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의 노력이 ‘나 혼자만의 것이냐?’는 변명거리를 가지고 아내를 이해시키려 했고, 내가 고생하는 만큼 아내가 고생하는 것도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한 나에 대해 아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내가 무엇을 가장 아쉬워하고 있는지를 생각하지 못했다. 다시 말해 내 욕심이 앞서서 아내의 고충이나 처지는 언제나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다."
부부로 산다는 것 - 박완규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람마다 크고 작은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누구나 자기중심적인 사고와 이기적인 생각에 젖어서 살아가게 마련이다. 남자나 여자나 혹은 애나 어른이나 이것에 대해서는 예외가 없다. 그런 가운데 남자에게 그런 증상이 더 심한 것 또한 분명하다. 연애시절에는 아내가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 다 천사 같았다. 그러나 그 천사와 오랫동안 살다보면 내가 천사와 사는 것이 아니라 호랑이와 함께 살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아할 때가 있다. 그러나 나의 이러한 표현은 아내에 대해 최대한의 애정과 예의를 갖춰 하는 말임을 이해해 주길 바란다. 사실 그러하다. 한 집에서 생활을 하다보면 아내의 좋은 점보다는 그렇지 않은 점이 더 자주 눈에 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남편인 나에게만 느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허점투성이인 나와 살을 부비며 사는 아내도 차마 말은 안 하지만, 나에 대한 더 많은 것을 느끼며 살고 있을 것이다. 생판 모르는 남남끼리 만나 부부로 한 집에서 살다보면 상대방의 희생적인 모습은 당연하게 여기고, 자잘한 결점이 더 자주 더 많이 보이는 법이다. 상대가 나를 따뜻하게 해주었던 말보다는 나에게 상처를 입힌 말들이 더 오랫동안 기억 속에 똬리를 틀고 남아 있게 마련이다. 결혼 초에 나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못다 한 고시공부를 계속해야 한다며 가정 일에 신경을 많이 쓰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아이들 키우는 일, 집안의 대소사 챙기는 일은 고스란히 아내의 몫으로 돌아갔다.
나는 나의 노력이 ‘나 혼자만의 것이냐?’는 변명거리를 가지고 아내를 이해시키려 했고, 내가 고생하는 만큼 아내가 고생하는 것도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한 나에 대해 아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내가 무엇을 가장 아쉬워하고 있는지를 생각하지 못했다. 다시 말해 내 욕심이 앞서서 아내의 고충이나 처지는 언제나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다.
이제 나도 아내도 나이를 먹었다. 젊은 시절을 고생으로 다 보내고 우리는 이렇게 나이를 먹었다. 그렇지만 아내의 고생은 지금도 예전과 다를 바 없다. 하나의 목표가 완성되면 새로운 목표를 다시 정해 밀고 나가는 나의 별난 성격 탓이다. 아내는 젊고 고운 시절을 내 뒷바라지로 다 날려 보냈다. 그러면서 대가를 바라거나 억울해하지도 않는다. 당연한 일인 양 그저 묵묵히 남편을 위해, 아이들을 위해 땀 흘렸을 뿐이다. 그러한 아내가 요즘 어깨가 결리고 아프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래서 어제는 무슨 선심이나 쓰는 듯 아무 말 없이 아내의 어깨를 주물러 주었다. 아내는 고개를 숙인 채 감격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참 교활한 재주꾼이다. 당연한 일을 하면서도 아내에게 감동을 주니 말이다. 어느 날 내가 설거지라도 하는 날에는 아내의 감동은 배가 된다. 그래서 나는 때에 따라서는 착한 남편으로 둔갑을 하기도 한다.
우리 부부는 맞벌이부부다. 낮에 똑같이 고생을 하고 똑같이 퇴근을 하고서도 나는 소파에 앉으면 그것으로 나의 하루는 끝나는 것이지만, 아내는 밀린 빨래에다 자식들의 뒷바라지가 다시 기다렸다는 듯이 밀어닥치니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런 희생을 귀찮아하지 않고 고된 생활 속에 묻혀 살아온 아내가 지금 내 곁에 있다는 것에 나는 새삼 감사한다.
두 달 전부터 나는 일요일 저녁이면 아이들 교복을 다림질한다. 어느 일요일 저녁에 아내는 아이들 교복이며 내 와이셔츠며 밀린 다림질감을 앞에 두고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고 있는 것을 우연히 목격했다. 그때 나는 지금 이 시간 이후부터 집안의 다림질은 내가 한다는 약속을 아내와 아이들 앞에서 했다. 지금 내가 생각해도 그때의 약속은 대단한 용기였다. 군대를 갔다 온 남자라면 다림질 정도는 기본 아닌가. 그날 이후 아이들 교복은 빳빳한 칼 주름으로 바뀌었다. 다리미에 아빠의 힘이 팍팍 들어가니 주름은 마땅히 칼 주름이 될 수밖에는 없었다. 누구보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했다. 다림질을 하면서 내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도 많았다. 어렸을 적 귀엽기만 하던 그 녀석들이 어느새 이렇게 자라서 아비만큼 큰 바지를 입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에 나는 피로에 앞서 감격한다. 내가 다려준 이 교복을 입고 아이들이 씩씩하게 학교에 간다는 생각에 내 손에는 자꾸만 힘이 들어갔다. 자상한 남편, 따뜻한 아비가 된다는 것은 반드시 크고 거창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나는 일요일 저녁마다 아이들 바지를 다림질하며 알게 되었다. 참 우습고 감격스러운 일이다.
박완규 ---------------------------------------
≪에세이스트≫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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