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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3년 6월호, 사색의 창] 호수탐방(3): 기른 정  - 박귀덕

신아미디어 2013. 7. 22. 08:39

"“지영아, 추운 겨울 동안 호수에서 잘 살아줘서 고맙다고 생각하면 안 될까? 엄마들은 자식이 잘살아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마음을 갖는단다. 너도 오리엄마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좋을 텐데. 오리는 집안에 갇혀 사는 것보다 넓은 자연의 품에서 사는 것을 더욱 좋아할 걸. 그들만의 세계에서 친구들과 잘 어울리며 건강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오리엄마가 바라던 일 아니었어? 이별이 섭섭하긴 해도 오리는 호수에서 살고 싶은 꿈을 꾸었을지도 모르잖아? 이곳에서 친구들과 같이 살 수 있게 해줘 고맙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오리들이 여기서 더욱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우리 기도하자.”라고 위로해 주었다. 아무 말 없이 내 입을 빤히 바라보는 손녀를 보면서 기른 정을 생각한다."

 

 

 

 

 


 호수탐방(3): 기른 정   -  박귀덕


   호수의 둑을 걸었다. 꽁꽁 얼었던 땅이 녹으니 질퍽해진 흙냄새가 고향집 고샅에 온 것 같아 정겹다. 신발에 흙이 묻어도 시멘트 길보다 폭신해서 걷기에 좋다. 길섶엔 들꽃과 잡초의 마른 잎이 이름표만 달고 있다. 꽃자리에 시선을 내려놓고 지난여름의 이야기를 듣는다. 무릎이 시큰하여 걷기를 멈추고 의자에 걸터앉았다. 나무그늘은 없어도 앉을자리는 편하다. 까칠한 노인의 손등에 바셀린을 발라 놓은 듯 퍼석하던 나뭇결이 촉촉해졌다. 봄이 오면 고목에도 잎이 돋아나 한여름의 뜨거운 햇볕을 가려 주고, 잎에서 놀던 시원한 바람도 선물해 주리라는 기대도 있다. 유난히 추웠던 지난겨울, 독감에 시달리며 한 달이 넘도록 문밖 출입을 꺼렸었는데 오늘 부는 바람은 매서운 기운을 놓아 버렸다. 살랑 바람에 햇볕이 따사로운 것을 보니 저만치에 봄이 오고 있나 보다. 품안으로 파고드는 바람을 살포시 안아본다. 풀꽃들의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풍암호수공원에서 손녀와 같이 맞이하는 봄이라서 좋다.
   호수에 오리들이 자맥질을 하고 있다. 손녀가 기르던 오리도 그 무리에 섞여 놀고 있다. 작년 봄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 교문에서 노오란 새끼오리를 보았다. 엄마를 졸라 두 마리를 구입했다.
   정관이 오빠는 까만 양복에 하얀 나비넥타이로 단장한 오리, 동생 지영이는 노란 새끼오리를 길렀다. 노란 오리는 성장하면서 백조처럼 하얀 옷으로 갈아입었다. 잡식성인 오리는 별 탈 없이 건강하게 잘 자랐다. 수영을 좋아해서 대야에 물을 담아주면 두 마리가 재미있게 놀았다. 조금 더 성장하니 노는 공간이 좁아 큰 널벅지로 옮기고, 그 다음은 목욕탕 한곳을 전용으로 사용했다. 여름날은 목욕탕이 좁다고 천방지축으로 온 집안을 휘젓고 다녔다. 자유분방한 오리들은 더 이상 집 안에서 감당하기가 어려워 그들이 살 곳을 알아봐야 했다. 이곳저곳을 다니며 오리가 살 수 있는 곳을 살펴보던 중, 풍암호수에서 평화롭게 노는 오리들을 보았다. 호수 주변에 오리들이 잠들 수 있는 집도 보이고, 창포와 부레옥잠, 갈대와 연꽃, 이름 모를 풀뿌리들이 많이 있어 먹이가 풍부하며, 오리들을 돌보는 누군가의 손길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이곳에 풀어주면 친구들과 어울려 잘살 것 같았다. 좋은 날을 잡아 이주시켰다.
   애완용 오리라서 다른 오리에 비해 체격이 작다. 덩치 큰 오리에게 괴롭힘을 당하면 어쩌나, 무리에서 왕따를 당하면 어쩌나, 물에서 놀다가 산기슭에 올라와 잠시 쉬고 있을 때나 잠깐 낮잠 자고 있을 때 삵이나 들고양이의 습격을 받으면 어쩌나 걱정되어 자주 찾아보았다고 한다. 손녀가 둑에서 오리를 부르며 인사를 한다.
   “지영아, 네가 기른 오리를 어떻게 알아보지?”
   “할머니, 제가 기른 오리는 집에서 기르는 오리라서 여기서 사는 다른 오리보다 약간 작고, 어렸을 때부터 같이 자란 두 마리가 함께 다녀요.”
   그 말을 듣고 보니 여러 마리의 오리들 중 둘이 같이 노는 모습이 눈에 띈다.
   “그런데요, 할머니 오리가 불러도 안 와요.”
   가끔 호수를 찾아와서 오리에게 인사말을 건네도 길러준 주인을 잊었는지, 아니면 삐쳤는지, 모른 척 시치미를 뗀다고 섭섭해한다.
   “지영아, 추운 겨울 동안 호수에서 잘 살아줘서 고맙다고 생각하면 안 될까? 엄마들은 자식이 잘살아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마음을 갖는단다. 너도 오리엄마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좋을 텐데. 오리는 집안에 갇혀 사는 것보다 넓은 자연의 품에서 사는 것을 더욱 좋아할 걸. 그들만의 세계에서 친구들과 잘 어울리며 건강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오리엄마가 바라던 일 아니었어? 이별이 섭섭하긴 해도 오리는 호수에서 살고 싶은 꿈을 꾸었을지도 모르잖아? 이곳에서 친구들과 같이 살 수 있게 해줘 고맙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오리들이 여기서 더욱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우리 기도하자.”라고 위로해 주었다. 아무 말 없이 내 입을 빤히 바라보는 손녀를 보면서 기른 정을 생각한다.

 

 

박귀덕  ---------------------------------------------
   ≪수필과비평≫ 등단.  수필집: ≪삶의 빛 사랑의 숨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