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현재도 미래도 먹을거리자원의 어머니다. 이미 우리 원양어업이 세계의 바다를 누비고 있다. 또 남해안에서 전복, 멍게, 홍합, 양어양식 등의 성공은 어민들의 고급 부가가치소득에 큰 몫을 하고 있다. 나아가 근해의 자연생태계가 복원돼 자연산 패류들이 풍성한 근해에서 해녀들의 숨비 소리가 넘치기를 기원한다."
숨비소리 - 김영덕
그녀가 초대한 저녁상은 임금님 수라상이다. 온통 싱싱한 수중진미가 한상가득 차려졌다. 남해안 다도해가 방안 가득 넘실거린다.
바다 향기 풍성한 식탁 위에는 오동도 동백꽃 향기에 살이 오른 전복이 하얀 속살을 드러내고 누워있다. 게다가 돌산 앞바다에서 숨바꼭질하다 온 해삼도 상추 잎에 살짝 숨었다. 또 통영 바다에서 놀던 멍게도 노란 꽃을 접시 한가득 피우는가 하면, 빨간 문어 꽃도 미각을 현혹시킨다. 그 옆으로 장군도 앞 수중석성을 기어올랐을 소라도 맨몸으로 배추 속잎을 깔고 앉아 보는 이의 식욕을 돋운다. 모두의 맛 자랑에 새파랗게 질린 생미역이 나도 있어요, 하고 새치름하게 빨간 초고추장을 옆에 끼고 시선을 끌어모은다. 더욱이 곱게 다진 청양고추로 초록 분을 바른 멍게젓갈은 밥도둑이란다.
그녀는 바다를 닮아 나누어주기를 좋아한다. 바다를 통째로 차려놓고 풀어놓는 바다사랑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태풍이 불거나 비가 오면 무섭지 않나요?”
“네, 주위보만 아닐 정도의 바람이나 비는 괜찮아요.”
그녀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다에 사는 해녀 중에 상군*이다. 한참 재미있게 듣던 중 태풍 이야기는 더 놀랍고 재미있다. “태풍이 한 번씩 바다 속을 확 뒤집어서 주는 게 좋아요. 참 바다는 신비하지요.”
바다에서 받는 무궁한 에너지는 그녀를 장한 어머니로 만들었다. 그녀는 매일 “잠수복과 수경에 납 벨트 단단히 맨 후 오리발까지 신으면 힘이 불끈 솟아요. 갈고리를 꽉 쥐고 뱃전에 서면 바다는 깊은 들숨으로 수중을 향해 돌격하라는 명령 같은 환청이 들려요.” 바다에 대한 그녀의 신의는 감동이었다.
“그 짧은 시간 물속에서 작업은 어떻게 하나요?”
“첫눈에 돌 틈 사이에서 눈만 멀뚱멀뚱한 문어를 잽싸게 낚아챌 때는 웃음이 절로 나고요. 오뉴월에 살이 통통하게 살이 오른 소라나 성게를 주워 담을 때는 오지고요**, 또 숨이 차기 전에 바위틈에 엎드린 전복을 따기 위해 아랫배에 힘을 꽉 주고 비창을 툭, 단 번에 질러 따지요. 단번에 따지 못하면 껍질이 깨질지라도 떨어지지 않거든요.”
그녀는 순식간의 작업을 마치고 있는 힘을 다해 재빠르게 물 밖으로 솟아올라 날숨을 크게 쉬면 휘파람 소리와 함께 몸이 가뿐해진다. 그 소리는 살아 있음의 소리이다. 초능력 같은 그 날숨을 하루에 몇 번을 쉬어야 망태를 채울까 상상이 안 됐다.
그녀의 숨비 소리 따라 배부른 망태는 배 위에서 곧바로 순산의 기쁨을 계량하여 보상을 받는다. 그 순간 모든 피곤함을 싹 씻어주는 성취감은 오십 년을 바다에서 살 수 있게 했다.
그녀는 바다와 더불어 아이들 교육시키고 집도 장만했다. 그녀에게 바다는 디딤돌이었다. 그렇게 장만한 목숨 같은 집을 남편이 친구 빚보증으로 날려버렸다. 이때도 바위덩이 같은 가슴을 녹여주었다는 바다는, 그녀에게 남편이고 생명이다. 그녀의 남편은 어느 한곳에 정착을 못해 직장을 여러 번 옮기기를 반복하다가 그나마 일찍 가버렸다.
그러나 그녀는 오직 바다가 있어 온갖 산전수전을 견뎌낼 수 있었다. 바다는 그녀가 상군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했다. 그녀가 들려주는 바다 이야기는 듣는 이에게까지 무한한 비전과 희망을 갖게 했다.
“몇 년 전만 해도 계절 없이 하루에 몇 망태씩 건져 올려 노다지 캐러 간다고 농담까지 했을 때가 있었다고 한다. 요즘은 여름철이기도 하지만 몇 시간씩 물속을 헤매도 애새기요.*** 있어야 할 해초 자리가 듬성듬성 백화현상白化現象으로 비어있어 마음이 아파요.”
바다생태계가 변함은 요즘 기후의 탓도 있겠지만 버려진 폐그물과 유조선의 기름 유출, 양어장에서 나오는 사료부산물 게다가 빗물에 떠내려온 온갖 생활쓰레기로 근해가 몸살을 앓고 있다.
그녀가 제주를 떠나온 지 오십 년이 넘었지만, 이십대 초반 그 시절엔 바다 속이 맑은 유리 같을 때라 새내기 해녀들도 많은 양을 건져 올릴 수 있어 상군 어머니의 칭찬이 자자했었다며 추억에 젖어든다. 그녀의 이야기 속에는 요즘 몸살 중인 근해의 기초생태계를 살리자는 일이다.
바다는 현재도 미래도 먹을거리자원의 어머니다. 이미 우리 원양어업이 세계의 바다를 누비고 있다. 또 남해안에서 전복, 멍게, 홍합, 양어양식 등의 성공은 어민들의 고급 부가가치소득에 큰 몫을 하고 있다. 나아가 근해의 자연생태계가 복원돼 자연산 패류들이 풍성한 근해에서 해녀들의 숨비 소리가 넘치기를 기원한다.
* 상군: 최고의 해녀.
** 오지다: 매우 좋다.
*** 애새기다: 애가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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