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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수필과비평』[2018년 12월호, 통권206호 I 세상마주보기] 흙 이야기 - 이다인

신아미디어 2019. 1. 18. 09:23

"굼벵이가 돌아가야 할 곳은 흙이다. 내가 서 있는 곳도 흙이다. 따지고 보면 우린 서로 적이 아닌 동지다. 우리가 함께 가꿔야 할 것이 흙이 아닌가. 오늘 심은 배추를 이 땅에 있는 것들과 공존해야겠다고 다시 마음을 고쳐먹었다. 비로소 구멍이 숭숭 뚫린 채소가 가치 있게 느껴진다."


 




   흙 이야기      -    이다인


   검은 흙을 두 손아귀에 움켜잡았다. 흙에 코를 갖다 댔다. 흙에서 여러 미생물이 어우러진 향기가 났다. 농사꾼이셨던 아버지의 옷과 몸에서 풍기는 알싸한 땀 냄새 같기도 했다. 촉촉한 흙을 뭉치고 굴려서 흙인형을 만들었다. 인형의 몸에 생기가 돌아 아버지가 내 앞으로 걸어 나올 것만 같았다. 두 손에 흙을 가득 담아서 다시 냄새를 맡았다. 온갖 채소와 곡식 같은 것을 한꺼번에 믹서기에 넣고 갈아 놓은 냄새였다. 흙을 만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곳간에 일 년 먹을 양식을 가득 채워 놓은 것처럼 마음이 넉넉해졌다.
   배추 모종을 옮겨 심기 위해 흙을 부드럽게 갈았다. 왼손으로는 여린 배추의 잎을 가볍게 쥐고, 오른손으로는 포트 밑을 살짝 위로 밀었다. 배추 뿌리를 감싸고 있는 상토가 흐트러지지 않고 뽑혀 나왔다. 포트에서 모종을 빼낼 때는 양 손가락의 힘 배분이 잘 맞아야 한다. 손가락의 힘이 배추 모종으로 많이 들어가면 고갱이가 떨어진다. 손가락 힘이 포트 밑으로 더 들어가면 간신히 엉켜 있던 상토가 부숴져서 배추 뿌리만 빠져나온다. 뿌리에 상토가 없는 모종은 흙에 이식을 하더라도 적응하지 못한다. 이 작업은 집중해야 하고 매우 조심스럽다. 배추의 수명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잘 뽑힌 배추를 적당히 구멍을 판 흙에 옮겨 심었다. 배추를 심을 때 흙을 너무 다지면 안 된다. 배추 뿌리에 공기가 통하도록 살짝 덮어주듯 심어야 한다. 뿌리에 공기가 흐르지 않으면 뿌리가 썩는다. 다 심고 난 모종에 물을 흠뻑 뿌려 주었다. 배추 뿌리가 흙에 안전하게 정착할 때까지 물주기도 중요한 일이다. 흙도 좋은 물을 마셔야 건강한 생물을 내어 주었다.
   내 손으로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모종을 심은 지 삼 년째. 우리 부부는 주말에만 농사를 짓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을 사람들은 ‘과연 저 부부가 얼마나 버티다가 손을 털고 떠날까.’에 관심을 뒀다. 오가다가 인사를 하면 “할 만해요?”를 습관처럼 물었고, 누군가는 “삼 년을 못 버틸 걸요.”라며 대놓고 말했다. 삼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한다. 우린 여느 농사꾼보다 다를 게 없는 모습으로 변해갔다.
   여린 배추 모종을 보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그 어린 새싹이 흙에 뿌리를 내리고, 햇볕을 받고, 물을 마시고, 시간을 먹으면서, 식탁까지 오르는 과정들이 아름답기까지 했다. 직접 농사를 짓기 전에는 그랬다. 농촌은 전원생활의 낭만이 깃든 서정적인 공간만은 아니었다.
   농사도 전쟁이다. 배춧잎에 그물처럼 숭숭 뚫린 구멍을 본다면, 이 말이 실감날 것이다. 배추를 심고 난 뒤, 흙에 물을 촉촉하게 먹이고 나서 농약을 만들었다. 매운 고추와 은행잎을 삶은 물에 식초를 타서 만든 친환경 약이다. 아무리 친환경 농약이라도 사람에게 해롭지 않은 것이지 배추벌레나 진드기에게는 여전히 독이다. 몇 겹의 비닐장갑과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나와 해충과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첫 해에는 흙에 사는 생명들과 공존하려고 다짐했다. 그러나 농약을 전혀 치지 않은 채소는 인간이 먹을 수 없는 지경이었다. 몸에 좋다는 채소에는 더 많은 진드기들이 몰렸다. 특히 케일에는 형태조차 알아 볼 수 없도록 진드기가 까맣게 붙어 있었다. 영양가 많은 채소를 숙주로 서로 엉켜서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들과의 타협을 고민했다. 결국 진드기들이 내 채소들을 점령하기 전에 덜 자란 채소를 내가 먼저 먹는 것만이 최선이었다. 그러나 어린잎마저도 먹을 수 없었다. 그들의 번식 능력을 대수롭지 않게 넘긴 것이다. 전원생활의 꿈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농사는 주말이면 도심을 벗어나서 자연으로의 일탈을 꿈꾸면서 시작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어디를 가더라도 치열한 경쟁과 그에 따른 고뇌는 늘 따라다녔다.
   다시 생각해 본다. 그들의 터전에 내가 들어가서 소유권 행세를 하는 건 아닐까? 내 소유지를 그들이 와서 점령하고 있는 걸까? 종잡을 수 없는 질문에 대한 답은 의외로 간단하게 내려졌다. 어차피 그들과 일용할 양식을 공존할 수 없다면 전쟁을 할 수밖에.
   나는 매운 맛과 신맛, 독한 은행 냄새로 그들을 몰아내려고 한다. 개미는 도망가기 바빴고 지렁이는 몸을 비틀었다. 내 팔과 다리에 소름이 솟는다. 인간에게 아무 해를 끼치지 않은 개미나 지렁이 같은 벌레들이 농사꾼인 나와 무슨 악연이 있단 말인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약통을 들고 더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나는 두 손으로 부드러운 흙을 가득 담아 손아귀의 틈새로 흘려보냈다. 손바닥에는 둥글게 몸을 말고 있는 굼벵이 새끼 한 마리만 남아있다. 꿈틀거린다. 흙이 아닌 인간의 체취가 낯선가 보다. 몸을 반대 방향으로 비튼다. 흙을 찾는 몸부림이다. 하지만 스스로 내 손바닥을 빠져나가지 못한다. 굼벵이가 돌아가야 할 곳은 흙이다. 내가 서 있는 곳도 흙이다. 따지고 보면 우린 서로 적이 아닌 동지다. 우리가 함께 가꿔야 할 것이 흙이 아닌가. 오늘 심은 배추를 이 땅에 있는 것들과 공존해야겠다고 다시 마음을 고쳐먹었다. 비로소 구멍이 숭숭 뚫린 채소가 가치 있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