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수필과 비평/수필과비평 신인상 수상작

[수필과비평 2019년 7월호, 제213호 신인상 수상작] 늙은 난 - 강성관

신아미디어 2019. 7. 5. 17:31

"난을 가까이에서 보니 내 모습과 어딘가 닮은 곳이 있다. 탄력을 잃어버린 거친 피부와 힘없이 처진 어깨 그리고 상처투성이가 된 내 마음과 닮았다. 지금까지 우리 곁에 오랫동안 같이 있어 준 것만으로도 고마움을 느낀다. 이제 가게를 접으려는 우리 마음을 난은 이미 알고 있는 것 같다. 가게와 운명을 같이하려는 듯 비장한 어미 소의 모습을 하고 있다. 우리는 서로를 그냥 바라만 볼 뿐 말이 없다. 서산으로 넘어가는 석양을 바라보며 이심전심以心傳心의 미소를 보낸다."







   늙은 난     -   강성관


   주말이 되면 아내가 있는 가게로 향한다. 언젠가부터 나는 화분에 물을 주는 역할을 맡았다. 내가 가게 입구에 들어서면 화분들의 시선을 온몸으로 받는다. 맨 먼저 하는 일은 난 화분을 물속에 담가 놓는 것이다. 오늘따라 눈길이 가는 것이 하나 있다. 겨우 한 촉만 살아남은 쓸쓸한 동양란이다. 탁자 위에 볼품없는 화분을 얹어두고 가만히 눈 맞춤을 한다. 오전부터 비가 내리는 날씨 탓인지 만감이 교차한다.
   강산이 두 번 바뀌는 세월이 흘렀다. 가게를 개업할 때 선물로 받은 화분이 아직도 여럿 남았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애착이 가는 것은 늙고 깡마른 난이다. 투박한 서양란에 비하면 동양란은 몸매가 매끈하고 길쭉한 모습이 사대부집 아기씨처럼 고고하고 품격이 있다. 이젠 세월의 무게 탓인지 예전의 아리따운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잎은 갈라지고 검버섯이 돋았다. 허리가 구부정한 난을 보고 있자니 고단한 삶을 살다 저세상으로 떠난 할머니가 생각난다.
   할머니는 졸수卒壽를 넘기고 두 해를 더 사셨다. 할머니의 삶을 돌아보며 사람이 너무 오래 사는 것도 그다지 좋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식이 저세상으로 먼저 가는 험한 모습을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오형제 중의 넷째다. 한 분은 젊은 나이에 전쟁터에서 전사하였다.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위로 두 분도 환갑을 보낸 후 지병으로 생을 마감하였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할머니는 차마 못 볼 것을 보고 하늘나라로 가셨다. 자식이 먼저 저세상으로 가면 부모는 자식을 가슴에 묻는다고 한다. 할머니는 생전에 아들 넷을 먼저 저세상으로 떠나보냈다. 당신은 어느 날 계단에서 넘어져 다친 후 곡기穀氣를 끊었다. 그리고 막내삼촌 한 분만 남겨놓은 채, 한 많은 생을 마감하였다. 맏아들인 큰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살림살이가 변변찮은 종손자의 집에 오랫동안 얹혀사는 것을 못내 부담스러워하였던 것 같다.
   할머니도 친정에서 사랑을 독차지하던 유년 시절과 꽃 같은 나이의 젊은 시절이 있었을 터이다.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행복해하던 시절도 있었을 것이다. 의지하고 살던 남편을 일찍 저세상으로 떠나보내고 뒤이어 네 아들을 당신보다 앞서 먼저 보냈다. 나는 그 허망했을 할머니의 속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할 것 같다. 당신의 아들이 남겨놓고 간 병아리 같은 손자녀석들이 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정화수를 떠놓고 손이 닳도록 치성을 드렸을 것이다. 세상에 오는 순서가 있듯이 가는 순서도 있으면 좋으련만. 우리 인생에서 그러하지 못한 경우가 있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무표정한 얼굴이다. 반응이 없다. 봄이 와도 꽃을 피우지 않는다. 이제, 꽃대를 밀어 올릴 힘조차 없나 보다. 종족 보존 본능조차도 잃어버린 듯하다. 오늘따라 볼품없는 늙은 난이 무척 애처롭다. 예전의 그 무성하던 잎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주름이 깊게 팬 할머니를 보는 듯하여 쓸쓸함이 묻어나온다. 요즈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기껏해야 일주일에 한 번씩 화분에 물을 주는 것뿐이다.
   청담 스님은 한 시대를 풍미하다 간 유명한 분이다. 조계종 총무원장 자리를 내려놓고 산사山寺에 은거隱居할 때 당신은 지인과의 편지글에서 자신을 ‘늙은 중’이라고 쓴 것을 책에서 읽은 기억이 있다. 이제는 비록 깡마르고 볼품없는 난이지만 강산이 두 번 바뀌는 세월 동안 우리 가게를 꿋꿋하게 지켜주었다. 예전의 고고하고 품격 있던 모습을 떠올리며 나는 그를 ‘늙은 난’이라 부른다.
   구제역이 창궐하던 때로 기억된다. 가슴 뭉클한 신문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수의사가 살아 있는 소를 안락사 시키기 위해 약물 주사를 놓는다. 어미 소가 오랫동안 쓰러지지 않고 비장한 모습으로 새끼에게 젖을 물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송아지에게 한 모금의 젖이라도 더 먹이려고 애를 쓰는 모습에 감명을 받았다. 어미 소의 지극한 모성애를 직접 눈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코끝이 찡해져 온다.
   난을 가까이에서 보니 내 모습과 어딘가 닮은 곳이 있다. 탄력을 잃어버린 거친 피부와 힘없이 처진 어깨 그리고 상처투성이가 된 내 마음과 닮았다. 지금까지 우리 곁에 오랫동안 같이 있어 준 것만으로도 고마움을 느낀다. 이제 가게를 접으려는 우리 마음을 난은 이미 알고 있는 것 같다. 가게와 운명을 같이하려는 듯 비장한 어미 소의 모습을 하고 있다. 우리는 서로를 그냥 바라만 볼 뿐 말이 없다. 서산으로 넘어가는 석양을 바라보며 이심전심以心傳心의 미소를 보낸다.

  

 


강성관  --------------------------------------------- 

   대구수필문예대학 수료,  대구광역시청 명예 퇴직.
 



당선소감


   초여름 보슬비가 촉촉하게 내리는 날 기쁜 소식을 듣습니다. 무심하게 내리는 비마저도 저를 축복해 주는 듯합니다.
   글쓰기가 일천하던 제가 우연히 발길이 닿은 곳이 대구 수필문예대학이었습니다. 수필을 배우고 차츰 글을 익혀갈수록 조심스럽고 어려운게 수필쓰기라는 걸 실감하였습니다. 저에게 글쓰기 과정은 무심히 지나쳐 버린 사소한 일상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를 매기며, 영원히 아물지 않을 것만 같던 상처를 어루만지고 치유하는 약이기도 했습니다.
   이번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이라는 관문에 발을 들여놓으니 한편으로는 부끄럽고 두렵고 설레는 마음이 뒤섞입니다. 열과 성을 다해 글을 쓰면서 자아를 뒤돌아보며 새롭게 성찰하는 계기로 삼겠습니다.
   부족한 저의 글을 뽑아주신 수필과비평사 관계자 선생님과 심사위원 선생님께 고개 숙여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저를 수필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지도해 주신 선생님과 끝없는 응원을 보내주신 문우들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