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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수필과비평』[2019년 3월호, 통권209호 I 사색의 창] 아버지의 병풍 - 안유환

신아미디어 2019. 4. 12. 10:08

"나는 그 방을 드나들 때마다 습관처럼 병풍의 잠언 첫 부분을 읽어본다. “몸가짐은 언제나 바르게 하고 높은 뜻을 품어야 한다.” 나는 주희의 잠언을 나름대로 받아들이며 아버님이 내게 병풍을 써주신 뜻을 생각한다."


 





   아버지의 병풍      -    안유환


1.
   결혼하고 나서 우리는 한동안 전셋집에서 살았다. 그때 아버지는 새로 만든 병풍 두 첩을 보내주셨다. 하나는 꽃과 새들이 그려진 ‘화조병풍’이고, 또 하나는 산수화가 그려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는 요즘처럼 아파트가 별로 없었고 옛날 집은 외풍이 심했다. 어릴 적에는 초저녁의 방바닥은 뜨거워도 자고 나면 머리맡에 둔 자리끼가 얼어있는 것을 보기도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병풍으로 그 외풍을 가려야 그런대로 따뜻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래서 잠자리 준비는 이부자리를 깔고 병풍을 두르는 것으로 완료되었다.
   “그건 내가 서예를 배우는 선생님의 그림이야!”
   아버님은 내게 주신 병풍이 소장할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은근히 자랑하셨다. 우리는 옛날처럼 그렇게 병풍이 필요하지는 않지만 아버님이 보내주신 것이기에 잠잘 때 그것을 머리맡에 둘렀다. 그러나 여러 번 이사를 다니면서 집이 좁을 때는 병풍을 둘 자리도 마땅치 않았다. 어떤 집에서는 처마끝에 달아낸 창고방에 병풍을 두었다가 빗물이 스며들어 얼룩이 지고 곰팡이가 피기도 했다. 차츰 아파트가 생겨나고 주택도 옛날처럼 외풍이 없었기에 병풍은 별로 쓰이지 않았다. 이사할 때 짐만 되던 병풍은 이리저리 훼손되어 결국 쓸 수 없게 되었다.
   아버님은 사군자四君子와 함께 서예를 열심히 하셨다. 고향집 2층에 있는 아버지의 서실은 언제나 붓글 연습지로 가득 차 있었다. 신문지는 여백이 거의 보이지 않고 마치 벼루처럼 새카맣게 먹으로 칠해져 있었다. 같은 획을 수없이 긋고 한 줄의 글을 쓰고 나서도 그 위에 몇 번이고 같은 글 쓰기를 반복하셨다. 아버지는 십 년쯤 지나서 ‘죽竹’을 두 폭 그려 액자로 만들어 형님과 내게 하나씩 주셨다. 그 액자는 지금도 우리 집 거실에 걸려있다.
   아버님은 동호인 서예전을 열기도 하고 ‘한일교류 서예전’에 참여하기도 했다. 나는 사진작가인 형님의 사진을 곁들이고 아버님의 서예 개인전을 열면 어떻겠느냐고 몇 차례 제안한 적이 있었다. 아버님은 그때마다 “아직 멀었다.”고 대답하셨다. 몇 년 후에도 그런 말씀을 드린 적이 있지만 아버님의 생각은 여전히 ‘아직 멀었다.’였다. 그때는 지금의 내 나이쯤 되셨지만 서예공부의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아버님은 그것을 즐기셨고 스승님의 가르침에 점점 가까이 다가가는 것에 참으로 보람을 느끼는 것 같았다.
   나는 아버님을 뵈러 갈 때마다 성경의 ‘시편 1편’이나 ‘고린도전서 13장’을 써주시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었다. 그러나 아버님은 나의 부탁에 대해서는 아무런 답을 주시지 않았다. 얼마 후에 나는 내가 얼마나 서예에 무지했던가를 깨달았다. 서예는 한글 서예와 한자 서예가 다르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기 때문이다. 아마 아버님이 나의 ‘한글 서예’ 부탁을 들어주시려면 적어도 십 년을 더 공부하셔야 했을 것이다. 법무사로 일하셨던 아버님은 여든이 넘어서도 새벽 6시면 일어나 서실에서 한 시간 붓글씨를 연마하시고 출근을 하셨다.
   그쯤에 아버님은 병풍을 만들 수 있도록 여덟 폭의 글을 내게 써 주셨다. 나는 그 두루마리를 받아 와서 다시 한 번 펼쳐보았다. 한지에 써진 글씨는 얼핏 연습하실 때의 것과 별로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가 아버님이 돌아가시기 3년 전이었다. 나는 병풍을 만들려고 표구점에 문의를 해보았으나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 소요되었다. 표구점에서는 두 폭으로 가리개를 만들 수도 있다고 말했다. 첫째 폭과 아버님의 낙관이 찍힌 마지막 폭으로 가리개를 만들면 아버님이 정성들여 쓰신 그 글의 뜻이 잘려나가 의미가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2006년 아버님이 미수米壽에 하늘나라로 떠나가시고, 1년 반이 지나서는 산수傘壽의 어머님도 아버님을 따라가셨다. 아버님이 주신 서예 두루마리는 내 서가의 맨 상단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2.
   병풍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것을 실천으로 옮기지는 못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웬일인지 나는 아버님이 몹시 그리워졌다. 어머님보다 아버님이 더 보고 싶은 느낌은 처음이었다. 아버님은 참으로 엄하신 분이라 어릴 적에는 가까이서 내 의사표시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월급봉투만 갖다 주시고 오랫동안 집에 오시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성년이 되어서는 아버지의 가슴속 깊은 사랑을 보게 되었다. 나는 결혼을 하고 나서도 계속 아버님의 도움을 받았으나 효도는 제대로 하지 못했다. 홀로 있을 때는 못 견디게 그립다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아버님의 사진을 가만히 쳐다본다.
   나는 아버님이 돌아가신 뒤 버려질 서예유품들을 우리 집으로 가져왔다. 뚜껑에 용이 새겨진 벼루 2개와 각각 모양이 다른 연적硯滴 3개, 30자루가 넘는 크고 작은 붓과 우산살 같은 2개의 붓걸이, 그리고 아버님이 쓰던 먹물병도 그대로 뒷방에 보존되어 있다. 처음에는 나도 아버님처럼 서예를 배워볼까, 생각했으나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말았다. 아버지에 대한 나의 그리움은 내가 아버님께 좀 더 잘해드리지 못한 아쉬움 때문인 것 같다. 아내와 함께 나름대로 효도하려고 애를 썼지만 아버님이 내게 베풀어주신 것을 생각하면 내가 부모님께 해드린 것은 태산 아래 조약돌 한 개만도 못할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서 내 눈길은 책장에서 아직까지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는 ‘두루마리’에 머물렀다. 지금 내가 아버님께 해드릴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정성들여 써주신 글을 아직까지 병풍을 만들지 않고 있는 것이 생전의 내 불효를 그대로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어느 날 집에서 멀지 않은 표구사를 찾아가 상당한 비용을 지불하고 병풍을 만들었다. 아버님이 우리 곁을 떠나시고 11년 만이었으니 얼마나 무심한 자식이었는지를 자책한다. 만들고 나서 다시금 아버님의 글을 보면서 ‘왕희지 필법과 조맹부체’라는 말을 떠올렸다. 표구를 만들기 전에는 ‘별로’였던 글씨가 만들어놓고 보니 그 어떤 사람의 글씨보다 우리 아버지의 글씨가 더 좋은 것 같았다.
   아버지가 두루마리에 동봉해주신 해설을 이제사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글은 중국 송宋나라 유학자 주희朱熹의 <경제잠敬齊箴>으로 다음과 같이 시작되고 있었다.


