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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수필과비평』[2018년 11월호, 통권205호 I 지상에서 길 찾기] 법계사 가는 길 - 노춘희

신아미디어 2018. 12. 11. 15:51

내가 올라온 길을 뒤돌아보았다. 단풍 든 지리산의 풍경이 노을에 곱게 물들어 커다란 비단이불을 펼쳐놓은 듯 따스해 보인다. 이 커다란 이불을 덮고 많은 동물과 식물들이 다가오는 겨울을 따스하게 나겠지. 법계사에 도착하니 온통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고개들어 쳐다보니 절 뒤에 보물로 지정된 우뚝 솟은 삼층석탑이 수고했다고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듯하였다. 감사한 마음에 얼른 두 손을 모아 허리를 굽혔다. 나무관세음보살!"







   법계사 가는 길    -    노춘희


   지리산을 가기 위해 새벽부터 부산을 떨었다. 잠실에서 우리가 타고 갈 차를 찾는 데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휴대폰 울리는 소리, 서로가 차를 찾기 위해, 또는 관광객을, 친구를 찾기 위해 가이드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아우성이다. 친구와 나는 겨우 법계사 가는 봉찬회 차를 찾아 타고 자리를 잡았다. 봉찬회는 국내외 불교 성지순례 기도를 목적으로 전국 사찰을 순례하는 차량에 편승하였다. 차 안에는 모두 불교신자로 보이는 회색 바지를 입고 기도하러 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법계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절이라고 한다. 지리산 높은 정기를 받아 기도발이 잘 받는다고 신도들이 많이 찾는 사찰이라고 한다. 나처럼 등산을 하기 위한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가을이 짙어가는 들녘에는 어느새 벼들이 집집마다 곳간으로 숨어들었다. 벼이삭에서 뛰놀던 메뚜기들은 논두렁에서 알을 낳고 기온이 점점 떨어지면 한살이를 마무리한다. 허수아비만 참새 떼가 없는 빈 들판을 우두커니 지키며 지나가는 바람을 붙잡고 노닐고 있다. 지리산 자락을 휘돌아가는 내내 잎이 다 떨어진 감나무가 봄에 핀 꽃동산보다 더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나이듦 탓일까? 여기도 감나무, 저기도 감나무, 나의 눈은 온통 감나무에서 떠날 줄 모르고 연신 환호성을 질렀다. 가로수에, 산에, 집집마다 담장이 없는 마당 감나무에 감이 주렁주렁 열렸다. 모두 부자처럼 보였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감나무에 감들이 익어서 보석처럼 반짝거렸다.
   어린 시절, 우리 집엔 감나무가 없었다. 감나무가 있는 친구네 집은 왠지 부자처럼 보여서 부러웠다. 늦은 봄, 우리 집 뒤란에 친구네 감나무에서 떨어진 노란 감꽃이 소복이 떨어지면 눈을 비비며 감꽃을 주워서 꽃목걸이, 꽃반지, 또는 화관을 만들어 가지고 놀았다. 감꽃이 시들어지면 친구들과 가위바위보를 하여 이긴 사람이 감꽃을 하나씩 따먹기도 했다. 한 아이가 계속 지면 삐치기도 하여 이긴 아이가 나눠주기도 하며 함께 놀았던 시절이 떠오른다. 지금은 간식거리가 넘쳐나지만 그때는 먹을거리가 없던 시절이었다. 시든 감꽃이 달착지근하면서 쫄깃한 맛으로 친구들을 울리기도 하고 웃게도 하여 잊을 수 없는 추억의 한 토막이 영화 필름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고삿길 앞집엔 숩실 종이라는 감나무가 있었다. 숩실 종은 감이 동그스름하다. 넓적감보다 과육이 연하고 땡감을 먹어도 떫은맛이 덜하며 모양도 예쁘다. 소금과 같이 오래 씹으면 단맛이 난다. 친구들과 밤에 삼을 삼다가 입이 궁금하면 주인 몰래 숩실 종 땡감 서리를 한다. 친구는 망을 보고 나는 높은 감나무에 올라갈 때 어디에 감이 있는지 어두워서 보이지 않기 때문에 머리에 바가지를 쓰고 두 손은 감나무를 잡고 이리저리 머리를 휘저으면 감이 몇 개씩 후두둑 떨어진다. 아직 익지 않은 떫디떫은 풋감 서리를 해서 삼으로 잘라서 키득거리면서 나눠 먹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입안에 온통 떫은 느낌이 들어 피식 웃음이 났다.
