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수필과 비평/수필과비평 본문

월간『수필과비평』[2018년 11월호, 통권205호 I 지상에서 길 찾기] 모과송木瓜頌 - 황인용

신아미디어 2018. 12. 18. 14:23

넋을 잃고 모과를 바라보는 시간은 비할 바 없이 행복한 순간이다. 그러한 순간의 영속화야말로 시간의 연금술이라고 명명할 수 있지 않을까? 바로 유한한 인생이 영원한 삶을 누릴 비결임에랴!"







   모과송木瓜頌    -    황인용


   “과일전 망신은 모과가 시킨다.”
   자격지심 탓일까? 이 속담은 어쩐지 나를 조롱하는 말처럼 들린다. 나야말로 과일 축에도 못 끼는 모과 같은 수필가가 아니었던가?
   “모과나무 심사다.”
   이도 나를 두고 한 속담임은 마음이 시고 떫은 자인 까닭이다.
   “모과도 기침에는 약이다.”
   이 속담만큼은 얼마쯤 불행 중 다행인가? 불령不逞의 족속이 쓴 수필이라야 사회의 감기 증상에 효험이 지대할 터임에랴!
   모과의 치명적 결점은 감미의 결핍이기에 설탕이나 꿀에 재워두어야 한다. 2, 3개월 지나면 향기 그윽하고 풍미 각별한 모과청을 얻을 수 있다. 모과 같은 내 수필에도 단맛만 가미한다면 모과청 같은 작품을 기대할 수 있을까? 모과청은 감기는 물론이고 관절염에도 특효가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6월 이사왔을 때는 화단에 모과나무가 있는 줄 까마득히 몰랐다. 늦가을 접어들어 낙엽지면서 비로소 노랗게 익은 모과가 하루 아침에 탐스런 자태를 드러냈을 때 얼마나 기뻤던가? 참으로 경이의 눈을 크게 뜨도록 만드는 찬란한 바람風이고 햇살光이었음에랴! 세상에 이보다 기적 같은 풍광을 또 어디서 목격하랴 싶었다.
   이 돌연하고도 돌올한 발견으로 말하면 진정한 의미에서 ‘생활의 발견’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실로 수필의 관건은 평범 속의 비범 발견으로서 비범하지 않은 비범이야말로 수필의 특장이 아니랴?
   모과의 처지에서 말하더라도 오랜 시간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으면서도 마지막 순간에 빛나는 성과成果를 자랑하기 위해 묵묵히 인내하고 때를 기다렸을 터이다. 그 결과結果 순실順實한 보람을 결실結實했다면 얼마쯤 대단한 모과나무의 정신력인가?
   모과를 괄목상대刮目相對하고 있는 요즘 나의 휴식시간은 모과와 무언의 대화를 나누는 소중한 시간이다. 누구보다 귀중한 사색의 동반자라고 말해도 마찬가지다.
   수필계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음은 전적으로 나의 탓이지 누구를 원망할 일은 결코 아니다. 하늘의 사명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으면 마지막 순간에는 모과나무처럼 눈부신 성과를 이루고 그동안의 불우를 보상받지 않겠는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세모임에도 모과나무는 여전히 빛나는 보람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 석과불식碩果不食을 화두로 삼았던 신영복 선생이 그립게 떠오른다. 까치밥을 남기듯 후손을 위해 복을 남겨두어야 한다는 지론이었던 거다.
   넋을 잃고 모과를 바라보는 시간은 비할 바 없이 행복한 순간이다. 그러한 순간의 영속화야말로 시간의 연금술이라고 명명할 수 있지 않을까? 바로 유한한 인생이 영원한 삶을 누릴 비결임에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