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을 해봐야 부모 귀한 것도 알고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식에게 필요한 자양분이 어떤 것일까 생각한다면 군대에 보내지 않으려고 애태우지 않을 것이다. 아들의 뾰족한 성격이 차돌멩이처럼 동글동글 다듬어진 것은 모두 해병대의 힘이 크다고 말할 수 있다."
아들의 군 생활 - 김남수
지금 아들은 보통사람은 반년도 다니기 힘들다고 말하는 직장에 다니고 있다. 날마다 사고를 수습하고 보상을 하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전쟁을 벌이는 곳이다.
아들은 대학 일학년을 마치고 갑자기 해병대로 지원했다. 육군, 공군, 해군이 있는데 하필이면 악명으로 소문난 해병대에 가려고 해서 적잖이 걱정을 했었다. 해병대라 하면 혹독한 훈련이 먼저 떠오른다.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추운 겨울에 웃통을 벗고 바다에 뛰어드는 군대생활의 일면을 TV에서 종종 보고는 군이라는 곳이 만만한 곳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남자로 태어나면 꼭 군대는 갔다 와야 인간이 된다.”라고 남자들 사이에서도 주고받는 말을 들었다. 그만큼 군대 생활이 어렵고 힘들다는 말도 되고 인생에 도움이 된다는 말로 들렸다.
흔히들 “귀신 잡는 해병대”라는 말을 곧잘 한다. 그것은 6·25 전쟁 때 생겨난 말이라 했다. 북한군에게 밀려서 낙동강 방어선으로 왜관, 창녕, 남지, 진동이 남아 있을 때 통영 상륙작전으로 마지막 지역을 사수하는 데 해병대가 큰 공을 세워 승리로 이끌었다 한다. 포탄이 터지고 수류탄이 던져지고 총알이 핑핑 날아가는 전투지에서 해병대가 북한군을 상대로 용맹성을 떨치는 것을 보고 미국 종군기자가 그렇게 소개를 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는 말도 나와 해병대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지원 입대자가 늘어났다 한다. 해병의 겉모습이 좋아 무작정 해병대를 선택했다면 그야말로 고생의 지름길로 가는 것이고, 나름대로 신념이 있어 결정했다면 자아를 발전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매사는 마음먹기에 따라 지옥과 천국으로 갈린다고 하지 않던가.
입대하고 한 주가 지나 아들에게 소식이 왔다. 건강하게 잘 있다는 소식을 기대했는데 악몽 같은 시간이었다는 말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과연 소문대로 무서운 곳이구나 생각하며 읽어 내려갔다. 어제는 수백 명이 목욕하는데 갑자기 교관이 들어와 “5분 이내 집합”을 하라 해서 머리와 몸에 비누를 잔뜩 칠하고 제대로 씻지도 못한 채 뛰어나갔다 했다.
훈병 생활을 편하게 보낼 수야 없겠지만 물 한 바가지 덮어쓰는 것도 치열한 경쟁 속에서 쟁취해야 하니 이래저래 몸이 고달파 기분이 꽝이 되었다고 했다.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행동은 민첩해야 하고 가슴속의 불은 죽여야 군에서 살아남는다는 아들의 이야기를 읽고 나니 대어를 낚은 듯 기뻤다.
간혹 성당에서 고해성사하듯 비감에 젖은 글도 보내왔다. 사회에서 나태했던 육신과 정신을 모두 벗어버릴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했다. 또 허물을 벗어버리고 깨끗하고, 당당하고, 듬직한 정예 해병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했다. 힘들긴 하지만 해병대에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팔꿈치와 무릎이 까져 고름이 생겨 아플 때는 후회가 되었다며, 그것 역시 해병이되기 위한 과정이 아니겠냐는 의젓한 말도 했다.
부모와 떨어져 힘든 군 생활을 하면서 얼마나 외롭고 집이 그립겠는가. 남자로 태어나 불가피한 과정이라 여기기에는 너무도 힘든 나날이었을 것이다. 애써 웃음 지으며 괜찮습니다, 큰 소리로 대답하지만 괴로움을 이겨내려는 애처로운 몸부림을 부모인들 왜 느껴지지 않겠는가.
자식 귀하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을까? 그렇지만 나이가 차면 부모 곁을 떠나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군이라는 곳은 여물지 못한 자식이 자립을 준비하기 위한 단계를 밟는 곳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소년에서 청년이 되듯 성년으로 발돋움하는 과정일 것이다.
아들은 강한 군인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 건강은 괜찮은지, 아픈 데는 없는지, 밥은 잘 드시는지, 새로 하시는 일은 괜찮은지 부모 걱정도 해주었다. 가족을 그리워하며 예전에 잘하지 못한 것이 무척 후회된다고도 했다.
매주 일요일엔 종교 활동을 하는데 특별히 한 종교만 고집하지 않고 교회, 절, 성당을 바꾸어 간다고 했다. 좋은 말도 많이 듣고, 돌아올 때는 초코파이나 사이다를 받을 때도 있고, 건빵이나 우유를 받을 때도 있다 했다. 밖에서는 흔한 단 음식이 군에서는 담배만큼 좋아졌다 했다. 물론 훈련병은 담배를 피울 수 없게 되어 있어 단 음식이 더 당기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초코파이를 맛있게 먹는 자신을 보면 군인이 다 된 것 같다며 편지지에 웃는 얼굴을 그려서 보내기도 했다.
예전에 다혈질인 아들의 얼굴에 함박꽃 얼굴이 겹쳐졌다. 부모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도 차분히 듣질 못했는데 이제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고 한발 물러선다. 해병의 끈질긴 기질과 과감성을 배워 꿋꿋이 남도 이해하고 배려하는 심성으로 바뀐다면 부모로서 이보다 더한 바람은 없을 것 같다.
아들은 천자봉 행군을 마치고 실무배치를 받았다고 했다. 해병대를 상징하는 빨간 명찰 수여식을 했다며 대대장이 직접 달아주어 더 기뻤다고 했다. 빨간 명찰을 달고 나니 어깨가 무거워졌다며 계속 전진하겠다고 했다.
고생을 해봐야 부모 귀한 것도 알고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식에게 필요한 자양분이 어떤 것일까 생각한다면 군대에 보내지 않으려고 애태우지 않을 것이다. 아들의 뾰족한 성격이 차돌멩이처럼 동글동글 다듬어진 것은 모두 해병대의 힘이 크다고 말할 수 있다.
군대와 다를 바 없는 직장에서 굳건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도 혹독한 군대 생활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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