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환경의 변화로 참새의 삶이 한층 안전해졌지만, 짚으로 덮인 포근한 둥지 대신 어느 곳에 보금자리를 마련하는지……. 나날이 더하는 햇살의 따사로움에 지저귀는 참새 소리를 들으며 한시름 놓는다."
참새 - 정병남
여전히 영하의 기온이지만 햇살 밝은 아침이다. 아파트 내 놀이터 나무에서 참새 떼들이 왁자하게 떠들면서 목청을 돋운다. 그 소리에 잠에서 깨어나기도 한다. 저 작은 몸뚱이들이 한겨울을 어디서 어떻게 지냈는지 참 대견하다.
참새는 사람과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 싫지 않은 동물이다. 벌레를 잡아먹어 유익할 때도 있지만 가을에는 벼 이삭을 빨아먹어 피해를 주기도 한다. 한 해에 두세 번씩 4~5마리의 새끼를 낳는데 14일이 지나면 어미를 떠난다. 방앗간 주변에는 일년 내내 뱅뱅 돌면서 떠나지 않는 참새 떼들을 볼 수 있었다. 늦은 봄이면 초가지붕에 구멍을 손질해서 살았다. 어미가 먹이를 주면 서로 받아먹으려다 처마에서 마당으로 떨어져 죽은 털 없는 빨간 참새새끼를 종종 보았다.
모를 심어 이삭이 나올 때쯤 어디서 왔는지 여기저기로 날아다닌다. 이 논에서 쫓으면 저 논으로 가고, 왔다 갔다 하면서 이삭을 빨아먹기 때문에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이를 말렸다. 논 주변으로 여러 모양의 허수아비를 세우기도 하였고, 만국기를 달아 잡아당겨 보지만 영리한 참새는 항상 비켜지나갔다. 그래서 적당한 공터의 논두렁에 새막을 지었다.
새들이 위−위 소리를 내며 날아들면 미리 준비한 꽹과리나 징 치는 소리와 화약으로 만든 총소리로 쫓아냈다. 새막은 논마다 짓지 않고 마지기가 많은 집 논 주위에 지었다. 이 논 저 논에서 모여든 어린애들이 뛰어다니며 놀고 논물에다 떫은 감을 우려서도 먹었다. 새를 보며 밀가루범벅을 먹기도 하고 숙제도 했다. 참새 떼가 논에 앉아 막 올라온 벼 이삭을 빨아먹으면 새까맣게 변해 알이 영글지 않아 부모님께 야단을 맞기도 했다. 한 해 농사를 망치면 식구들이 굶을 수도 있는데 새는 쫓지 않고 철없이 모여 놀기도 하였다.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면 좁은 동네 길을 쓸지 못하고 식구들이 모여앉아 따뜻한 아랫목 이불 밑에 발을 뻗고 옛이야기를 나누었다. 햇살이 중천에 오르면 수북이 쌓인 마당 가운데에 멍석 크기만큼 눈을 쓸고 그 위에 떡판을 비스듬히 놓은 후 쌀에 왕겨를 섞어 한 줌 뿌려 놓는다. 그리고 고임대에 가는 새끼를 묶어 큰방 문구멍으로 넣어둔다. 새들이 들고 나고 하다가 몇 마리가 떡판 안으로 들어가 쌀을 쪼아 먹으면 적당한 때 새끼줄을 잡아당긴다.
떡판을 들추고 참새 몇 마리를 조심스레 꺼내 맛있는 참새구이를 얻어먹었다. 혹시 걸려들지 않고 날아간 새가 있으면 다시 덫을 놓아보지만, 새들이 떡판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만 왔다 갔다 해서 망칠 때도 있었다. 눈이 녹아내린 밤에 참새 잡이를 했다. 손전등을 준비했다. 긴 대나무를 잘게 쪼개서 새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엮어 도구도 만들었다.
추위를 피해 초가지붕 아래쪽에 난 구멍에 들어있는 참새를 향해 도구를 대고 손전등을 비추면 새들이 놀라 날아 나오면서 도구 구멍으로 서너 마리 들어왔다. 이집 저집 다니면서 잡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동네를 돌면서 추녀가 낮은 지붕에 사다리를 걸치고 이엉 마름 밑을 뒤져서 참새를 움켜냈다. 손에 잡힌 따뜻한 생명의 체온과 부드러운 새털의 감촉이 느껴졌으나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다. 손아귀를 벗어나려는 조그만 생명의 꿈틀거리던 느낌이 짠한 추억으로만 남아 있다.
그때 농촌의 밤하늘은 북두칠성과 삼태성이 손에 잡힐 듯 선명했다.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많은 별을 보면서 형들을 따라다니기도 했고, 나이 들어서는 잠들지 못하고 친구들과 밤 깊도록 고샅을 돌기도 했다. 그때 주전부리는 무, 얼린 고구마, 말린 감 껍질 정도였다. 새를 잡은 밤에는 밤참으로 참새구이와 언 두부를 김치에 싸 먹으며 막걸리도 한 사발씩 마셨다. 지금은 참새도 초가지붕도 없어져 옛이야기만 남았다.
이젠 환경의 변화로 참새의 삶이 한층 안전해졌지만, 짚으로 덮인 포근한 둥지 대신 어느 곳에 보금자리를 마련하는지……. 나날이 더하는 햇살의 따사로움에 지저귀는 참새 소리를 들으며 한시름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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