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one more, one more를 그렇게도 외쳐대더니 정작 하늘에 대고 고함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그가 삼키고 가슴속에 묻어 둔 말. 한 번만 더, 제대로 한 번만 더 살아보고 싶어. 어젯밤 꿈속에 녀석이 나타나, 환희처럼 내게로 달려오는 것이 아닌가."
당갈 - 이순남
‘당갈’은 레슬링 경기라는 뜻을 가진 인도 말이다. 딸을 레슬링 선수로 키우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친 한 아버지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제목이다. 시골 마을에 사는 마하비르 싱 포갓은 젊은 시절, 인도 레슬링 챔피언이었지만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국가대표 금메달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레슬링을 포기한다. 결혼 후 아들을 낳아 자신의 못다 한 꿈을 이루려 하지만 줄줄이 딸만 넷이 태어나면서 좌절한다. 그러던 어느 날 큰딸 기타와 둘째 딸 바비타가 남자아이들을 때려 가볍게 제압한 것을 보고 생각이 바뀐다.
“길이 없으면 만들어 가자.”라고 생각하는 그 아버지는 여성에 대한 불평등이 심한 인도에서 딸을 데리고 레슬링을 시작한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멸시와 조롱을 받으면서도 딸에게 레슬링 훈련은 계속된다. 여자가 상대 남자와 몸을 붙이고 하는 레슬링은 남녀 차별이 유별한 인도 사회에서 엄청난 제약이다. 딸의 훈련을 위해 아버지는 딸의 상대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사촌 오빠 옴카르에게 레슬링을 가르친다. 딸들의 훈련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가리지 않고 시도하는 아버지이다.
영화를 보는 두 시간 반 동안 실전처럼 공감할 수 있어 지루함을 느끼지 못했다. 마하비르 싱 포갓은 딸들이 또래 남자를 업어치기해 꼼짝 못하게 하는 장면은 나에게도 통쾌하기 짝이 없었다. 딸들의 긴 머리가 훈련에 방해가 된다고 하여 머리를 잘라 버린다. 여자아이의 머리가 더벅머리로 변했다. 머리만큼은 자르기 싫다고 아버지에게 눈물을 흘리며 사정하는 딸을 보면서 문득 우리 아이들이 떠올랐다.
남편은 아이들을 이발소로 데려가서 아이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스포츠 머리로 깎아버리곤 했다. 첫째와 둘째는 미용실에서 멋내기 머리로 깎고 싶은데 아버지 마음대로 스포츠머리로 깎을 때마다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나는 중고등학교에 들어가면 원도 없이 스포츠머리로 깎아야 하는데 초등학교 다닐 때만이라도 아들이 원하는 스타일로 깎아주자고 설득해도 남편에게는 소 귀에 경 읽기였다. 중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방학이 시작되면 머리염색을 하고 멋을 부리는 친구들이 있었다. 또 친구 따라 머리염색이 하고 싶은 눈치였다. 아버지를 졸랐지만 어림도 없었다. 우리 아이들과 처지는 다르지만 그 마음은 같으리라.
영화에서 새벽 5시에 일어나서 훈련하는 것이 힘든 자매는 아빠가 맞춰놓은 알람시계를 돌려놓아 훈련에 빠지는 등 게으름을 피울 때도 아들 생각이 났다. 영화에서는 운동이지만 유독 둘째 아들은 공부하기가 싫어 게으름을 부리다가 아버지에게 야단도 많이 맞았다. 완고한 아버지의 뜻은 따라야겠고, 공부하기는 싫고, 오죽했을까. 사춘기에는 반항도 했지만 그래도 잘 극복해준 것이 고맙다. 영화에서 혹독한 훈련을 하는 딸들을 보는 내내 눈시울이 젖었다.
어느 날 두 자매는 친구 결혼식에 초대받아 치장하고 나갔다가 아버지에게 들켜 혼이 난다. 아버지에게 혼이 나고 있는 큰딸 기타를 지켜보고 있던 신부는 오히려 감동의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한다. 인도에서는 딸을 낳으면 집안일과 요리만 가르쳐 시집보내지 않느냐. 그런데 너희는 꿈과 희망이 있지 않느냐.”고 강압적일지언정 자식의 미래를 걱정해주는 아버지를 둔 기타를 부러워한다.
친구의 말을 들은 기타는 정신을 차린다. 자발적으로 훈련에 열성을 기울이자 기량도 높아지기 시작한다.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하면서 레슬링 선수의 길을 걷는다. 이런저런 어려운 여건에 부딪쳐 하나하나 극복하면서 말이다. 마침내 모든 금기를 깨고 철저하게 성 고정 관념을 뛰어넘는 혹독한 훈련을 한 결과 인도여성의 최초 레슬링 금메달리스트가 된다.
여성도 남성 못지않은 능력을 가지고 그 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히 자리매김할 수 있게 만든 아버지의 노력과 헌신이 눈물겹다. 인도뿐만 아니라 많은 나라에서 남성중심주의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을 한정 짓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남성과 여성을 넘어 모든 인간에게 사회의 당당한 일원이 된다는 것은 똑같이 중요하다.
어찌 보면 남성에도 역할의 제한은 주어지는 것이 아닌가, 남편은 아들들에게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과 남성사회의 일원으로서의 역할을 가르치고자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 역할 또한 가혹한 훈련과 엄격한 자기절제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지도. 다행히 아들들은 아버지의 속뜻과 사랑을 알았는지 사춘기가 지나자 공부도 열심히 하며 잘 자라 주었다. 참으로 고맙고 다행한 일이다.
“은메달을 따면 머지않아 사람들은 널 잊을 거야. 하지만 금메달은 다르지.”
마하비르 싱 포갓의 대사가 귓가에서 쨍쨍 울렸다.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로 박진감 있는 레슬링 경기는 극장 문을 나설 때도 ‘당갈, 당갈’이라는 중독성 강한 후렴구가 되어 내 귓가에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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