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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3년 3월호, 방송인 장기오의 일과 삶] 고독한 양치기 - 장기오

신아미디어 2013. 4. 19. 08:36

"그는 잡을 수 없는 별을 잡으려 했던 돈키호테였던가? 아니면 시대와 타협하지 못한 불우한 연출가였던가?  나는 그가 추구했던 이상은 그리 부럽지는 않았지만 그가 추구했던 집념만은 부럽다."

 

 

 

 

 

 

  고독한 양치기 장기오


   그는 잉그마르 베르히만(Ingmar Bergman)을 존경했고 루이 말(Louis Malle) 감독의 미학을 입에 달고 다녔다. 우리들 모두가 그의 연출이론에 주눅이 들었고 멀지 않아 우리 드라마사의 명작이 그의 손에 의해 탄생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그가 만든 드라마가 작품성 면에서나 시청율 면에서나 세간의 화제가 된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러함에도 그는 언제나 당당했다. 자신의 작품 한 커트, 커트를 설명하면서 작품의 그런 의미들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는 대중의 우매함을 질타하고 때가 되면 이런 작품들이 훨씬 더 각광을 받을 수 있고 앞으로의 TV드라마도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아주 평범한 장면인데도 그 의미가 굉장했고 같은 연출자인 우리들도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에서는 그는 조목조목 의미를 부여했고 고개를 갸우뚱하면 그는 우리들의 무지와 천박함을 비웃었다. 그러나 나는 그의 그런 해석에 동조할 수가 없었다. 실험정신은 존중되어야 마땅하지만 드라마의 기본연출조차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면서 세계적인 거장의 작품을 전범으로 삼는다는 것은 어쩐지 겉멋이 들어보였고, 상식적으로 이해되지도 않은 전위적이고 난해한 작품들을 ‘위대한 작품’ 운운 하는 것은 지적 허영이나 자기과시로 비쳐졌다. 그리고 일반의 보편적 정서에 혼란을 주거나 지나치게 작위적인 해석을 요구하다든지 하는 따위는 대중문화 아이콘으로는 가당치 않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인정하는 연출자다운 연출자는 선배 K다. K도 그와 비슷한 경향을 견지하고는 있었지만 K의 연출은 그보다 의미전달이 보다 확실하고 미학은 대체로 사실적인 바탕 위에서 구사되었다. 그는 K의 연출을 본보기로 삼았다. 그래서 그런지 그 둘은 항상 어울려 다녔다. 작품에 대한 해석 같은 걸로 가끔 논쟁을 하기는 했지만 그는 항상 K의 말을 진지하게 경청했다.
   그러나 K의 작품은 늘 화제의 중심에 있었지만 그의 작품은 그리 주목을 받질 못했다. 그러나 우리는 믿었다. 비록 그의 작품경향에는 동조할 수는 없었지만 때가 되면 그의 말대로 정말 거창한 작품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세월이 흘렀고 연륜도 쌓여 중견이 다 되었는데도 그의 작품은 여전히 그만그만했다. 아니 아슬아슬했다. 그가 전범으로 삼았던 K는 확고한 중견 연출자의 자리를 굳혀가고 있었다. 그러자 어느 날부터인지는 모르지만 그의 드라마가 이해부득의 수준으로 치달았다. 마치 전위 드라마를 보는 듯했다. 그럴수록 그의 고집은 더욱 단단해져갔다. 남의 말을 듣지 않았다. 점점 외톨이가 되어갔으며 제작에서도 소외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그즈음을 기점으로 그가 한동안 존경했던 K에게도 비판의 날을 세우기 시작했다. K가 없는 술자리에서 K의 연출을 비판하는 일이 종종 있었고 급기야는 K의 연출보다는 자신의 연출이 한 수 위임을 역설했다. 그러나 우리들 누구도 그의 연출이 탁월하다고 인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의 우월감이 이제는 과대망상으로 발전했다고 수군거렸다.

