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신인상 공모와는 별개로 신인 추천제를 시행합니다. 지난 날 우리 문단은 도제식 창작교육과 문예지 추천을 통해 역량 있고 참신한 문인들을 배출해왔습니다. 다년간 존경받는 스승 밑에서 시인·작가의식과 창작방법론을 수련하여 진정한 시인·작가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합니다.
복권 - 박희자
머릿속에 아라비아 숫자를 그려 본다
일주일이 행복하다는
주머니 속 복권 한 장
한 길만 걸어온 날들
통장잔액 부족해도
그리 가난하지 않았는데
오랜만에 만난 친구
수백 억 건물 유산 얘기 듣고
헛된 꿈을 꾸다니
허공에 흩어지고 마는
여섯 자리 숫자
쓴웃음이 난다
사람들 지난 거리
바람에 날아가는 종이 한 장
초록색 마을버스가
떨어진 복권을 꽁무니에 달고 간다
따지고 보면 지나가지 않는 것 없고
다 한갓 바람인 것을
구겨진 종이가
한 순간의 기대도 끌고 간다
신인추천 / 당선소감
불빛을 찾아서
시의 길로 들어선 날부터 저의 시에 한 번도 만족한 날이 없었습니다. 밤새워 쓰고 나서 읽어 보면 그 순간은 무척 마음에 들어 실로 행복하기까지 했으나 막상 다음 날 읽어 보면 저의 무능이 너무너무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시를 쓰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습니다. 비록 긴 터널 속을 걷는 막막한 심정이었지만 걷고 또 걸었습니다. 걷다 보면 앞을 환히 밝혀 주는 불빛이 보이겠지, 그 불빛이 나를 인도하겠지 하는 마음을 수없이 다잡았습니다.
이번 추천은 저의 그런 노력의 결과라 할 것이지만 저를 믿고 추천의 길로 인도해 주신 지도 교수님의 은덕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부족한 작품을 추천해 주신 교수님, 늘 옆에서 격려해 주신 안국동 시동인들, 지난해 영랑문학상을 수상한 시인 김순희 님 고맙습니다. 앞으로 더욱 정진하여 시를 빛내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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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추천 / 심사평
리얼리티 시의 한 지평
소통을 거부하는 현대시가 판을 치는 현 시단에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시를 만나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더구나 우리의 일상성이 배어 있는 시를 만나는 일은 더욱 그러하다.
일반적으로 현대시의 경우에는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난다. 그 하나는 시적대상에 대한 개성적이고 특별한 인식의 깊이와 고차원적인 표현구조에서 오는 모더니티이고, 다른 하나는 시적 표현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의미 없는 전복된 형상화와 의도적인 문장 비틀기로 애매모호함을 가장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전자의 경우에는 우리 시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경우인 반해, 후자의 경우는 발전은커녕 시에 대한 혐오감을 갖게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박희자의 〈복권〉 외 4편은 전자에 해당되어 신인추천 당선시로 결정한다.
그의 시 〈복권〉, 〈바지락〉, 〈미용실에서〉, 〈두통약에 대하여〉, 〈낚시터에서〉 등 5편을 보면, 시의 제목이 시사하는 바, 우리의 일상적 모티프에서 벗어나지 않고 친근하다. 그뿐 아니라, 시적 대상에 대한 특별한 인식과 차원 높은 표현구조로 우리를 위로해 주고 있다는 점에서 안심이 되었다. 예컨대 시 〈복권〉의 후반부에서 보여주고 있는 표현 “초록색 마을버스가/떨어진 복권을 꽁무니에 달고 간다/따지고 보면 지나가지 않는 것 없고/다 한갓 바람인 것을//구겨진 종이가/한 순간의 기대도 끌고 간다”와 시〈바지락〉에서의 “마음에 두고 속 끓이다/말 못한 일 많기도 하건만/속내 다 드러냈으니 얼마나 시원할까”가 그것이다. 이러한 따뜻한 시심과 지나치지 않은 감성적 표현, 그리고 우리의 삭막한 삶을 위안해 주는 시를 끝까지 유지하고 정진하기를 바라며, 아울러 리얼리티 시의 한 지평을 연 박희자 시인의 당선을 축하한다.
추천심사위원 : 유한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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