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용차 안이 상큼한 향기로 가득했다. 문학회 모임 가는 길에 문우의
차를 함께 탔는데 향기가 하도 좋아 무슨 향수냐고 물었더니 모과 향이
라고 한다. 그 말을 듣고 살펴보니 승용차 뒤 꽃바구니에 모과가 가득
담겨 있었다.
모과 하면 못생긴 과일의 대명사인데 고급 향수 못지않게 향기가 좋
다는 것을 이때 처음 알았다. 모과는 타원형으로 울퉁불퉁하고 못생겼
을 뿐만 아니라 그 맛이 시고 떫기까지 한다. 하지만 약간의 단맛과 향기
덕분에 최고의 대접을 받는다.
사람도 못생긴 사람을 모과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사람이 나이
들어서 잘 익은 모과만큼 대접받는 삶을 살기도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모과보다도 더 못났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왔다.
가난한 환경에 재능도 없고 외모와 건강마저 좋지 않아 어느 것 하나
내세울 것이 없었다. 붙임성이 좋거나 욱하는 성질이라도 없었으면 성
격 좋은 사람이라는 말이라도 들을 텐데 그마저 안 되었다.
이 세상에 못난이로 살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때로는 나도
잘난 척이라도 해보고 싶지만, 아무리 뜯어봐도 잘난 구석이라고는 없
으니 생긴 대로 살아왔다. 그렇다고 나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단점을
정확히 알고 하나하나 개선하고 보완하려고 노력했지만 그 또한 한계가
있었다.
사업을 하면서도 세상에는 나보다 못난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서 애당
초 남을 속이거나 요령을 부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성격이 급하여 못
마땅한 일에는 참지 못하고 화를 내는 경우는 있었지만, 남을 무시하지
는 않았다. 뻔히 알고 있는 일도 남에게 다시 묻고, 상대를 존중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았다.
더러 바보처럼 살았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 말의 뜻은 본래
는 잘난 사람인데 바보 비슷하게 살아왔다는 뜻이고, 나는 본래 못나서
바보로 살아왔다. 일상 속에서 남들이 숨기고 싶어 하는 실체를 나는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스스로 인정했는데, 그걸 겸손으로 봐주고 오히
려 후한 점수를 주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못났다고 기죽지 않고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창의력을 바탕으
로 도전적인 생활방법을 택했다. 못난 사람의 무모한 도전은 주변 사람
들을 불안하게 하고, 크고 작은 시련을 겪게 했다. 또 거듭된 실패는
가난과 손잡고 찾아와서 모욕을 주고 더욱 업신여겼다.
못난 사람의 못난 짓으로 빚어진 결과이니 어떤 상황도 겸허히 받아
들이고 한없이 낮은 곳으로 나를 내려놓았다.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밑바닥에 도착하여 보니 수많은 상처들이 암석 같은 굳은살이 되고 자
양분이 되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덕분에 최소한의 사람 구실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사업을 그만두고 다 늦은 나이에 취미로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도, 여
러 모임에서 나에게 중책을 맡겼다. 못난 사람이 회장, 부회장, 총무 상
임이사까지 모든 직책을 한두 번씩 맡아 보았다. 이는 내가 능력이 있어
서가 아니라, 못나고 만만하게 보여서 대하기가 편하고 회원들의 뜻을
잘 받들 것이라 믿고 그런 중책을 맡겨준 것이라 짐작된다.
바보가 순수하지는 않지만 공통된 부분이 많아 때로는 순수함이 바보
처럼 느껴지고, 못난이는 왠지 친환경적인 냄새가 풍긴다. 그래서 가끔
못난이 바보를 배려하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싶다.
이제 지나고 보니 억지로 잘난 척하기보다는 스스로 단점을 인정하면
장점을 인정받게 되고, 나를 낮추면 삶이 보다 편안해진다는 생각이 든
다.
앞으로 남은 세월을 많은 사람에게 향기를 주는 모과 같은 삶을 살고
싶지만 뜻을 이루기는 어려울 듯하고 금년에는 모과차라도 담가놓고 지
인들과 나누어 마셔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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