 

   그런 어느 날 그가 드디어 사고를 쳤다.
   오랜만에 제작을 맡은 그는 한껏 고무되었다. 기획단계에서부터 작가와 합숙을 하며 완성도 높은 원고를 위해 노력했으며 장소헌팅을 위해 통상보다 더 많은 날들을 지방 이곳저곳을 둘러보기도 했다. 대본이 나왔을 때 우리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우리가 지금까지 제작하고 방송해 오던 드라마 패턴이 아니었다. 무엇이 어떻게 진행되는 건지 이해가 안 되는 ‘스토리 부재’의 드라마였던 것이었다.
   대본심의에서도 그런 점이 지적이 되었고 간부들도 우려를 표명했다. 그러나 그의 의지는 확고했다. 현대인의 소외와 고독을 심리적 기법으로 풀어가는 드라마임을 강조하면서 두고 보라며 큰소리를 쳤다. 사실 드라마제작은 연출자의 능력과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다. 동시에 그 결과도 전적으로 자신의 몫이다. 몇 번 성공하면 메이저 대열에 들지만 거듭 실패하면 삼류가 된다. 드라마는 자신의 명예를 걸고 제작한다.
   촬영이 시작되었다.
   그는 잠을 자지 않았다. 깊은 밤중에 스태프들을 차례로 자기 방에 불러 작품에 대해 이것저것 지루하게 설명하고 준비를 지시했다. 자연히 스태프들도 잠을 자지 못했다. 촬영 내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런 일들이 벌어졌다. 아주 일상적인 연기인데도 그는 NG를 내고 신경질을 내며 연기자를 다그쳤고 사소한 일에도 육두문자를 쓰며 스태프들을 몰아붙였다. 스태프 중에는 그보다 나이도 많고 경력도 수월찮은 사람들이 많다. 역할이 스태프일 뿐이지 작품을 보는 눈도 탁월한 사람이 많다. 제작현장의 분위기가 싸늘했다. 스태프 모두가 연출자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몸을 숨기는 등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상부에 보고가 들어갔고 일부 스태프들은 교체해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팀워크가 흩어졌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촬영하다가 갑자기 NG를 내고 잠시 무언가를 심각하게 생각하더니 조연출을 불렀다.
   “이봐, 헬리콥터 한 대 불러야 되겠어.”
   조연출은 농담하는 줄 알고 허허 웃었다.
   그러자 그가 벌컥 화를 내며
   “이 자식이 웃어! 너 연출을 우습게 보는 거야?”
   비로소 심각함을 깨달은 조연출이 정색을 하면서
   “아닙니다. 헬기는 택시 부르듯 부를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이 자식이, 부르라면 불러! 헬기 올 때까지 촬영중단!”
   하고는 버스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조연출은 즉각 상부에 보고했다.
   “연출자가 이상합니다.”
   “철수해!”
   그는 곧바로 병원에 입원했다. 얼마 후 그는 복귀했지만 그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서 떠돌았다. 말수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연민이 갈 정도로 외로워 보였다. 모두가 떠나버린 언덕에 혼자 남은 고독한 양치기 같았다. 그는 끝내 세인들에게 회자되는 대표작 한 편 남기지 못하고 IMF때 명예퇴직했다.
   그는 잡을 수 없는 별을 잡으려 했던 돈키호테였던가? 아니면 시대와 타협하지 못한 불우한 연출가였던가?
   나는 그가 추구했던 이상은 그리 부럽지는 않았지만 그가 추구했던 집념만은 부럽다.

 

 

장기오  ------------------------------------------
   KBS 大PD, 드라마제작국장 역임, TV문학관 <금시조>,<홍어> 등 47편의 드라마 연출, ≪현대수필≫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국제펜클럽 회원,  수필집: ≪사라지는 것은 시간이 아니다, 우리다≫, ≪나 또한 그대이고 싶다≫,  기타: ≪TV드라마 바로보기, 바로쓰기≫, ≪드라마 연출론≫, ≪장기오의 드라마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