   잠시 고향에 이웃집 감나무의 풋감서리와 감꽃을 만나는 사이 식당에 도착하였다는 가이드의 안내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점심 공양에 반찬으로 감말랭이무침이 나왔다. 감이 지천인 산청에 감으로 만든 요리가 처음이라 맛있게 먹었다. 지역에서 생산되는 감으로 식생활에 접목시키는 생활의 지혜가 감동적이었다.
   배를 든든히 채운 우리는 법계사로 올라갔다. 한 시간이면 간다는 보살들의 말에 ‘그리 힘들지 않나 보다.’라고 생각해서 느긋하게 지리산 계곡과 아름다운 가을 그림을 구경하며 올랐다. 하늘은 맑고 지리산 기슭엔 단풍이 예쁘게 물들어 산행하는 내 마음에 소녀처럼 단풍 든 나무들을 연신 스마트 폰에 담았다. 그런데, 아무리 올라도 법계사가 나오지 않았다. 올라가는 길이 동산이 아닌 지리산이라는 걸 까맣게 잊었다. 지리산이라는 이름값이 있는데 법계사로 올라가는 길은 험하여 오르는 것 자체가 고행이었다. 나는 부처님을 만나러 가는 건 아니지만 오늘 밤 법계사에서 하룻밤 묵고 새벽에 천왕봉을 가기로 계획되어 있었다.
   나는 그냥 올라가는 것도 이렇게 숨이 차고 힘 드는데. 티베트의 사람들은 부처를 만나기 위해 오체투지로 삼보일배를 하며 성지순례를 하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라고 한다. 그때 그 고행으로 무슨 생각을 하며 무엇을 얻는 것일까? 현세에서의 가난과 불행을 불행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불행은 오로지 보는 사람들의 객관적인 잣대일 뿐이다. 내세에서 행복을 약속하는 희망이 그들의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듯하다. 나는 어떤가? 나는 오늘 지리산을 오르면서 무엇을 얻기 위함인가? 내세의 풍요를 걱정해 본 적이 있는가?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저 지금 현재의 복을 바라는 것. 좀 더 삶의 풍요를 바라지 않았던가. 그렇다고 너무 많은 물욕은 갖지 않았다. 다만 우리 아이들이 공부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일했던 것이 지나친 욕심일까?
   오늘 밤 내가 잘 살았는지 부처께 여쭈어 보아야겠다. 부처께서 네 이웃을 돌보았느냐고 물으면 어쩌지. 난 물질적으론 돌보지 못했다. 다만 내가 가진 짧은 지식으로 나보다 못 배운 분들에게 나누어 드리는, 몸으로 봉사를 하고 있다고 말씀 드리면 그도 잘한다고 했으면 좋겠다.
   파란 가을 하늘에 하얀 낮달이 우리의 길 안내를 맡아 주었다. 가을 햇살이 저만큼 서녘 하늘에 걸릴 즈음 법계사 일주문이 먼저 우릴 반긴다. 드디어 법계사에 다다름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올라온 길을 뒤돌아보았다. 단풍 든 지리산의 풍경이 노을에 곱게 물들어 커다란 비단이불을 펼쳐놓은 듯 따스해 보인다. 이 커다란 이불을 덮고 많은 동물과 식물들이 다가오는 겨울을 따스하게 나겠지. 법계사에 도착하니 온통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고개들어 쳐다보니 절 뒤에 보물로 지정된 우뚝 솟은 삼층석탑이 수고했다고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듯하였다. 감사한 마음에 얼른 두 손을 모아 허리를 굽혔다. 나무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