의관을 바르게 하고, 눈매를 존엄하게 하고正其衣冠 尊其瞻視
마음을 가라앉혀 가지고 있기를 마치 상제를 대하듯 하라潛心以居 對越上帝.
발걸음은 반드시 무겁게 할 것이며, 손동작은 반드시 공손하게 하라足容必重 手容必恭.
땅은 가려서 밟아, 개미집 두덩까지도 밟지 말고 돌아서 가라.擇地而踏 折旋蟻封
집을 나서면 손과 같이 단정히 하고 일을 할 때는 제사를 지내듯 하고出門如賓 承事如祭.
조심하여 혹시라도 안이하게 함이 없도록 해야 한다戰戰兢兢 罔敢或易…….


   주자는 본당 왼쪽에 있는 방을 경제敬齊라 부르고, 오른쪽 방을 의제義齊라 불렀다. 그는 이 잠언은 자신의 경제에 붙여두고 스스로를 경계했다고 한다.
   한자, 한자 글씨체를 들여다보며 나는 감탄을 자아냈다. 어떻게 저렇게 쓰실 수 있었을까. 그것은 아버님이 연습종이가 벼루바닥처럼 새카맣게 되도록 연마하신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처음에는 병풍을 펴보고 나서 보자기에 싸서 간직하려고 했다. 감탄을 연발하는 나의 모습을 옆에서 본 아내가 방에 펼쳐 세워놓고 보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아내의 말을 받아들여 탈의실 방에 병풍을 펼쳐놓았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그 방을 드나들 때마다 아버님을 뵙듯 병풍의 잠언을 살핀다.
   해가 바뀌고 설날에 딸네 식구와 처조카들이 세배하러 왔을 때 나는 아버지의 병풍을 두르고 세배를 받고 나서 주희의 경제잠을 해설(?)해 주었다. 아버님 생전에 설날에는 병풍을 펼쳐놓고 우리의 세배를 받으셨던 것처럼. 병풍 네 번째 폭에는 “동쪽을 간다고 말하고 서쪽으로 가지 말고 북쪽을 간다고 말하고 남쪽으로 가지 말며不東以西 不南以北, 일을 당하여서는 오직 그 일에만 마음을 두어, 마음이 딴 데로 가지 않도록 하라當事而存 靡他基適.”는 말도 보인다. 나는 그 방을 드나들 때마다 습관처럼 병풍의 잠언 첫 부분을 읽어본다. “몸가짐은 언제나 바르게 하고 높은 뜻을 품어야 한다.” 나는 주희의 잠언을 나름대로 받아들이며 아버님이 내게 병풍을 써주신 뜻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