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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수필과비평』[2018년 11월호, 통권205호 I 사색의 창] 어제 그리고 오늘 - 김애련

신아미디어 2018. 12. 20. 17:18

시골 동네도 한발을 내딛는 동시에 뒷발을 땅에서 떼고 있다. 그러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사람이건 마을이건 꿈틀거려야 한다. 꿈틀거려야 발전할 수 있다. 따뜻한 정이 넘치는 마을에서 사람이 모여드는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고 싶다."







   어제 그리고 오늘    -    김애련


   40년 전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시골은 아주 낙후된 오지였다. 집에서 버스를 타고 부산역에 내려서 경부선 기차를 타고 삼랑진역에서 내린다. 도보로 30분을 걸어 강둑을 내려와서 한 시간에 한 번 있는 나룻배를 타고 낙동강을 건넌다. 또다시 삼사십 분을 걸어가야만 겨우 나의 집(시댁)이 보인다. 집에 가는 길은 완전 모래밭이었다. 하루해가 넘어가야 했던 여정이다.
   여름에는 더욱 힘들었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잘 달구어진 모래밭을 걸어가면 발바닥이 화끈거렸다. 구두를 벗어서 멀리 던져놓고 다시 또 던지고 하여 집 가까이 가서야 구두를 신었다. 지금은 잘 다듬어진 아스파트 길에 양옆에는 벚꽃나무가 질서정연하게 서 있지만. 그 시절 시골길은 대부분 비포장도로였다. 처음으로 버스가 다니기 시작하였다. 덜컹거리면서 달리는 버스는 하루에 네댓 번 있는 아주 귀한 교통수단이었다. 한 번은 딸과 둘이서 늦은 시간에 버스를 탔는데 손님은 중간에 두 명밖에 없었다. 우리는 멋모르고 맨 뒤칸에 앉았다. 버스가 너무 뛰어서 딸내미 머리와 나의 머리가 버스 천장에 닿을 정도였다.
   딸은 처음으로 타보는 비포장도로의 시골 버스가 너무 신기했나 보다. 재미있어서 탈수록 웃음이 멈춰지지 않았다. 옆에서 웃고 있는 딸을 보니 나 역시 웃음보가 터졌다. 손님이 적게 탈수록 버스는 더 높이 요동쳤다. 너무 웃는 바람에 같이 탄 몇 사람은 우리 모녀를 쳐다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우리는 쳐다보든 말든 터져 나오는 웃음에 눈물을 흘리면서 웃고 또 웃었던 기억이 난다. 누구 집 며느리인지도 잊어버리고 달리는 버스에 몸을 맡긴 채 차창으로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은 재미를 더욱 보탰다. 깜깜하게 어두운 밤은 차 헤드라이트만 보여주면서 버스는 달렸다. 창문 틈으로 보니까 왼쪽은 시커먼 낙동강이 흐르고 오른쪽은 가파른 산길이다. 시커먼 낙동강을 보는 순간 나의 웃음은 사라졌다. 만약 버스기사가 조금만 실수를 하여도 강으로 곤두박질칠 것만 같아서 온몸이 오그라들었다. 버스를 타도 염천에 걸을 때만큼 용이 쓰였다.
   이런 시골이 이제는 탈바꿈을 하였다. 거리와 집들은 알록달록하게 고운색깔로 갈아입고 봄이면 아까시 꽃이 지천에 하얗게 피어서 오월이면 온 동네가 아까시 향에 취해버린다. 지금은 벚꽃이 만개하는 마을이 되었다. 언제부터인지 자가용은 집 앞까지 매끄럽게 들어온다. 간혹 동네를 찾은 사람들은 팔 집이 없느냐고 물어본다. 덜컹거리는 버스는 우리 기억에서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이곳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이곳을 문전옥답으로 만들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피땀을 흘렸는지 모른다. 이 논밭이 자식들을 대학까지 공부시키고, 지금까지 가족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 이렇게 잘 다듬었건만 이제 농사를 이어 받을 사람이 없다. 자식들은 타 시에서 직장에 다니고 일요일이나 집안에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만 멋진 자가용을 타고 온다. 이곳이 언제 오지였나 싶을 정도로 수리시설이 잘되어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농토가 되었다.
   어느 농촌처럼 젊은 사람들은 모두 도시로 나가고 늙은 부모들만 남아서 고향을 지키고 있다. 부모들은 이 땅을 이렇게 잘 만들어 놓았는데 땀 흘려 살고 부모도 할 수만 있다면 자식들한테 자신의 직업을 물려주지 않으려고 한다. 먹거리는 중요한 것이다. 아직까지 사람들은 잘 인식하지 못하지만 모든 병은 대부분 먹거리에서 온다고 한다. 우리는 국적도 알 수 없는 먹거리들이 수입이 되어 우리 입으로 들어오고 있다. 신토불이가 새삼스럽다.
   이제는 농사도 기계로 다 짓고 있다. 옛날처럼 그렇게 힘들게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도 일본처럼 대를 이어서 살아가야 한다. 시골 고향을 떠나 직업이 없다고 도시에서 헤매지 말고 부모들이 잘 가꾸어 놓은 곳으로 돌아와야 한다. 우리에게도 희망이 있을 것이다. 우리들의 먹거리는 우리 손으로 한번 땀 흘려 보자. 너무 편리함과 쉬운 것만 생각하지 말고 값진 땀을 한번 흘려보자. 땅을 돈으로만 생각하지 말자. 황금만능주의가 되지말고 낭만도 찾아보고 여유를 부리면서 멋지게 한번 살아보자. 농토를 멋지게 한번 만들어 보자. 삭막한 세상을 땀으로 한번 녹여보자.
   나는 지금 부모님의 고향에서 전원생활을 하고 있다, 가능하면 인간답게 살려고 노력한다. 어떻게 살아야 인간답게 사는 건지 정답은 모르지만 이웃과 더불어 사는 것이 조금은 인간답게 사는 것이 아닌가 하면서 살고 있다. 잘 가꾸어진 땅과 밭들을 보면서 지난 세월을 생각한다. 세월도 이만큼 흘렸지만 나 역시 이만큼 늙어 버렸으니 흘러가는 세월은 어느 누구도 잡을 수가 없다. 이곳도 살기 좋은 곳으로 서서히 변하고 있다.
   이제 이곳은 청정지역으로 공기 좋고 자연이 살아있는 곳으로 알려졌다. 그런데도 인구가 점점 줄어든다. 안타까운 일이다. 낙동강 칼바람에 뱃사공 아저씨를 부를 때가 엊그제 같건만 이제는 아스파트 길에 멋진 벚꽃나무 가로수가 지키고 있으니 상전 벽화가 달리 없다. 사람도, 강산도, 몇 번이나 변해버렸다. 싱싱 달리는 버스를 보니 그 옛날 비포장도로가 생각나서 웃음이 절로 나온다.
   시골 동네도 한발을 내딛는 동시에 뒷발을 땅에서 떼고 있다. 그러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사람이건 마을이건 꿈틀거려야 한다. 꿈틀거려야 발전할 수 있다. 따뜻한 정이 넘치는 마을에서 사람이 모여드는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