는 데도 이와 유사한 점이 있다. 사람에게 환경이 중요하듯이 장사도 목이 좋아야 번창할 수 있다. 사람들이 붐비고 시선을 끌 수 있는 장소에 따라 흥하고 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내외가 살고 있는 아파트 후문 도로변에 타이탄 한 대가 머물고 있다. 가판대에 쌓아올린 동글동글한 사과들이 개구쟁이들처럼 금세 대굴대굴 구를 것만 같고 바구니에 담긴 빨간 딸기들이 갓 피어난 꽃처럼 생기롭다.
가도의 벚꽃이 눈부시게 꽃 잔치를 벌이던 날, 타이탄 꽁무니에 ‘성주 꿀사과’란 선명한 간판으로 사과장수와 첫 만남이 있었다.
300세대 남짓한 아파트 주민을 상대로 노점상을 연 것이 석연치 않다는 생각이 처음부터 들어서인지 그 앞을 지날 때마다 눈길이 쏠리고 걱정이 따랐다.
아파트 주민들은 대부분 승용차로 대형마트에서 일상용품이나 식료품을 구입하기 때문에 노점상 과일이 눈에서 멀어지기 마련이다.
그런 사정과는 아랑곳없이 판매대에는 철따라 딸기며 토마토, 수박, 참외, 귤, 오렌지 등이 번갈아 등장한다. 사과는 연중 판매대에서 자리를 잡고 주장 노릇을 하고 있다.
과일장사는 생선장사와 진배없다. 제때에 팔지 못하면 시들어버리고 병이 들기까지 하여 시간을 다투는 장사다.
사과장수 아저씨가 처음 노점상을 벌였을 때 퍽 낯설고 어설퍼 보였다.
50대 초반쯤 되었을까. 큰 키에 용모가 단정해 보였으나 웃음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굳은 표정이었다. 아마도 직장에서 조기 퇴직하고 난 후 생계수단으로 시작한 장사가 아닌가 싶었다.
우리가 필요한 과일은 노점상에서 사기로 작정하였으나 지나칠 때마다 손님이 보이지 않고 한산하기만 하여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시들어가는 과일처럼 생기를 잃어가는 아저씨는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판매대 옆에서 서성거리기도 하고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기도 한다. 그 후 햇내기 장사꾼은 시간을 죽이기 위해 판매대에서 운전석으로 옮겨 앉아 핸드폰과 친구가 되어가고 있었다.
장사꾼은 시름을 안은 채 해를 거듭하고 있었다. 요즈음은 운전석에 앉아 스마트폰에 머리를 박고 정신을 빼앗기고 있어 장사는 뒷전인 양 싶었다. 차창 앞에서 몇 번이나 손짓을 해야만 겨우 알아차리고 문을 열고 있으니 그나마도 장사 꼴이 말이 아니다.
긴 장마철은 공치는 날이요, 눈보라가 치는 겨울날에는 집안 신세요, 햇볕이 불덩이처럼 이글거리는 여름철에는 제 살을 물려서 폐기처분이요, 그나마 손님의 발길이 뜸해서 근심이 꼬리를 물 것이다. 그러니 사과장수에게서 웃음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그른 일이렷다.
어두운 밤, 바다에 떠 있는 집어등처럼 불을 환히 밝히고 손님을 불러보지만 인적이 드물고 썰렁하기는 매한가지. 그러다 보니 그 앞을 지날 때마다 아저씨의 헛장사가 내게도 책임이 있는 양 괜스레 마음을 움츠리게 되는 것이다.
그동안 사다 먹은 사과에서 꿀맛을 맛본 적도 없다. 명색이 좋아 꿀사과 간판이지 맛있는 사과를 좌판에 올리지 못하였으니 그도 손님을 쫓는 요인이 아닐까. 판매전략 운운하는 것도 가당찮은 말이겠지만 그나마도 장사 목이 좋지 않으면 상품으로 승부를 걸어야 할 텐데 이도저도 아니니 안타깝기만 하다.
이골이 난 장사꾼처럼 친절과 웃음으로 손님을 끌어당기는 것도 아니고 본심으로만 가판대를 붙들고 있으니 세상인심이 어디 제 마음처럼 호락호락하던가.
근간에 사과장수 아저씨가 텅 빈 자리를 남긴 채 바람처럼 사라졌다. 행여나 하고 한동안 기다려보았지만 감감무소식이다. 아예 장사를 거두어 버렸다는 생각이 굳어진다.
사과장수 아저씨의 안부가 궁금하다. 오랫동안 버티다가 기진하여 스스로 가판대를 정리한 것 같아 안쓰럽다. 혹여 목 좋은 곳으로 옮겨가지는 않았는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동안 사람의 기척을 얼마나 애타게 기다렸을까. 얼마나 속이 문드러졌을까. 누군들 목 좋은 곳을 고를 줄 모를까. 밑천이 원수라 버젓하게 과일 상점을 차릴 수도, 목 좋은 곳에 터를 잡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오죽했으면 발길이 뜸한 한갓진 곳에서 몇 년을 버티었을까. 실패는 가난을 부르기도 하지만 새로운 기회를 잡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굶주림은 질병과 같은 고통이어서 누구나 경계해야 할 악몽인 것이다.
사과장수 아저씨를 처음 대면하던 그때처럼 훈훈한 봄바람이 화사한 벚꽃을 분분히 날리고 있다.
누군가, 사과장수의 축 처진 어깨에 ‘장사의 신’이란 날개를 달아줄 수는 없을까.
화창한 봄날, 꽃 같은 환상에 잠시 빠져보는 것이다.
박종철 -------------------------------------------
한국수필문학가협회 부회장. 영동수필문학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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