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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3년 2월호, 지상에서 길 찾기] 소리 없는 대화 - 변숙영

신아미디어 2013. 3. 13. 17:35

"요즈음은 학교 가는 아이의 얼굴을 두 손으로 잡고, 두 눈을 똑바로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약속을 한다. 그 말없는 대화 속에는 수많은 약속이 전제되어 있다. 그리고 힘찬 걸음으로 한발 한발 내딛는 아이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따뜻해진다."

 

 

 

 

 

  소리 없는 대화  변숙영


   봄을 기다리는 마음은 늘 가슴을 설레게 한다. 밤사이 내린 비가 먼지 낀 유리창을 깨끗이 씻어주고 있다. 겨우내 움츠렸던 봄을 대지 위에 살며시 내려놓으려 한다.
   저만치서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어디에서 날아왔는지 굴뚝새 한 마리가 짝을 찾아다니는지, 이리저리 벌거벗은 나뭇가지 위를 기웃거리며 조잘댄다.
   우리의 메마른 가슴속에 단비를 내려주셨던 한 스승께서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나셨다. 저서를 통해 많은 가르침을 받았었는데, 영원한 침묵 속에 그 누구도 깨워드릴 수 없었나 보다.
   강원도 산골 오두막집, 화전민이 살다가 버리고 간 집을 손수 수리하여 보금자리를 만들고, 도심과 멀어진 삶 속에서 ‘무소유’를 실천하며 사시다 육신의 병을 어쩌지 못하고 그대로 떠나셨다. 스님께서는 무소유 속에 많은 소유를 지니셨던 분이기도 하다. 그것은 자연의 섭리와  살아 숨 쉬는 모든 생명들과 함께 소통하며 사셨기 때문이다. 혹여 늦잠이라도 들라치면 다람쥐나 청설모가 내려와 문을 박박 긁으며, 아침잠을 깨워주었다고 한다. 산속에 혼자 있는 나에게 이런 친구들의 배려는 눈물겹도록 고마운 일이 아닌가, 하시며 감사한 마음에 늘 먹이를 챙겨 주셨다고 했다. 사람과 함께 지내야만 외롭지 않은 것은 아닌가 보다. 살아있는 동식물과 소리 없는 대화를 주고받으며, 몸속에 들어온 암까지도 나와 함께함을 거절하지 않았다. 잠 속에 기침이 찾아오면 나를 깨워 정진하게 하니, 이 또한 감사하다고 하셨다.
   스님께서는 자연의 순리에는 어떤 것도 용서가 되지만, 그 자연을 파괴하고 말없는 생명들의 죽음에는 많이 슬퍼하고 안타까워하셨다. 이 지구상에는 인간보다도 더 많은 생물이 존재한다고 한다. 인간이라는 특권을 지녔다고 해서 자연을 해치고, 살아있는 생명을 마구잡이로 죽인다면 언젠가는 다시 돌려받는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하셨다.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위해 세상을 살아가야 한단 말인가, 잠깐만이라도 뒤돌아보며 생각해 볼 일이다. 심지어는 인간이 좋지 못한 환경에서 자랐다 하여 자포자기하고,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해치고, 오랏줄에 묶여 끌려가는 어리석은 청년을 TV에서 보면서 가슴 한쪽 아픔과 두려움을 느낀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미와 떨어져 살아야 하는 어린 손자녀석들을 기르면서 과연 어떻게 훈육을 시켜야 올곧게 살아갈까 생각하면 때로 가슴이 철렁해진다. 학교 교육도 중요하지만, 가정교육이 더 필요한 실정이 아닌가! 때로는 아이들이 거짓말을 해서 매로 다스리기도 하고, 멍이든 종아리를 어루만지며 소리 없이 울기도 했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까만 눈동자를 보면 어느새 시름을 잊는다.
   요즈음은 학교 가는 아이의 얼굴을 두 손으로 잡고, 두 눈을 똑바로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약속을 한다. 그 말없는 대화 속에는 수많은 약속이 전제되어 있다. 그리고 힘찬 걸음으로 한발 한발 내딛는 아이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따뜻해진다.
   살아있는 생명들을 아끼고 사랑하며, 마음속에 빗장을 풀어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것만이 교훈을 남기고 떠나신 스승의 뜻이 아니겠는가. 종교를 떠나서 글을 쓰는 한 사람으로서 한자 한자 책을 통해 내 머릿속에 들어온 많은 이야기들을, 나는 그들과의 보이지 않는 약속을 지키고 싶다. 또한 나를 통해 세상에 갓 태어난 연약한 글의 씨앗들, 열매 맺은 홀씨 되어 훨훨 날아가 촉촉한 옥토에 뿌리 내리며 튼실한 열매를 맺었으면 좋겠다.
   세상은 참으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이 따스한 봄날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세상 어디에도 없는 행복이 내게 있음을 깨우치게 한다.
   공짜로 누리는 많은 것들을 우리는 그 고마움을 모르고 지나가기 쉽다. 따스한 햇살, 맑은 공기, 시원한 바람, 물소리, 어쩌다 지나가며 지저귀는 새의 노랫소리, 이 모든 아름다운 소리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끝없이 베풀기만 하는 대자연에게 감사할 줄 알고 살아가야겠다. 자연이 때로는 재앙을 주어 가슴 아프게도 하지만, 그래도 자연은 우리를 용서하고 치유해준다. 거스르지 말고 살라는 법정스님의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며, 오늘도 살아있는 모든 생명들에게 소리 없는 사랑의 메시지를 띄운다.

 

 

변숙영  --------------------------------------------
   ≪수필과비평≫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